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부 4화. 타향살이 2

그 기도의 무게를, 그 떨림을, 그 간절함을...

by 마음리본
두 언니들의 희생 덕분에

삼남과 오빠, 남동생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다.

삼남은 성진시에 있는 여고에 진학했다.

그곳은 도시였고, 시골에서 왔다는 것이 매일을 낯설고 무겁게 만들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만 도착할 수 있는 학교.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버스는 단 한 대.

버스를 놓치면 30분을 기댜려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비교적 낮은 길을 오르면 본격적인 경사도가 나왔다.

거기서부터는 경사 70도의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겨울에도 땀이 뻘뻘 흘렀다. 버스를 눈 앞에서 놓치고 한참을 기다렸다

같은 지각 동지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허망한 기대도 잠시!

버스 동지 모두가 함께 단체기합을 받았다.

분명히 학교 교문은 저 언덕 아래인데, 지각은 건물 앞에서 잡다니 억울했다.

헥헥 대며 언덕을 올라오자마자 엎드려뻗쳐를 하는 맛이란 안해 본 사람은 모른다.

‘오매, *병하네.’

욕을 할 줄 모르는 나도 엄마의 전라도 욕이 마구 튀어 나왔다.


당시만 해도, 무상급식 없이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던 시절,

매일 두 끼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작은 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집에서 큰오빠 다음으로 부지런한 작은 언니가 삼남의 도시락 담당이었다.

그녀는 매일 지옥철을 타고 서울로 출근하면서도 한 번도 그 새벽을 건너뛴 적이 없었다.

그 잠 많던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반찬은 늘 계란 후라이와 김치, 또는 스팸과 김치였다.

친구들의 도시락은 화려했다.

불고기, 제육, 비엔나 소세지, 계란말이, 멸치볶음, 장조림....

함께 도시락을 꺼내 먹기 부끄러울 정도로...

그때는 몰랐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다. 언니에게 불평하고 짜증도 냈다.

친구들의 반짝이는 도시락, 학원과 과외, 아빠들이 태워주는 자가용.

나만 왜 이런가, 왜 우리는 맨날 이렇게 가난한가?

불평을 삼키며 살았다. 그러다 결국, 고3이 되던 해, 결핵에 걸렸다.

몸이 먼저 무너졌다.


그 시절, 엄마는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막내 딸이 객지에서 힘들어질 것을.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저녁 밥상 앞에서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내 새끼, 객지 가믄 따순 엄마 밥 못 얻어묵을 것인디,
얼마나 힘들꼬이. 고상스러운 시상을 어째야쓰까.....“

밥 숟갈을 뜨다 말고 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시며 한참을 말이 없으셨다.

”엄마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디. 왜 울어? 나 잘 살텡께 울지 마.“

삼남은 엄마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헤어지기 싫어서 우는 줄 알았다.


그리고 도시로 떠나던 날 새벽, 마당에 정한수를 떠 놓고 절하는 엄마를 보았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 자식들이 큰일을 앞두고 있을 때마다

천지신명께 기도하는 엄마였다. 도시로 떠나는 딸의 무사 안녕을,

자신의 손을 떠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딸의 평안을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으리라.

그 굽은 어깨, 떨리는 손, 하늘의 기운을 한껏 끌어모아 엎드리던 무릎....

자식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 길을 하늘에 맡기고 있던 모습을 기억한다.


삼남이 아들을 군에 보내고

밤중에 군인들이 유리창 깨는 뉴스 한 장면에도 심장이 덜컥하는 걸 보면,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기도의 무게를, 그 떨림을, 그 간절함을.

언니들이 버텨낸 서울의 밤,

엄마가 울며 떠나보내던 고향의 아침,

그 모든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삼남을 만들었다.


삼남은 도시에서의 삶을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늘 고민했다.

작고 낡은 시골집을 팔아 수도권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건 엄마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그 전환의 이면엔, 좁은 아파트,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 매일 돈이 드는 외출,

텃밭 한 줄 구하려면 구청에서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있었다.

삼남은 타향살이의 쓸쓸함과 치열함을 뼛속 깊이 안다.

고향을 떠났기에 얻은 것들과 잃어버린 뿌리 사이에서 그녀는 늘 흔들렸다.

도시는 삶을 윤택하게 했지만, 정체성을 앗아갔다.

고향은 가난했지만, 자신의 일부였다.

삼남은 깨닫는다. 타향살이란, 삶을 넓히는 일이면서도

자신의 중심이 어디인지 잊지 않기 위한 싸움이라는 것을.


keyword
이전 06화1부 4화. 타향살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