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하여가 vs 단심가

회유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정몽주의 결심

by 유블리안

술잔이 오가고 있었지만, 사실상 그것은 칼이 오가는 자리였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방원이 건넨 시조 「하여가」는 부드러운 권유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질서가 이미 무너지고 있으니 이제 그만 고집을 꺾고 내일의 편에 서라는, 생사를 건

최후통첩이었습니다.

정몽주 역시 이 잔을 받으면 살아남아 새로운 권력을 쥐고, 거절하면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시대의 균열과 변화, 권력과 신념, 충성과 생존이 팽팽하게 맞부딪히는 기로에 선 숨 막히는 순간이었죠.

정몽주는 자신에게 내밀어진 새로운 시대의 동아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잔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그 유명한 「단심가」가 탄생한 밤.

그것은 훗날 교과서에 박제된 충절의 문장이 아니라, 칼이 들어올 것을 뻔히 아는 술자리에서

기꺼이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겠다는 한 인간의 묵직한 결심이었습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새 질서를 설계한 사람도 있었고,

무너져가는 시대 앞에서 끝내 등을 돌리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성계가 앞장서서 새 시대를 열어젖히고 이방원이 선봉에 나설 때,

정몽주는 이미 기울어진 고려라는 나라를 붙잡고 끝까지 반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세상물정을 모르는 고지식한 선비가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외교관이자 정치인이었던 그는 고려의 명운이 다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어느 쪽이 이기는 판인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타협이라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망설이고, 누군가는 조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지만,

누군가는 끝까지 지키려다 무너지기도 합니다.


정몽주는 바로 그 '끝까지 신념을 지키려다 무너진 사람'의 곁에 서 있었습니다.

적당히 눈감고 손을 잡으면 편안한 내일이 보장되는데도,

스스로 정한 내면의 선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벼랑 끝으로 걸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밤의 정몽주를 떠올리면,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맞닿아 있습니다.

타협하면 편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자기 안의 직업윤리나 양심을 꺾지 못해

손해를 짊어지는 오늘날 누군가와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정몽주는 자신의 목숨보다, 끝까지 자기 신념을 배신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