brunch

좀 후련하니? 내 마음은 더 무겁다.

감정쓰레기통이 된 유대리, 그 무거움에 대하여

by 유블리안

어제 점장에게 받은 질책과 경위서 생각에 유현상 대리는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늘은 밀린 업무를 끝내겠다.' 그는 식은 커피를 들이켜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때, 에**** 매장의 '박민희 매니저'가 다가왔다.

"대리님, 혹시...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곤란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유 대리가 "무슨 일이시죠?"라고 묻기도 전에, 모니터 구석에서 메신저 알림이 번쩍였다.

[팀장] "유 대리, 어제 그 경위서 작성했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하필 지금. 유 대리가 애써 "아..." 하고 운을 떼는데 박 매니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베** 매장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요. 걔네는 왜 맨날 우리 탓만 하는지... 너무 이기적이지 않아요? "

이야기는 '업무'에서 '불만'으로, 곧 험담으로 흘러갔다. 유 대리가 기계적으로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또다시 알림이 울렸다.

[본사 관리팀] "오전 매출 보고서 왜 아직이에요? 11시까지 공유해 주세요! 본부장님 보고 들어 갑니다."

유 대리는 힐끗 시계를 보았다. 10시 50분. '내 코가 석 자인데...' 속이 탔지만, 박 매니저는 이미 눈시울까지 붉히며 말을 잇고 있었다.

"사실 제가 요즘 집안일 때문에 힘든데... (중략)... 그래서 그런지 걔가 더 밉고 서러워서 일이 손에 안 잡혀요."

[팀장] "왜 답이 없어? 점장님한테 보고 들어가야 한다고!"

모니터는 불이 나고, 눈앞의 직원은 울기 직전이고, 시곗바늘은 마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여기서 박 매니저의 말을 끊으면 '냉정한 관리자'가 될 터였다. 그는 어제 경위서를 쓴 일을 떠올리며 입을 닫았다. 그는 '프로페셔널한 미소'를 애써 지었다.


"아... 그러셨구나. 정말 힘드셨겠네요."

기계적인 공감이 튀어나왔다. 박 매니저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억울함과 분노를 쏟아냈다. 유 대리는 텅 빈 눈으로 모니터의 알림 창과 박 매니저의 얼굴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침내 모든 것을 쏟아낸 박 매니저가 후련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아! 대리님이랑 얘기하니까 속 시원해요! 역시 대리님밖에 없어요. 힘내서 일하러 가볼게요!"

박 매니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그는 방금 그녀가 쏟아낸 '감정 쓰레기'를 뒤집어쓴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늦어버린 보고서와 경위서를 부랴부랴 작성하며 자신을 탓했다. '관리자는 원래 이런 걸 들어줘야 하나? 내가 속이 좁은 건가?' 어제 마신 술의 숙취와, 방금 뒤집어쓴 감정의 숙취가 한데 엉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팀장은 경위서를, 본사는 보고서를 독촉하고 직원은 내게 감정을 쏟아낸다. 모두가 나를 찾아와 제 할 말을 하고 속 시원해하며 돌아가지만... 이렇게 가득 차버린 내 감정 쓰레기통은 대체 누가, 어디에 버려줘야 하는 걸까? 또 술로 풀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유대리는 생각한다. '이걸 다 해 내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좀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 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는 유 대리의 바람은 그저 '사치'일까. 박 매니저의 눈물을 외면하면 '냉정한 관리자'가 되고, 본사의 시점에 맞추다가는 팀장의 지시에 반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인간적인' 관리자, 혹은 '인간미' 없는 '성과만' 내는 관리자.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서 유 대리는 자신만의 답을 찾기 시작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