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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연의 시작. 백대웅선생님

by Sylvia 실비아

딸: 난 고기 구워 먹으면 꼭 백 선생님 생각이 나요. 우리 집은 주로 불고기를 먹었는데 백선생님 댁에만 가면 항상 생고기를 그대로 구워서 소금하고 후추에 찍어 먹었잖아요. 어릴 때는 그게 신기해서 더 기억에 남았나 봐요. 아빠도 기억나요?


아빠: 그럼, 기억나고 말고. 그게 백대웅 선생님 댁이지. 그 집은 언제나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드나들었으니까. 주로 예술하는 사람들이 많았지. 우리 가족도 그 덕에 꽤 자주 초대를 받았던 것 같아. 엄마가 성당 성가대 반주자로 있었으니까 그 인연 덕도 봤지. 사람들 모여 있으면 늘 자연스럽게 음식이 따라 나왔는데, 특히 백 선생이 항상 대접을 넉넉하게 하셨어. 부인이 요리솜씨가 탁월하기도 했고, 백 선생이 살아 계셨을 땐 그 집이 예술가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으니까… 그게 참 인상 깊었지.


딸: 맞아 맞아.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꽤 오랜 시간 이 선생님이랑 친하게 지내시네요. 얼마 전에도 엄마 생일이라고 이선생님이 생파도 해주신 모양이던데요?


아빠: 그래, 네가 유치원시절부터 시작된 인연이니까 참 오래된 인연이구나. 백대웅 선생은 내 고등학교 6년 선배야. 광주일고 6년 선배. 내 기억으론 늘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있었지.


딸: 뭐야, 아빠 학교 선배였어요? 와, 세상 진짜 좁다. 그러면 고등학교 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거예요?


아빠: 아니, 고등학교 때는 그 선생님 존재도 몰랐지. 네가 북가좌동에서 유치원 다닐 때쯤, 수색성당에서 만나게 된 거야. 엄마가 수색성당 성가대였잖아? 반주자가 백 선생님 부인이신 이희경 선생이었어. 엄마가 성가대반주자에 구멍 나면 늘 때우는 '대타 전문 성가대원'이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진 거지. 엄마는 말하자면 이선생님의 ‘대타’였지.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딸: 와, 엄마 완전 귀엽잖아요? 엄마가 ‘대타’이었다고요?


아빠: 그럼! 이 선생님이 반주 못하신다고 하면 엄마가 대신했지. 근데 대타는 아무나 하는 줄 아니? 평소에 반주를 안 하다가 해도 티가 안 나게 잘하려면 아주 실력이 좋아야 하는 거란다. ㅎㅎㅎ 아무튼, 이선생님의 부군이 광주일고 출신이라는데 아빠도 광주일고를 나왔다고 하면서 서로 알게 된 거지. 엄마 덕분에 아빠 사진 인생에 아주 귀한 인연을 얻게 된 셈이지. 자주 만나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홍제동 미성아파트로 가면서부터야. 백선생님이 그 그룹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른이셨고 모임의 중심이셨지. 나중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원장으로 계실 때도 그 근처 아파트에서 사셨거든. 그때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드나들었지. 예술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늘 모여 앉아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고, 밥 먹으며 토론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어. 항상 그 자리에 국악 하는 사람, 연극하는 사람, 철학자까지 다양하게 섞여서 대화가 끝도 없었지. 그게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재밌는 거야. 백 선생이 국악인들과 학자들이 모인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드셨거든. 근데 그 중심인물이 바로 도올 김용옥이었어. 근데 그 이가 고려대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나와서 갈 곳이 없으니까, 연대에 있는 자기 부인인 최영애 교수 연구실에서 세미나를 했지. 백 선생은 그 모임에서 거의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였고.


딸: 이야, 진짜 멋지다. 요즘은 그런 분위기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거의 문화 살롱 같았네요. 그 모임이 바로 그 유명한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거죠? 더 알고 싶어요. 그게 정확히 어떤 모임이었나요?


