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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찍고 인연을 남기다, 도올 김용옥

by Sylvia 실비아

딸: 아빠,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요. 김지하 선생님 찍었다는 사진 말이에요. 그거 진짜 그 분이랑 친해서 찍으러 간 거예요? 아님 걍 찍어달라니까 찍으러 간 거예요?


아빠: 무슨 친하고 말고가 어디있어. 나는 그날 실물은 처음 보고, 그전에 말 한 마디 해본 적도 없고 그냥 그날 목동에 있는 김지하 씨네 아파트에 들어가서 사진만 찍고 나온 거지. 근데 말이지, 사실 김지하를 찍으러 간 게 목적은 아니었어.


딸: 아빠도 참, 목적이 없는데 목동까지 출동했다고요? 이거 뭐 자원봉사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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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0710-000086-김지하 김용옥-목동.JPG 1989년 목동에서 김지하와 김용옥 - 사진 박옥수

아빠 : 하하, 자원봉사는 무슨. 그때가 언제였더라… 1989년 7월 10일이야. 도올 김용옥선생이 김지하 시인과 동학 얘기를 한다고 하면서 사진을 찍어 달라기에 간 거였지. 그때 그 개다리 소반 하나 딱 놓고 둘이 마주 앉아서 진짜 진지하게 동학 얘기를 주고받더라고. 나는 옆에서 찰칵찰칵 셔터만 눌렀지 뭐. 김지하라는 사람은, 야, 그 당시에 이미 완전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게 벌써 언제적이냐…


딸: 크으~ 아빠 멋지다. 살아있는 역사 옆에서 셔터질이라니. 그렇지 뭔가 누구를 바라보는 사진이야? 이렇게 딱 바라보면서~ 딱 이렇게 해가지고 여기 손금이 겁나 잘 나왔어요. 근데 그 사진 나중에 어찌됐어요?


아빠 : 글쎄, 그땐 어떻게 한 것은 아니고, 얼마전에 내가 도올과 관련된 사진들을 모아서 다 드렸지. 도올 김용옥 선생과 내가 기획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인데, 내가 찍은 사진을 전부 다 보내주니까 그 속에 김지하 씨하고 찍은 사진도 다 들어 있었단다. 그걸 도올이 여러 방면으로 잘 활용하고 계시지. 이를테면 본인의 너투브에서 강의를 할 때도 띄우면서 이야기를 하고… 도올이 쓴 동학에 관한 책이 있는데, 동학에 대해서 김지하시인이 많이 알고 계시니까 책을 쓰는 과정에서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김지하시인을 만난 것이고, 내가 그런 자리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 사진을 찍은 사람이 된 것이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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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 그럼 ‘김지하를 다시 본다.’ 사진의 저 맞은편에는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가 앉아 있는 거네요.


아빠: 맞아! 지금 마주 앉아서 양반다리하고 서로 마주 앉아서 대화를 하는 거야. 나도 잊고 있었는데 최근에 도올이 동학 책을 내고 유튜브 강의할 때 그 사진이 화면에 딱 뜨더라니까? 순간 소름 돋았지. 아빠가 없었으면 누가 그날 그 자리 있었다는 걸 증명이나 하겠냐? 하여튼 도올도 사진이 없었으면 사람들이 다 거짓말이라고 했을지도 모르지! 김지하씨는 한마디로 세계적인 인물이야. 김지하 시인이 오적이라는, 다섯 도적놈들이라는 시를 발표했었는데 그 시가 어마어마한 반향을 일으켰었지. 우리나라에서 그 위치라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야. 시인으로 김지하도 우리 딸이 찾아보고 알아야 돼. 아빠가 김지하를 모르고 김지하씨를 이야기하면 어떻게 하겠니? 사실 이분은 워낙 유명한 분이니까 신문 기자들이 찍어놓은 사진들도 많고 한데 개마서원에서 이번에 책이 나올 때 디자인을 담당한 친구가 아빠 사진을 쓰겠다고 해서 쓰라고 한거야.


딸 : 나는 하여튼 김지하 시인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렇게 자세한 내용은 전혀 몰랐는데… 아무튼 저 표지가 아빠 사진을 썼다고 그래서 너무 궁금했어요. 아빠가 어쨌든 나름 그 시대에 예술가들을 많이 찍었잖아요. ‘예인’책도 그렇고 다음엔 그 책에 나온 분들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근데 잠깐만요, 아빠. 그 책 제목 뭐라 그랬어요? '동경대전'? 진짜 심각한 책 같아. 두께 좀 봐! 근데 요즘 누가 이거 읽어요? 솔직히 이렇게 두꺼우면 거의 셀프 호신용 아이템 아니에요?


