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끝내 놓지 못한 조국 '고려'

모두가 내일을 향할 때 어제를 돌아본 사람, 이색

by 유블리안
모든 사람이 내일을 향해 걸어갈 때, 끝내 어제를 돌아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려 말의 대학자이자 문신, '목은'이라는 호로 더 익숙한 이색입니다. 그는 고려 말 성리학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 앞에 먼저 남는 것이 있습니다. 나라가 기울어가던 순간에도 끝내 고려를 쉽게 놓지 못했던 사람이라는 쓸쓸한 인상입니다.

역사는 보통 새 시대를 연 사람에게 더 밝은 빛을 비춥니다. 무너지는 나라를 붙잡고 있던 사람보다, 새로운 질서를 만든 사람의 이름이 더 또렷하게 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런 인물들보다, 이미 기울고 있는 시대를 두고, 끝내 발을 떼지 못한 사람에게 더 오래 시선이 머물곤 합니다. 이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려라는 나라가 더는 예전의 고려가 아니라는 사실도, 새로운 흐름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쉽게 돌아서지 못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고려 말은 하나의 저녁 같은 시대였습니다. 해는 이미 기울고 있었고, 오래된 질서는 곳곳에서 금이 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세력이 자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쉽게 내일의 편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새 시대를 준비했고, 누군가는 무너져가는 시대를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이색은 분명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선택을 단순히 답답하다고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안에는 충성도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평생 몸담아온 세계에 대한 애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거창한 신념이라기보다, 오래 함께한 시대를 향한 마지막 예의에 가까웠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도 분명 개혁의 필요성은 느꼈지만 나리를 지키며 개혁을 하는 방향이었을 겁니다.

사람은 늘 더 좋은 길을 몰라서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믿어온 것을 쉽게 배신할 수 없어서 멈춰 서기도 하니까요.

이성계와 가까웠던 이색은 끝내 조선의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새 왕조가 세워진 뒤 그는 유배와 추방을 겪었고, 여러 차례 정치적 압박 속에 놓였습니다. 그럼에도 끝내 목숨을 잃지는 않았고, 자유의 몸이 된 뒤에도 조선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미 나라가 바뀌었어도, 그의 마음까지 함께 돌아서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그래서 이색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늘 옳고 그름만이 아니라는 것. 때로는 의리이고, 때로는 애정이며, 때로는 함께 보낸 시간 그 자체라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을 답답하게 바라보지만, 그 답답함 안에는 한 시대를 끝까지 끌어안고 있던 사람의 슬픔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삶을 단순한 실패로만 부를 수 있을까요? 그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언제 비로소 돌아설 수 있는가. 그리고 정말 돌아서는 것이 늘 더 나은 선택이기만 한가.

새 시대를 연 사람은 분명 강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무는 시대 앞에 끝내 남아 있던 사람도 다른 의미로는 강한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다만 그 강함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라기보다, 무너지는 시간을 끝까지 견디는 힘에 더 가까웠을 것입니다.

이색의 이름이 오래 남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는 시대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한 시대가 사라지는 순간을 외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상하리만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과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도 모두 한 번쯤은 이색과 같은 시간을 지나갑니다. 이미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놓지 못하는 어떤 마음, 돌아서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한 번 더 그 자리를 돌아보게 되는 미련 까지도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이색은 오래전 고려 말의 인물이면서도,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색'은 결국 조국인 고려를 너무 오래 사랑하여
시대를 쉽게 버리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