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프러포즈 대작전 실패기

도환의 프러포즈 대환장 파티(유블리안)

by 유블리안




대망의 D-Day.
지난번 ‘반동거’ 선언 이후,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내 머릿속 시뮬레이션은 완벽했다.

장소는 우리에게 가장 편안한 내 자취방.
하지만 분위기는 호텔 스위트룸 못지않게 꾸밀 예정이었다.
퇴근 후 영찬이까지 동원해 풍선을 불고,
바닥에는 화재 위험 없는 LED 티라이트 초로 꽃길을 만들었다.

하이라이트는 일주일 밤을 새워 편집한 ‘영상 편지’였다.
빔프로젝터 세팅까지 마쳤을 때, 내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후우... 도환아, 할 수 있다. 이번엔 진짜 실수 없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도환 씨, 나 왔... 어머?”

현관에 들어선 은하 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두운 거실을 밝히는 은은한 촛불,
그리고 정장 차림으로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나.
여기까지는 완벽했다.

“은하 씨, 저기 앉아볼래요?”

나는 최대한 근사한 목소리로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
이제 영상만 틀면 된다. 나는 비장하게 노트북 엔터키를 눌렀다.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우리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나와야 했다.

[오류: 파일을 재생할 수 없습니다. 코덱을 확인해 주세요.]

“......?”

스크린에는 낭만적인 영상 대신, 시퍼런 오류 메시지 창만 덩그러니 떴다.
정적.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어? 아까 리허설 때는 됐잖아! 왜 갑자기 코덱이 문제인데!’

당황한 나는 허둥지둥 마우스를 움직였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다시 눌러도,
껐다 켜도 묵묵부답이었다.

“아, 잠시만요! 이게 왜 이러지? 은하 씨, 1분만요! 아니 30초만!”

마음이 급해진 나는 노트북을 들고일어나려다,
바닥에 깔아 둔 LED 촛불을 발로 걷어차고 말았다.
와르르- 모형 촛불들이 볼링핀처럼 쓰러지며 꽃길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들고 있던 꽃다발을 놓치면서,
애써 세팅해 둔 케이크 상자를 찌그려트리고 말았다.

“아......”

망했다.
이건 그냥 망한 정도가 아니라, 폭망이었다.
로맨틱은커녕 시트콤 촬영장이 되어버렸다.

나는 찌그러진 케이크와 흩어진 촛불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려 터질 것만 같았다. 울고 싶었다.

“도환 씨.”

그때, 소파에 앉아 있던 은하 씨가 입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화난 건가? 실망했겠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푸하하하하!”

응?

은하 씨는 배를 잡고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다. 눈꼬리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아하하, 진짜 미치겠다. 도환 씨, 이게 뭐예요? 오늘 개콘 준비한 거예요?”

“아니... 그게... 영상이... 촛불이...”

“아우, 진짜 구도환다워. 내가 이래서 도환 씨를 좋아한다니까.”

한참을 웃던 은하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엉망이 된 내 옷매를 다정하게 만져주었다. 웃음기가 가신 그녀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영상 안 봐도 돼요. 도환 씨가 며칠 동안 밤새우면서 다크서클 내려온 거, 영찬 씨랑 낑낑대면서 풍선 불었을 거, 다 보이거든요.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그래서 눈물 나려고 그래요.”

그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꽁꽁 얼어붙었던 내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래, 화려한 영상이 무슨 소용인가. 내 진심은 여기에 있는데.

그녀의 미소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꽃다발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녀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준비했던 멘트는 다 까먹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오히려 꾸며낸 말이 사라지자, 가슴속 깊은 곳에 있던 진짜 내 마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은하 씨... 제가 이렇게 칠칠맞고, 중요할 때마다 실수하고, 엉망진창이에요.”

내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코끝이 찡해지더니 시야가 흐릿해졌다. 남자가 프러포즈하면서 울면 안 되는데.

“그런데... 이런 부족한 저를 웃게 해주는 건, 세상에 은하 씨밖에 없어요. 은하 씨가 없으면... 제 인생은 오늘처럼 코덱이 오류 난 도환이에요. ‘은하’라는 코덱이 저에게 필요해요.”

나는 꽃다발을 그녀에게 내밀며,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평생 웃게 해 줄게요. 가끔은 이렇게 사고 쳐서 웃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평생 내 옆에 있어 줄래요? 우리... 같이 살자.”

내 인생 최대의 용기를 낸 한마디.
은하 씨는 대답 대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세차게, 여러 번.

“응, 좋아. 당연히 그래야지. 같이 살자, 우리.”

그녀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찌그러진 케이크도, 꺼져버린 촛불도, 오류 난 화면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아서, 그래서 더 우리다웠던 프러포즈.
내 인생 최고의 실패이자, 최고의 성공인 날이었다.
완벽한 지구 커플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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