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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통금: 누구를 위하여 사이렌은 울렸을까

그날 밤, 우린 종로의 육상선수였다

by 유블리안


그때 그 시절 상식: 야간 통행금지(통금)

기간: 1945년 ~ 1982년 1월 5일
시간: 밤 12시(자정) ~ 새벽 4시
내용: 자정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모든 시민의 통행이 금지되었습니다.
위반 시: 경찰서나 파출소 유치장(일명 '닭장')에 갇혀 있다가, 다음 날 아침 즉결심판을 받고
벌금을 내야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밤 11시 30분만 되면 귀가 전쟁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1981년 8월 서울 종로



야, 튀어! 떴다, 떴어!


종로 3가 뒷골목. 영호의 비명과 함께 진구의 심장도 갈비뼈를 뚫고 나올 기세로 뛰기 시작했다.

밤 11시 55분. 신데렐라보다 더 가혹한, 대한민국 성인 남자의 귀가 시간이 임박했다.


저 멀리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밤공기를 찢었다. '삐비익~" 그 소리는 마치


“너희들은 이제 독 안의 쥐다”


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소리가 아니었다.

골목 어귀에서 번쩍이는 순찰차의 경광등, 그리고 곤봉을 든 방범대원 아저씨의 실루엣이었다.


“거기 서! 학생 아니야? 거기 서라니까!”


학생은 무슨, 예비군 3년 차인데. 하지만 잡히면 끝이다. 파출소 유치장(일명 ‘닭장’)에서 밤새 모기 밥이 되느니, 차라리 심장이 터져 죽는 게 나았다.


“야, 이쪽! 개구멍!”


영호가 그를 잡아끈 곳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나 다닐 법한 좁은 담벼락 틈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안 들어갔을 그 틈으로 그들은 액체처럼 몸을 구겨 넣었다.


“헉… 헉… 야, 영호야. 네 엉덩이 좀 치워 봐.”


“조용히 해. 숨소리 들려.”


우리는 곰팡이 핀 담벼락과 찌그러진 연탄재 사이에서 숨을 죽였다.

뚜벅, 뚜벅. 방범대원의 군화 발소리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찌익.


어디선가 옷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진구의 바지였다. 아아!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 확정이다.


발소리가 멀어지자마자 그들은 다시 뛰었다. 이번 작전명은 ‘귀소본능’.

목표는 영호네 집 현관이었다.


“야, 3분 남았어! 서말구처럼 뛰어! 서말구!”
“미친놈아, 내가 서말구면 벌써 태릉 갔지!”
“아무튼 다리 안 보이게 뛰라고!”


'1979년 멕시코의 서말구 선수(당시 100m 최고기록 : 10초 31)'에 빙의해 미친 듯이 달렸다.

셔터가 내려가는 철물점 앞에서 미끄러질 뻔하고, 쌓여있는 연탄재를 걷어차 동네 개들을 합창하게 만들면서.

온 동네가 그들을 잡으려고 작당한 것 같았다.


간신히 영호네 집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시곗바늘은 정확히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앵~'

통금 사이렌이 길게 울려 퍼졌다. 세이프.

그 두명은 대문 앞에 널브러졌다. 땀범벅에 흙투성이, 찢어진 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살았다… 야, 우리 방금 10초 3 플랫 끊지 않았냐?”


영호가 킬킬거리며 물었다.


“10초는 무슨, 10년은 늙은 것 같다.”


하지만 진짜 보스전은 이제부터였다. 영호가 침을 꼴깍 삼키며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


거실 불은 꺼져 있었다. 다행이다 싶어 발을 들이미는 순간.


탁.


성냥 긋는 소리와 함께 담배 불빛이 어둠 속에서 붉게 타올랐다. 영호의 아버지였다.

런닝 차림에 부채를 든, 우리 동네 호랑이 선생님.


“지금… 몇 시냐?”


목소리가 어찌나 저음인지 마루가 울리는 것 같았다. 영호는 얼어붙었고, 진구도 덩달아 차려 자세를 취했다.

우리는 통금은 피했지만, 저승사자를 만난 셈이었다. 영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아니, 아부지… 그게 버스가 끊겨서…”
“버스가 끊겨? 네 다리는 장식이야?”


호랑이 아버지가 부채를 탁 접으며 일어났다. 그들은 긴장된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날아올 불벼락을 예상하며.


그런데.


“쯧쯧. 꼴 하고는. 밥은?”


예상 밖의 질문이었다.


“예?”
“밥 먹었냐고, 이 놈들아. 늦게 다니면 배라도 채우고 다니든가. 부엌에 찐 고구마 있다. 먹고 자라.”


아버지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안방으로 쓱 들어가 버리셨다.

방문이 닫히기 전,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놈들이 밤눈은 밝아서, 용케 안 잡혀왔네… 허허.”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다. 긴장이 풀리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부엌에선 고구마 냄새가 났다. 달큼하고 구수한, 살아남은 자들만이 맡을 수 있는 승리의 냄새였다.
영호가 찢어진 진구의 바지를 보며 씩 웃었다.


“진구야, 고구마 먹고 자라. 바지는… 내가 꿰매 줄게.”


그날 밤, 목이 메도록 먹었던 고구마와 동치미 국물 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사이렌 소리도, 방범대원의 호루라기 소리도, 결국 청춘의 배경음악일 뿐이었다.


비록 다음 날 아침, 꿰맨 바지를 본 진구는 엄마에게 2차 등짝 스매싱을 맞긴 했지만 말이다.




1982년 1월에 없어진 '통금'은 진구 삼촌에게 70이 다 되어가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실 정도이니 충격의 기억은 상상이 안될 정도다.


물론 고구마와 등짝 스매싱도 잊지 못할 추억이긴 하겠다.


[다음 편 예고]


"멈춰라, 국기가 내려온다!"


진구 삼촌 못지않게 엄마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바로 나의 국민학교 입학식이다.


1982년 3월 엄마 손을 꼭 잡고 운동장에 서서 희뿌연 모래바람을 맞으며, 왼쪽 가슴엔 콧물 닦을 하얀 손수건을 달고 서 있던 그날. 그리고 오후 6시(동절기 5시) 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애국가 소리에 맞춰,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 하강식을 위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던 그 시절의 기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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