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과 그를 지켜줄 기준
유 대리는 자신이 '번아웃' 상태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음이 곧바로 '해결'이 되지는 않았다. 아침은 여전히 지옥 같았고, 머릿속의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돌보기 위해 '퇴근 후 헬스클럽'을 등록하고 주말엔 '북클럽'을 신청했다. 하지만 퇴근 후 저녁시간, 그는 운동복과 러닝화 대신 소파와 한 몸이 되었다.
'나를 돌보는 것'조차 거대한 업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VVIP 메일 사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든 메일을 세 번, 네 번 확인했다. 업무 효율은 떨어졌고, 퇴근은 늦어졌다. 진짜 문제는 그가 세운 '경계'가 시험대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본사에서 신규 프로모션 추가 지원 예산이 내려왔다. 딱 '한 매장'에만 줄 수 있는 한정된 예산이었다. 먼저 찾아온 것은 그에게 비난을 퍼부었던 '박민희 매니저'였다. "대리님, 이번 예산 저희 매장 주셔야 합니다. 저번엔 그렇게 제 말 쳐내시더니... 요즘 대리님이 시**매장(최숙희 매니저 매장)만 편애한다는 소문 도는 거 아시죠? 공정하게 해 주세요."
'공정'이라는 단어가 유 대리의 가슴을 찔렀다. 박 매니저가 나가자 '최숙희 매니저'가 환한 얼굴로 들어왔다. "대리님! 저희 지금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해요. 데이터 보셨죠? 지금 이 예산 저희에게 투자하시면, 이번 분기 전사 1등도 가능합니다. 이건 확실한 투자예요!"
유 대리는 '안개' 낀 머리로 두 매장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데이터는 명확했다. 최숙희 매니저의 말대로였다. 성과와 ROI(투자 대비 수익)는 최 매니저 매장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그의 귓가에는 박 매니저의 '편애'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원칙(데이터)을 따르자니 '오해'가 '사실'이 될 것 같았고, 오해를 피하자니 원칙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는 팀장에게 달려갔다. "팀장님, 이 상황..." 팀장은 그의 말을 잘랐다. "그 데이터 보고도 판단이 안 서? 유 대리, 자네가 매장 담당자야. 자네가 결정하고, 자네가 책임져. 욕먹을 준비도 하고. 그게 리더야."
지난번의 질책과는 달랐다. 팀장은 그에게 '결정'을 요구했다. 그는 깨달았다. 'Yes맨'일 때는 몰랐던 것. 리더의 역할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Yes를 하고, 누구에게 No를 할지' 결정하고 그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리에 돌아와 결재 서류를 덮었다. 점심시간이었다. 그는 거창한 러닝 대신, '점심시간 1시간 온전히 지키기'를 실천하기로 했다. 휴대폰을 뒤집어둔 채 밥을 씹는 데만 집중했다. 식사 후, 10분간 햇볕을 쐬며 잠시 눈을 감았다. '안개'가 아주 조금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오후 2시, 그는 먼저 최 매니저에게 말했다. "매니저님, 데이터를 근거로 이번 지원은 매니저님 매장으로 결정했습니다. 매니저님의 열정과 능력을 믿어보겠습니다." 최 매니저가 기뻐하며 나가자, 박 매니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유 대리는 그녀를 따로 회의실로 불렀다. "매니저님, 들으신 대로 이번 지원은 시** 매장으로 가게 됐습니다. 데이터를 보니..." 박 매니저가 말을 끊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네요! 대리님 정말..."
"하지만, " 유 대리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데이터를 보니, 매니저님 매장은 단순 프로모션 지원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매출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을 같이 한번 만들어 보시죠. 일단 이번 주 수요일 오전에 제가 매장으로 직접 가서 현황부터 같이 점검할게요. 그리고 그와 별개로 본사 이팀장 미팅도 바로 잡아주세요. 브랜드 본사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방도를 같이 협의해보겠습니다."
박민희 매니저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 알겠습니다. 수요일에 뵙죠. 진짜 오시는 거죠?" 그녀는 고마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모습에 더 이상 비난은 하지 않았다. 그는 매장점검을 위해 사무실을 빠져나오자, 다른 브랜드 매니저들이 수군대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잘 나가는 곳만 밀어주네.' 최숙희 매니저의 감사 인사는 그 수군거림에 묻혔다.
그로 인해 그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데이터'와 '원칙'이라는 기준을 세웠다. 그 결과 그는 '고독'해졌다. 박 매니저에게 원망을, 다른 매니저들에게 오해를 샀다. 하지만 이전에 느꼈던 '죄책감'이나 '억울함'과는 다른 감정이 들었다. 지치고 외롭지만, '스스로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는 묘한 '중심'이 잡힌 기분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리더의 고독이란, 비난과 오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조직의 원칙을 지켜내야 하는 그 결정의 무게였다. 그는 책상 위 피로 해소제 병을 치웠다. 대신, '나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적힌 새 메모를 붙였다.
그다음 날 유대리는 감정과 원칙의 사이에서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먼저 상대의 감정을 읽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박민희 매니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