아빠: 그래, '악서고회(樂書孤會) '는 이름 그대로 음악과 책, 그리고 고전을 중심으로 모이는 문화 예술 모임이었지. 백 선생이 이 모임의 큰 기둥이었고, 도올 김용옥선생이 주도로 인문학적으로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지. 나는 사진작가로서 인연이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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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6년 연세대에서... - 사진 박옥수

딸: 와, 우리 아빠 좀 멋지다. '악서고회(樂書孤會)' 일단 무슨 비밀결사단 같은 이름이에요. 근데 왜 하필 '악서고회(樂書孤會)’예요? 이름도 뭔가 너무 멋지면서 살짝 무서워요.


아빠: 하하, 너 또 무슨 비밀결사야. 악서고회(樂書孤會)는 음악이랑 철학, 그리고 다양한 학문을 함께 고민했던 특별한 공부 모임이었어. 특히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주축이 돼서 문화적으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만든 그런 모임이었지.


딸: 김용옥 선생님? 아, 그 도올 김용옥 선생님? 와우, 그분이면 완전 쎄신(세신) 분 아닌가요? 항상 논란의 중심이신데, 그분이 만드셨다면 보통 모임은 아닐 거 같은데요! 완전 강렬해요! 근데 거기서는 무슨 공부를 했는데요? 그냥 철학이랑 음악이라고 하기엔 뭔가 너무 포괄적인데요!


아빠: 아주 구체적이었지. 다산 정약용의 '악서고존'이란 책을 주로 다루면서, 동양철학, 서양철학, 역사학, 심지어는 언어학과 예술론까지 폭넓게 공부했단다. 매주 정말 치열했어. 당시 젊은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음악가, 작곡가, 철학자들이 모여 서로 격렬하게 의견을 나눴지. '악서고회(樂書孤會)'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쓴 '악서고존'이라는 책에서 따온 이름이야. 음악에 관한 유일무이하게 남은 책이라는 의미로, 음악과 철학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논쟁했던 그런 모임이었어. 모임에서는 동양철학, 서양철학, 음악이론 등을 강독하고 토론한 걸로 알고 있어.


딸: 대박… 완전 '힙스터' 지식인들의 힙한 클럽이었네요. 그런데 그분들이 왜 모였어요? 그냥 음악 좋아서? 아니면 철학을 엄청 좋아해서? 저는 그런 모임이면 꼭 술이랑 춤이 필수일 것 같아요! 그분들도 그런 거 좋아하셨나요?


아빠: 아니, 오히려 정반대였어. 특히 백대웅 선생과 도올 김용옥 선생은 술을 못하셨어. 그런데도 서로 깊이 이야기하며 위로하고 격려했지.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뜻을 알았던, 그런 시대였지.


딸: 와… 그런데 백 선생님이랑 도올 선생님은 원래 친하셨던 거예요? 그 두 분은 완전 반대 스타일 같던데요. 백 선생님은 엄청 조용하고 예술가 스타일이고, 도올 선생님은 막 팍팍 소리 지르시는 스타일 같잖아요!


아빠: 네 말대로 두 사람 성격은 많이 달랐지. 근데 서로 고민하는 지점이 같았거든. 김용옥 선생이 쓴 논문 「번역에 있어서의 공간과 시간」이라는 글이 있었는데, 백 선생이 그걸 읽고는 엄청 감동했다고 들었어. 국악도 서양의 오선지로 번역해야 하고, 전통도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깊이 공감했지. 그때부터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거야.


딸: 와우! 그게 진짜 '케미'죠. 듣고 보니까 악서고회(樂書孤會) 완전 매력적이에요! 근데 그렇게 잘 나가던 모임이 왜 끝난 거예요? 설마 싸웠어요? 너무 격렬한 토론 탓인가요?


아빠: 음, 그렇게 단순한 이유는 아니었겠지. 시대가 변했고, 사회 분위기도 변했어. 게다가 김용옥 선생님과 백대웅 선생님 사이에도 의견 차이가 있었고… 결국 그렇게 역사 속으로 자연스레 사라졌단다. 백 선생은 우리나라 국악작곡계의 거장으로 국악 이론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을 통해 전통문화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분이고, 도올 김용옥 선생은 우리나라 철학계의 거장으로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지금도 우리나라 철학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분이시고 이 두 분이 의기투합해서 멋진 일을 하셨던 것이지.


