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관리자인가 성과 내는 직원인가 고민하는 당신께
결국 늦어버린 보고서와 경위서를 들고 유현상 대리는 팀장 자리로 향했다. 팀장은 예상과 달리 화를 내는 대신,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유 대리. 자네가 박 매니저 사정 봐준 거 알아. 착한 거, 인간적인 거 다 좋은데... 그거 알아?"
팀장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자네가 '인간적'이 되느라 늦게 낸 그 보고서 때문에, 내가 본부장한테 얼마나 깨졌는지. 자네의 '인간성'이 나의 '성과'를 망가트린 거야. 그리고 결국 자네 '성과'도 깎아 먹었지. 이게 맞아?"
유 대리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면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은 팀장의 날카로운 지적 앞에서 힘을 잃었다. '성과'와 '인간성'이 제로섬 게임처럼 느껴졌다.
'그래, 나는 관리자야. 냉정해져야 해.'
자리로 돌아온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 시** 매장의 '최숙희 매니저'가 다가왔다. 하소연을 시작하기 직전의, 바로 그 곤란한 표정이었다.
"대리님, 저기 잠깐..."
"죄송합니다, 매니저님."
유 대리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잘랐다.
"지금 바빠서요. 업무 관련 아니면 나중에 메일로 주세요."
최 매니저는 당황한 듯 섭섭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유 대리는 '성과(업무)'를 지켜냈지만, 최 매니저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이게 맞나? 나는 그냥 '인간미 없는' 관리자가 된 거 아닌가?'
그때, 옆 부서 '김 과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직원이 그에게 무언가를 절박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듣다가 직원의 말을 정중히 끊었다.
"잠깐만요. 지금 하시는 얘기, 정말 중요한 문제 같네요. 그런데 제가 5분 뒤에 본사 보고가 있어서 지금은 이 문제에 집중을 못 할 것 같아요."
"..."
"그냥 흘려듣고 싶지 않으니까, 1시간 뒤에 제 자리 말고 회의실에서 30분만 따로 보죠. 그때는 제가 온전히 매니저님 얘기만 들을게요."
직원은 불쾌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준다'라고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유 대리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었다.
'성과'와 '인간성'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계 설정'과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즉,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둘 다 중요한데 무엇이 더 급한지의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두 가지 실수를 깨달았다. 박 매니저에게는 '경계' 없이 휘둘려 '성과'를 놓쳤고, 최 매니저에게는 '성과'를 핑계로 '경계'를 너무 세게 쳐서 '인간성'을 외면했다.
김 과장은 둘 다 존중했다. '보고'라는 성과를 지키면서, '회의실'이라는 질 좋은 시간으로 인간성을 지켰다.
유 대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상처받았을 최 매니저에게 다가갔다.
"매니저님. 아까 제가 너무 바빠서 말을 못 들어 드렸네요. 중요한 일이었을 텐데.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커피라도 한 잔 하면서 얘기 들어 드릴게요."
그제야 최 매니저가 웃음을 되찾았다.
"대리님의 그 배려 한마디가 저의 힘든 마음을 낫게 해 준 것 같아요. 고마워요."
'성과와 인간성, 둘 다 놓칠 수 없었다. 정답은 '선택'이 아니라 '경계'였다. 하지만... 이 경계를 세우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감정 소모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모두 신경을 쓰다 보니 머리도 아프기 시작하고 체력과 감정의 소모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일명 '번아웃'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