아빠 : 이 녀석 좀 봐라! 그게 지금 동학을 다시 알리자는 엄청 중요한 책이야. 도올이 얼마나 그걸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김지하 같은 인물이랑 직접 만나서 대담까지 하겠냐. 그리고 김지하 시인은 1970년 사상계에 발표한 ‘오적’이라는 풍자시로 박정희 독재정권 때 감옥까지 갔던 사람이야. 그만큼 시대의 상징이었지.


딸 : 아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또 약간 존경 모드가 되려고 하는데요? 근데 그렇게 엄청난 분인데, 표지에 사진 찍은 '박옥수' 이름 안 넣어준 건 뭐예요? 이거 인권 유린 아닙니까?


아빠 :인권 유린은 무슨. 김지하사진 촬영자 박옥수라고 써있어! 이름 석자 넣어서 뭐해, 사진이 잘 쓰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런 데다 이름 석자 박혀봤자 나랑 아무 상관 없어. 사실 그 사진 찍을 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도올이 더 재미있는 사람이지. 내가 찍은 사진 덕분에 지금까지 나랑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거고 말야.


딸: 앗, 드디어 도올 선생님 등장이다! 근데 그분은 또 어찌 알게 됐어요? 이것도 설마 '사진 찍어주세요~' 이러면서 우연히 만난 거 아니죠?


아빠: 우연히 만난 건 아니지. 그때 백대웅 선생 때문이었어. 86년이었나, 그 즈음이지. 백 선생이 한번 나한테 그러더라고, 김용옥 선생 사진을 찍어달라고. 도올이란 분이 이제 막 양심선언을 하고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하면서 한창 유명해졌던 시절이야.


딸: 그게 무슨 일인데요?


아빠: 당시 도올이 양심 선언을 하고 교수직을 그만뒀거든.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지. 그리고 그 무렵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내면서 더 유명해졌어.


딸: 찾아볼래요, 『여자란 무엇인가』? 제목이 너무 도발적인데요? 그때도 이런 제목이 먹혔어요?


아빠: 아냐, 전혀 도발적인 책이 아니고 엄청 철학적이고 어려운 책이야. 아빠도 읽다가 머리가 터질 것 같았어.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어려운 책이 하필 중학생 딸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 정말 희한한 일이었어.


딸: 헐, 제목만 들으면 완전 이상한 책인데, 그걸 중학생 딸한테 줬다고요? 나 같으면 진짜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 근데 진짜 그렇게 팔린 거예요?


아빠: 응, 내가 보기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 한 페이지를 넘기는데도 그토록 힘든 책인데, 사람들이 딸을 위해 사는 책이라며 너도나도 사들였다고 하더라.


딸: 어머, 진짜 신기하다. 근데 아빠, 도올 선생님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요? 사진 찍기 어려웠어요?

20210318_085713.jpg 사진, 표지디자인 - 박옥수

아빠: 그럼, 얼마나 고민이 컸겠어? 처음 만난 철학자에게 어떤 사진적 에센스를 뽑아낼 수 있겠냐고. 도올이 이전에 냈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이 절판되었다가 재출간을 하게 됐는데 거기에 쓸 사진이 필요해서 백선생의 소개로 도올과 사진 인연이 시작된 거지. 사실 당시엔 도올이 워낙 이슈의 중심에 서 있었으니,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정말 큰일이었어.


딸: 그래서 잘 찍었어요?


아빠: 찍긴 찍었는데, 막상 찍으려니 무슨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사진집들을 꺼내 보여주면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 도올이 처음엔 사진에 대해 별 관심 없는 듯 보였는데,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더라고. 결국 사진 몇 장을 찍었는데 그걸 가지고 책 표지로 쓰겠다고 하더라고.


딸: 진짜요? 아빠 사진이 책 표지가 됐어요?


아빠: 응, 결국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 표지로 내 사진을 쓰게 된 거야. 도올의 사진이 돋보이도록 레이아웃이며 아빠가 다 하고, 내가 직접 인쇄용 필름까지 만들어줬었지. 그 때 당시만 해도 표지의 전면에 걸쳐 저자 사진으로 디자인을 한 경우는 처음일꺼야. 그랬는데 책이 엄청 잘 팔렸어.


딸: 우와, 대박! 그렇게 쉽게 베스트셀러 표지 사진이 되다니, 아빠 진짜 운도 좋으셨네요.


아빠: 아니, 진짜 운이 좋았다기보다 시절이 그랬어. 그리고나선 어느 날 도올에게서 새벽부터 전화가 온거야. 책이 너무 잘 나왔다며 조선일보 전면 기사까지 났다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아침 일찍 책을 들고 집까지 찾아왔지. 그때 우리가 홍제동 미성 아파트 살던 시절이야.


딸: 아, 나 그 아파트 기억나요! 어릴 때 살던 그곳.