딸: 아, 뭔가 너무 드라마틱하네요. 그래도 그런 모임이 있었다는 거 자체가 신기해요. 저도 나중에 그런 멋진 모임 만들래요! 이름은 음… 엠지악서회? 어때요, 완전 멋지죠?


아빠: 하하, 너다운 이름이구나. 네 세대가 다시 그런 고민과 열정을 이어간다면 분명 더 멋진 일이 생기겠지. 기대할게!


딸: 근데요. 진짜, 그때 아빠는 뭔가 완전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그런 멋진 분들과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교류할 수 있었잖아요. 그런 분들이 그냥 아빠 친구였다니, 좀 믿기지 않는데?

19860621-000009---김용옥.jpg 1986년 악서고회 - 사진 박옥수

아빠: 그래, 백 선생이 나를 사진 찍는 사람으로 그 모임에 추천했어. 덕분에 도올과도 인연이 된 거지. 백 선생은 평소엔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문화적 신념이 굉장히 강한 분이었어. 늘 예술인들을 만나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그렇게 고기며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했지. 그리고 운도 운이지만 결국 인연이라는 게 참 중요한 거야. 만약 네 엄마가 성가대 반주를 안 했으면, 내가 광주일고 선배인 백 선생을 만날 일도 없었겠고, 도올 김용옥 선생의 사진을 찍을 일도 없었겠지. 그러니까 사람 인연이 참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거다. 근데 백 선생이 좀 일찍 돌아가셨지. 2011년. 많이 안타까웠어.


딸: 그러게요. 그런데 백대웅 선생님 돌아가셨을 때 제가 영국에 있었잖아요. 아빠한테 소식 듣고 정말 아쉬웠던 기억이 나요. 근데 돌아가신 후에 어떤 훈장 같은 걸 받으셨다고 했던가요?


아빠: 맞아. 2011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지 딱 10년 되는 해에 정부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드렸어. 사실 그런 훈장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주로 받으려고 로비도 하고 그런다는데, 백 선생은 그런 걸 할 분이 아니었지. 오히려 돌아가신 지 꽤 됐는데도 잊지 않고 주는 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그분을 떠올렸지.


딸: 역시, 돌아가시고 나서도 인정을 받는다는 게 쉽지 않은 건데. 진짜 얼마나 많은 분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셨으면 그럴까요? 아빠도 그렇게 문화 예술계에서 사진을 많이 찍으셨는데, 아빠도 나중에 문화훈장 같은 거 하나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빠도 평생 그렇게 훌륭한 분들 사진 찍고 기록 남기셨잖아요. 로비 좀 해봐요, 로비!


아빠: 야, 그런 걸 로비로 받으면 가치가 있겠냐? 에이,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그저 좋은 사람들과 인연 맺고 좋은 사진 찍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진짜 귀한 인연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보상이거든.


딸: 그런 말 하실 줄 알았어요. 하여튼 멋져요 아빠! 아무튼 백 선생님 댁에서 먹던 고기 생각나서 시작한 얘긴데, 아빠랑 얘기하다 보니까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고 ‘인연’인 거 같아요. 백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셨기에 그 주변에 수많은 멋진 사람들이 모였고, 또 서로가 서로를 통해 발전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결국 어떤 시대든, 문화든, 그 중심에는 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연의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 맞아,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었지. 인연이란 게 결국 우연이 아니더라고.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고,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지. 백 선생님 덕분에 내 인생도 참 풍요로웠던 거야. 당시 악서고회(樂書孤會) 같은 모임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음악이나 철학 때문만은 아니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치열하게 고민을 나누고, 그렇게 부딪히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며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었지. 어떤 훌륭한 예술이나 학문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소통과 존중 없이는 생겨나기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지.


딸: 맞아요, 결국 삶이란 사람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네요. 어쩌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정한 유산은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 자체보다는, 그 모임을 가능하게 했던 열린 마음과 인연을 소중히 하는 태도 아닐까요? 앞으로의 우리 세대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마음일 것 같아요. 진짜, 삶의 풍요로움이란 게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결국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에서 나오는 거네요. 아빠 이야기 덕분에 오늘도 하나 배워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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