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관리자의 설움과 극복 노력
유현상 대리는 달라졌다. 그는 '경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아 네, 매니저님, 그 문제 중요하네요. 제가 지금 본사 보고서 마감 중이라, 30분 뒤 2시에 따로 뵐까요? 고맙습니다." 업무 효율은 놀랍게 올라갔다. 보고서가 밀리는 일도 줄었고, 팀장도 "유 대리, 요즘 일 처리 깔끔해졌네."라며 칭찬했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유 대리의 내면은 매일이 '전투'였다.
이전에 그를 찾아왔던 에**** '박민희 매니저'가 또 그를 찾아왔다. "대리님, 저기 베** 매장이 또..." "매니저님. 지금은 곤란합니다. 좀 있다가 3시에 따로 뵙죠. 커피 살게요." 유 대리는 이전에 배운 대로 단호하게 말했다. 박 매니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됐어요. 대리님도 바쁘신데. 요즘 많이 변하셨네요. 베**매장하고 엄청 친하신가 봐요." 섭섭함을 넘어선 비난이 날아왔다. '내가 너무 냉정했나?' 죄책감과 동시에 억울함이 같이 몰려왔다.
팀장에게 우선순위를 묻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팀장님, 본사 요청 건이랑 점장님 지시 건 중에 어떤 걸 먼저 처리할까요?" "그걸 내가 정해줘야 해? 알아서 좀 해! 신입사원도 아니고 말이야." 'Yes'라고 답하며 휘둘리는 스트레스 대신, 'No' 또는 'Not Now'를 말하며 관계의 긴장을 감수해야 하는 새로운 종류의 스트레스가 그를 짓눌렀다. 경계를 세우는 일은, 'Yes'라고 말하는 것보다 3배는 더 많은 감정 에너지가 들었다.
유 대리는 자신이 '소진'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피곤하다'고만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지옥 같았다. 주말 내내 잠을 잤는데도 월요일 아침이면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협탁 위의 음료는 숙취해소제에서 '만성 피로 해소제'로 바뀌어 있었다. 머릿속에 낀 '안개'도 문제였다. 얼마 전 그가 도왔던 '최숙희 매니저'가 기쁜 얼굴로 달려왔다.
"대리님! 저번에 상담해 주신 덕분에 신규 프로모션 잘 돼서,
이번 주 매출 1위 찍었어요! 감사합니다!"
분명 자신이 성과와 인간성을 모두 잡아낸 '성공 사례'였다. 기뻐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유 대리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 축하합니다. 보고서에 잘 반영해서 포상받을 수 있도록 어필할게요." 영혼 없는 대답만 나갔다. 프로페셔널한 미소조차 지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공허함에 스스로 놀랐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다. 백화점 전체 VVIP 고객 대상 중요 행사 안내 메일을 발송해야 하는 날. 유 대리는 분명히 일정을 체크해 뒀다. 하지만 그는 하루 종일 '경계'를 세우는 수많은 전화와 메신저에 시달린 후, 멍한 상태로 메일 템플릿을 수정했다. 그리고 발송 버튼을 눌렀다. 10분 뒤, CS팀에서 전화가 불이 나게 울렸다. "유 대리님! 지금 VVIP 라운지에서 난리 났어요! 안내 메일에 할인 코드가 작년 걸로 나갔어요!"
머릿속이 하얘졌다. 행사는 엉망이 되었고, 유 대리는 다시 한번 점장실에 불려 가 '기본이 안 됐다'며 호되게 질책당했다. 팀장은 화를 내는 대신 진심으로 혼란스러워했다. "유 대리, 자네답지 않게 왜 이래? 요즘 일 잘 처리하나 싶더니,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면 어쩌나?" 유 대리는 할 말이 없었다. '바빴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다.
그는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자신의 '징후'들을 떠올렸다. 박민희 매니저의 비난에, 억울하지만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 최숙희 매니저의 성공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공허함. 그리고 결정적으로, 머릿속을 뿌옇게 만든 '안개' 때문에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번아웃 ¹'이었다. 그는 성과와 인간성 사이의 '경계'를 세우는 법은 배웠지만, 그 경계를 지키느라 닳아 없어진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은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유대리는 매장을 관리하는 리더이다. 동시에 팀 내에서도 사원이지만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계속되는 번아웃으로 팀 내에서도, 매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갈등만 증폭이 되고 있다.
과연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을까? 그의 고민과 해결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¹번아웃 :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증후군
[세계보건기구(WHO)의 '번아웃'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