아빠: 맞아, 그때 도올이 책을 들고 오더니 사진에 대해 멋진 문장을 써줬어. "사진이란 결국 있는 그대로의 실을 그리는 것이며, 무심을 그리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 뜻을 그리는데 있지 그 형체를 그리는데 있지 않다." 이 말이 그날 우리가 했던 대화를 그대로 담고 있었어. (寫眞寫實 寫無心 / 正在寫意不寫形)


딸: 이야, 역시 하버드 나오신 철학자는 역시 다르네요. 그런 글을 즉흥적으로 써낼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데요?


아빠: 맞아,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그런데 나중에 도올이 전화해서 그 때 썼던 글을 기억하냐고 묻더라. 본인은 즉흥적으로 써서 기억이 안 난다고. 그래서 내가 다시 불러줬더니, 그 글로 전시회를 한다고 하더라고. 도올이 그 당시에 붓글씨를 주변사람에게 많이 써주던 시절이라 나도 그 중에 하나였고 그 글들을 모아 전시를 한거지.

KakaoTalk_20250505_231621828_01 (1).jpg 박옥수의 사진 - 철학자 도올 김용옥
IMG_1036.JPG 박옥수의 사진 - 철학자 도올 김용옥

딸: 전시회까지 했어요? 와, 아빠는 정말 역사적인 인물들을 다 만난 것 같아요. 아빠의 사진과 도올의 글이라니, 진짜 멋진 조합인데요.


아빠: 그 전시회가 꽤 잘 됐던 기억이 나. 도올은 항상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의미를 강조했어. 결국 사진도 철학의 한 영역인 셈이지.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때의 만남과 대화는 정말 잊지 못할 순간들이었어. 하여튼 김용옥 선생하고는 그런 인연이 있지. 사실 처음에 내가 김용옥 선생 사진을 찍을 때는 이 양반이 사진 찍히는 걸 싫어했어. 특히 강연이나 그런 자리에 가면 이분이 다른 사람이 사진기를 들면 무조건 피하고 손사래부터 쳤거든. 근데 이상하게 나한테만은 사진 찍는 걸 허락해줬단 말이지. 어떤 때는 강연장 가보면 사진 찍는 사람이 나 혼자밖에 없어서 사람들이 괜히 이상하게 볼 수도 있는 그런 분위기였는데, 그럴 때마다 이 양반이 참 멋지게 말을 해줬어. ‘여러분, 이분은 제가 직접 부탁해서 모신 분이니까 여기 오신 분들은 사진 찍는 거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마세요. 박 선생님,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껏 찍으세요.’ 이렇게 말을 해주니까 나도 마음이 편안해졌지. 그렇다고 내가 막 마음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아무렇게나 찍은 건 아니고, 나름대로는 또 조심조심 찍었어.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는 괜히 더 신경을 쓰게 되거든. 그런 면에서 김용옥 선생은 참 배려가 깊은 사람이야.


딸 : 헐, 아빠는 완전 특별 대접? 그리고 아빠 덕분에 도올 선생님도 멋진 사진을 많이 남기셨겠네요. 그러면 진짜 아빠가 도올 인생의 역사를 찍어준 거네요?


아빠: 인생의 역사라기보다는 서로 만나서 서로의 인연을 사진으로 남긴 거지. 백 선생, 도올, 김지하까지... 생각해 보면 그런 만남들이 내 사진 인생을 정말 풍요롭게 했지.


딸 : 캬~ 멋있다, 아빠! 그러니까 사진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찍는 셔터 같은 거네요. 인연의 셔터랄까? 오호, 나 좀 철학적인데요? 이거 누가 책 내줘야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아빠: 하하, 인연의 셔터라... 그 말 참 멋지다. 그래, 사진이란 게 단순히 ‘찰칵’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순간을 담는 거니까. 그 한 컷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연이 들어 있는지, 찍는 사람만 알지. 시간이 지나도 꺼내보면 그때 감정이 막 살아나는 거잖아? 시간이 지나고 다시 들여다보면, 그때는 미처 몰랐던 표정 하나, 손짓 하나가 새롭게 보여. 사진은 늘 그 사람의 현재만 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까지 비추는 거야. 그래서 나는 셔터 누를 때마다 늘 조심스러워. 그 사람의 인생 일부를 내가 대신 담는 거니까.


딸: 아빠가 누군가의 인생 일부를 담는다니… 약간 인연 스틸러? 아니, 인생 큐레이터 느낌이랄까? 와, 이거 진짜 책 제목감인데요. 『인연의 셔터, 인생의 큐레이터』. 어때요?


아빠: ㅎㅎ, 제목 참 그럴싸하네.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내가 걸어온 길이 그냥 혼자만의 여정이 아니라, 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엮인 길 같구나. 사진 덕분에 내가 그 길 위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었던 것 같아.


딸: 나도 아빠처럼 그런 멋진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요. 사진이든 글이든, 나도 내 방식대로 의미를 담는 법을 배워야겠어요.


아빠: 그래, 너만의 방식으로 삶을 담아봐. 결국 중요한 건 진심과 의미니까.

19870627-IMG-02-김용옥-삼성암.jpg 철학자 도올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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