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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5화. 내 이름은 오삼남!

‘어떻게 여자아이 이름을 삼남이로 지을 수가 있단 말인가?'

by 마음리본

”엄마는 사 먹자니까는 뭐하러 또 찰밥을 싸 왔어?“

흔들리는 차 안에서 큰언니는 엄마가 싸온 찰밥을 김에다 싸 먹으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의 찰밥을 제일 좋아하는 큰언니다.

”아따, 남으믄 느그들 싸 갖고 가믄 되제 어째야. 애기들이 다 좋아한디.

남으믄 싸갖고들 가라. 아직에(아침에) 진서방 출근할 때 얼른 전자렌지 돌려줘.

이 한한(많은) 식구들이 다 사묵으믄 을마나 돈이 많이 들겄냐.“

무슨 날만 되면 찰밥을 하는 김순례 여사.

찹쌀과 팥, 밤, 율무, 약콩, 적두, 강낭콩 등 온갖 잡곡들을 섞어 만든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맛. 그 어디에서도 사 먹을 수 없는 김순례표 명품 밥상이다.

그 옛날, 새끼들 입에서 배고프다는 말 나오는 게 제일 무서웠다는 엄마는

항상 오남매가 먹을 양의 10배 정도로 넉넉한 양을 하셨다.

배부르게 먹고도, 집집마다 냉동실을 꽉 채워줄 정도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철없는 어렸을 땐 몰랐다. 휴게소에서 여러번 사용한 기름에 튀긴 알감자와

엄마의 찰밥은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서울 올라오는 고속버스에서

우동 한번 사주지 않고 싸온 찰밥을 먹으라는 엄마가 야속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삼남은 생각한다.

이 쫀득쫀득하고 씹을수록 달디단 찰밥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차는 익숙한 고향 풍경 속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삼남에게 어린 시절은 늘 노을처럼 스미던 기억이다.

붉고 아름답지만, 쓸쓸하고, 서늘했다.

지금 고향 집은 3칸짜리 가게와 방이 붙어있는 양옥으로 바뀌었지만, 그전엔 달랐다.

작은 문을 지나 마당을 들어서면 한가운데 수돗가,

왼쪽엔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사는 두 칸짜리 집,

그리고 주인 세대가 따로 있던 한옥 기와집이었다.

그 집은, 엄마 김순례가 큰집에서 분가하며 손수 지은 집이었다.

지금은 아흔을 넘기고 치매를 앓고 계신 큰엄마.

젊은 시절의 그녀는 돈을 긁어모으는 맏며느리였다.

“느그 큰엄마는 영산강에 기(게) 잡으러 가믄 남들은 한 바구리 잡을 거

시(세) 바구리를 잡았제. 돈을 아조 갈퀴로 긁었당께.”

순례에게 비친 큰 형님은 뭐든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 큰엄마 밑에서 엄마는 일 못한다고 얼마나 많이 혼났는지도 덧붙였다.

“열여덟 살 묵은 빼빼 마른 애기가 뭔 일을 했겄냐.

일 못한다고 구박을 엄청 허드라고…”

그래도, 정이 많았던 큰엄마는 일 못하는 동서를 딸처럼 여겼다.

다리 하나 불편한 시동생이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소재지에 땅을 사서 가게 딸린 집을 짓는 데 큰 돈을 보태주었다.

손아랫동서가 집 짓는 데 돈을 보태주는 일, 지금 세상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분가한 후 삼남이네는 업종을 문방구에서 떡집으로 변경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그는 술만 마시면 물건을 다 퍼주었다.

김순례 여사는 살림이 거덜날까, 걱정되어 문방구 대신 떡 기술을 배웠다.

10평 남짓 떡방앗간엔 떡가루 빻는 기계, 떡이 눌러져 나오는 기계,

참깨 볶는 기계, 참기름 짜는 기계가 쉴새없이 돌아갔다.

고소한 깨 볶는 냄새, 떡 찌는 김이 가게를 가득 메웠다.

김순례 여사는 동네에서 손맛 좋기로 유명했고,

‘떡 맛있게 하는 집 하영이 엄마’라 불렸다.

엄마의 옷에서는 항상 참기름 냄새가 났다.


결혼 10년 만에 얻은 큰딸 하영이. 예쁘고 귀한 딸.

연달아 둘째 딸까지 생기자 아버지는 슬슬 아들 타령을 하기 시작했단다.

“나도 아들 하나 있었으면 쓰겄네.”

처음엔 웃으며 하던 말이 술이 들어가면 배를 툭툭 치며 타박으로 변했다.

“이놈으 뱃속에 아들은 없는갑서?”

작은 언니는 진영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줬음에도 불구하고

‘땅코’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딸 이름을 천하게 부르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

“땅코야!”

큰언니는 아직도, 가끔 동생을 그렇게 부른다. 이쁜 얼굴에 땅코가 왠말인가?

나쁜 기운을 딸에게 보태어 다음엔 꼭 아들을 낳으라는 의미였겠지.


땅코라는 별명 탓인지 그 소원은 이뤄졌다.

셋째는 아들이었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

아버지는 그날 술에 취해 기뻐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나도 이제 아들이 생겼다’며 동네 술값을 죄다 계산하고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들 욕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들 둘을 꼭 낳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로 넷째가 태어났다.


삼남의 불행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또 딸이었다. 아버지는 딸이라는 이유로 넷째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다.

순례는 작은 아기를 품에 안고 남편에게 내밀며 말했다.

“애기 좀 봐 보쇼. 겁나게 이뿌요, 안?”

아버지는 끝내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아이들 이름을 날짜와 시를 맞춰 손수 이름짓던 아버지였다.

순례는 그 아이를 삼례야, 삼례야 부르며 정을 쏟았다.

“젖만 믹이믄 순허니 을마나 이쁘고 불쌍했는지… 내가 삼례야, 삼례야 했제.”

순례는 남편이 외면할수록 아기에게 더 정을 주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대충 사주를 보고 말했다.

“삼례 말고, 삼남이로 하소.”

셋째 딸. 삼남이. 그 이름 안에는 아버지의 소원이 담겨 있었다.

그토록 원했던 아들 둘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딸에게 이름으로 그 뜻을 남긴 것이다.



‘어떻게 여자아이 이름을 삼남이로 지을 수가 있단 말인가?

삼남이가 뭔가? 삼남이가?’

삼남에게 그 이름은 고통이자, 웃지 못할 코미디였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너네 언니는 일남이냐, 이남이냐?”

놀림처럼 말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삼남이라는 이름은 남자 이름으로 착각했고,

교사가 되어선 나이 많은 할머니 선생님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어디서나 정체성을 설명해야 했다.

‘삼남은 왜 그토록 인정받고 싶었을까. 왜 그렇게 착해야만 했을까.’

지금은 안다. 존재를 부정당한 아이는 누군가에게

‘네가 필요해.’라는 말을 듣기 위해 평생을 발버둥치며 살게 된다는 걸.

그래서였을 것이다.

늘 착하고, 괜찮고, 웃는 아이가 되어야 사랑받는다고 믿었던 것이.

거절하지 못하고, 속상해도 웃고, 언제나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살려고 했다.

그렇게 조용히, 천천히 소진되어 갔다.

그 아이, 삼남이. 지금 그 이름을 다시 꺼내 본다.

그 때는 몰랐던 어린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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