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사소한 오해, 지옥에서 천국으로

은하의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은나무)

by 유블리안





아침부터 이상하게 분주한 날이었다.
예약은 꽉 차 있었고, 취소 없이 그대로 다 들어왔다.
점심시간이라고 적힌 칸은 있었지만, 그건 ‘시간표 속 환상’ 일뿐이었다.


머리를 감겨주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고, 드라이어 소리는 귀에 맴돌았다.
그 와중에 컴플레인 하나까지 겹쳤다.
나는 속으로만 "오늘 왜 이러지…" 하면서 숨 돌릴 틈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끝에서 힘이 쓱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보려고 주머니를 뒤졌지만
까맣게 죽어 있는 화면만이 달랑.


“아… 방전됐나 보다.”
잠깐 충전할 틈도 없이 손님이 들어왔다.
그 뒤로는 아예 생각도 못 했다.


하루가 끝났을 때, 온몸이 휘청거렸다.
문을 닫고 불을 끄며 “오늘 진짜 고생했다…” 하고 한숨을 길게 뱉는데—


“은하 씨!”


익숙한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트렌치코트를 여미며 뒤돌아보니
도환 씨가 차가운 바람맞은 얼굴로 나를 서 있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어? 도환 씨? 여기… 웬일이에요?”


“연락도 안 되고… 톡도 안 읽고… 그래서 걱정돼서 왔어요.”


그 순간에야
아.
휴대전화가 죽은 걸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급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보였다.


“배터리 나갔어요… 진짜 오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 핸드폰 본 기억도 없는데… 걱정했어요?”


걱정했냐고 묻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환 씨 표정이 감정이 여러 개 섞인 얼굴이 되었다.
안도, 서운함, 억울함… 그리고 약간 삐침.


“하아... 진짜... 저는 은하 씨가 화나서 저 차단한 줄 알고… 지옥을 맛봤다고요.”


그 말투가 너무 진지해서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살짝 새어 나올 뻔했다.


“미안해요. 오늘 진짜 여유가 없었어요. 우리 도환 씨 고생했겠네…”


조금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그의 뺨을 살짝 쓰다듬자,


그는 뭔가 계속 삐진 척을 했다.
입술을 댓 발 내밀고.


“흥. 저 상처받아서 치유되려면 오래 걸려요.”


그 태도에
오늘 하루의 피로가 싹 녹아내렸다.
나는 그의 코트를 살짝 잡아당겼다.


살짝 까치발을 들고
가볍게, 아주 짧게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쪽.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멈췄다.
정말… 볼만했다.


“이걸로 화 풀어요. 응?”


그 말에
도환 씨 입가가 천천히 웃음으로 풀리는 게 보였다.
그 표정, 마치 아이스크림 받은 초등학생처럼 행복해 보였다.


“한 번 더 해주면 풀게요.”


“어머, 이 남자 봐라.”
장난치듯 말하면서도
내 마음은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그의 입술에 가볍게 닿았다.


진짜 화해의 키스였다.
롱테이크도 아니고, 영화 같은 장면도 아니지만
그 짧은 순간이
오늘 하루의 고단함과 모든 불안감을 단번에 덮어버렸다.


도환 씨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루 종일 긴장했던 몸이
숨 한 번에 툭 풀려버리는 기분이었다.


“다음부터는… 배터리 관리 잘해요. 제 심장도요.”

나는 피식 웃었다.

“알았어요. 오늘은 제가 미안했어요, 도환 씨.”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참 단순하다고.
오해는 사소했고
그걸 풀어준 건 작은 입맞춤 하나였지만,


그 작은 행동이
우리 사이를 훨씬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 깨달았다.
이 사람…
이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져 주는 것도,
아니, 져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