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감정이다

by 민교

익숙한 길을 걷 있는데, 아주 매운 고춧가루 냄새가 코끝에 묻었다.

맵다, 매워. 재채기가 날 만큼.


매워도 그 냄새는 기분이 좋다. 노령층이 많은 곳의 고추방앗간은 김장 준비로 고추를 빻는 기계가

쉴 새가 없다. 그 앞집은 기름집이라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발을 붙든다. 씻어서 물기를 뺀 들깨도 소쿠리에 펼쳐놓자, 강한 가을빛이 스며들었다.

국산 참기름이나 들기름, 고춧가루는 끈끈한 카르텔이 있어야 한다는데, 나는 그런 울타리가 없다. 고춧가루는 구할 수 있지만. 옛날엔 흔하디 흔해서 귀찮아하던 들기름의 카르텔에는 들어가질 못 했다.


언젠가부터 목을 간지럽히는 알레르기 식품에 들깨가 올랐다. 남들은 맛있다고 열광하는 들깨 칼국수를 처음 먹은 날이었다. 아침을 굶고 점심에 맛있다는 들깨 칼국수를 기대하고 갔는데,

첫 젓가락에 왠지 머리가 띵하고 기분이 갈앉았다. 아침을 안 먹은 후유증인가. 다시 한 젓가락을 먹었는데, 목구멍이 간지럽더니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이후에 몇 번을 시도했지만, 오래 목이 간지럽고 끊이지 않고 기침을 한다.


봄철이면 꽃가루 알레르기로 오래 힘들었었다.

그 증세가 없어졌다고 좋아했는데, 그 바톤을 들깨가 이어받았나? 그러고 보니 들깨 특유의 비릿한 냄새에 빠르게 반응하던 후각이었다.


중학생 때다.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낯선 분위기와 진한 연탄가스 냄새에 머리가 아팠다. 친구와 가족 들은 못 느낀 가스 냄새였다. 그때 아궁이와 친구 부모님 방으로 이어지던 바닥이 갈라진 틈으로 가스가 스며들고 있었다. 그런 일이 많았다.

페인트를 칠하는 근처에만 가도, 어느샌가 배가 아팠다. 예민한 후각은 자주 나를 피곤하게 했다.

그래서 다른 감각인 육감 더 발달했는지도.


나는 일찍부터 흰머리가 났다. 예순을 넘고부터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양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마다 괜찮다고 했지만, 하얀 머리카락 탓인지 버스에서 혼자 앉아 있을 때도 젊은 사람은 옆자리에질 않는다. 나는 솔직히 그걸 반기는데, 그들의 온몸을 두르고 있는 각종 냄새 때문이다.


향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어떤 향은 정말 리가 아프다. 화장품의 향이 진하기도 하지만, 어떤 향수는 코끝에 닿기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진다.


박물관 대학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강사님은 일찍 오셔서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영상자료를 많이 준비해 오셨다. 마지막 시간이라 좌석이 듬성듬성 비어서 세 번째 줄에 앉아도 영상이 잘 보인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웬걸, 강의를 시작한 지 10 여분이 지나서 커다란 가방을 들고 온 사람이 앞자리에 앉았다. 그때 내 코는 멈추었

고, 머리도 배도 아파왔다. 그러다 몸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에 그 강의는 귀에 닿지 않았다.

빨리 강의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15분의 휴식 시간에 지하 강의실을 나와 박물관 정원을 걸었다.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심호흡도 하고.

다음 강의를 들으려고 강의실에 가니, 다행히도 앞에 앉았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 남긴 냄새는 약하게 남아있었다.


마지막 강의는 영화에 관한 내용이었다. 포스트모던이라더니, 화면에서 짤막하게 보여주는 영화에서도 강한 냄새가 느껴졌다. 내가 이해를 잘 못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영국의 초상화와 문학이 아니라 미국의 상업 영화가 주 내용이라서 그랬다.


'문화의 날'이라 박물관 로비의 공연을 보고 오려고 했다. 그런데 거기에도 짙은 향으로 치장한 여인들 이 공연을 보러 모여들었다. 이래저래 박물관 강의 마지막 날은 냄새로 기억될 날인가.


박물관에서 나와 집으로 오는 버스를 기다릴 때 불어온 바람은 알맞았다. 버스가 부둣길을 지날 때, 부산항 다리에 노을빛이 바뀌는 걸 보고,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오후 내내 냄새로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펴진 것이다.


도로가 주차장이었던 지난주보다 버스는 빨리 달렸다. 대청로에는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던 사람들로 복작거렸지만, 어디선가 커피 향기가

스미는 듯 했다. 버스에서 내려 건널목을 건너 집으로 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다정한 소동에 이어

라면 냄새가 났다. 우리 집은 분명 아니다. 현관문을 급하게 열고 아침에 끓여놓은 김치찌개를 가스불에 올렸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에 두부와 파를 넣자, 익숙하게 퍼지는 냄새는 평온함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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