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幸福은

by 민교

연세대 교수이며, 행복학자인 서은국 교수 행복론은 거창하지 않다.

"행복은 무언가가 세게 와서 부딪치는 게 아니라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 주는 기쁨이다."

라고 해석되는 행복.



그 행복감을 나는 자주 느낀다.

갑자기 비가 오는 오후에 가족들이 둘러앉아서

저녁을 먹을 때가 행복하다는 말을 간간 했었다.



일을 마치고 온 아들이 전화로

"요 며칠 힘들었는데, 퇴근시간 맞춰서 퇴근하고 지하철도 제때 왔거든. 거기다 집에 들어서고 조금 있다가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라면에 찬밥을 넣고 먹방 보는 시간이 참 좋다.~^."

는 말은, 행복하다는 말이었다.



머리가 희끗한 남편과 운동복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익숙하게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나와 달리 어리둥절한 표정의 남편은 비장하다. 새옷증후군이 있는 사람이라 혹 원하는 옷을 못 만날까 하는 두려움에서다. 거의 모든 옷들은 내가 사 와서 장롱에 모셔뒀다가 내어주었다. 선택은 책임이라서 어렵다. 급한 마음에 옷도 못 고르고 집에 오는 불편한 상황을 생각해서 이른 시간에 백화점에 갔다. 매장이 붐비지 않아 이옷저옷을 구경하다가 재빠른 직원들이 원하는 옷을 가져다주니,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러다 한마디 한다.

"다음엔 혼자 와도 되겠네."

"그럼, 영수증만 잘 챙겨 오면 되지."

하면서 둘이 웃었다.

나는 용돈은 벌어 썼지만, 남편의 외벌이로 살았다. 통장을 관리하는 나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남편은 옷을 사는 불편을 모른다. 색상도 가격도 꼼꼼히 따져야 하는 데, 사다고 사온 옷들과 정년퇴직 후 自然人이 될 거라고 사온 옷들은 좁은 장롱에서 오래 먼지랑 뒹굴었다.



새 직장에 출근을 앞두고 자연인을 포기한다던 남편의 전략은 젊을 때 못 가져본 商標였다.

무슨 짝퉁 sixty도 아니고. 아이들은 웃긴다고 했지만, 요즘 꽂힌 운동화를 사러 신발 매장에 갔다.

휘 둘러보고는 실망한 얼굴로 집에 가자던 남편이 다른 신발 매장으로 들어섰다. 귀퉁이에 앉아서 인터넷 바다를 헤엄치는데

"빨리 계산해라."

한다. 아이마냥 신발상자를 옆구리에 끼고서.

마치 이 신발이 최상의 최상이란 듯이.

그러다 내 눈에 띈 운동화는 색깔도 가격도 적당한데, 바닥이 납작해 불편해 보서 망설이고 있었다. 여직원이 남편 신발만 계산할 지 물었다. 왠지 발을 붙잡는 다른 운동화는 여행 갈 때 신으면 적당하지 싶었지만, 늘 5%가 부족한 디자인이 맘에 걸렸다. 여직원도 무엇을 사러 가면 조금씩 부족해서 망설인다는 말에 고갤 끄덕였다.

내내 웃는 얼굴로 맞는 신발을 가져온 여직원에게

"전시회 가는 거 좋아해요? 이런 게 있는데."

하며 꺼낸 건, 종료가 두 달 남은 전시회의 30%

할인권이다.

"와, 이런 걸 받다니! 남자 친구랑 갈래요."

하며 덥석 받아 든다. 그 모습이 정말 예쁘다.

계산을 하다가 반짝반짝 웃는 여직원도

우리도 마음이 통통 뛰었다.



일요일에다 여행객들과 연말 분위기를 내는 광복로가 모처럼 왁자하다. 어깨를 부딪치는 인파를 건너 한 식당에 갔다. 오래전에 남편도 가본 곳인데, 한식 뷔페로 바뀌었다. 맛있어 보이는 반찬을 한껏 담아와서 밥을 먹는 모습이 천진한 아이 같다. 설빔인양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가벼운 걸음으로 집에 왔다.

포만감에 저녁은 건너뛸 줄 알았는데

"저녁은 라면으로 먹자."

한다.

"배가 많이 부르다더니, 저녁은 꼭 챙기네."

하자

"그럼 삼시 세 끼는 빠지면 안 되지."

한다.

안다. 청년기에 힘들었던 것을.

젊음으로 버틴 굶기는 노년 건강의 적신호다.

라면을 먹고 TV로 바둑을 보다가 응원하는 국수의 실수에 훈수를 두는 얼굴이 발그레했다.



서은국 교수는

"행복은 부모에게 받은 유전자가 중요하다."

고 하셨다.

남편과 나 마음을 통통 뛰게 한 신발 매장 여직원의 행복 유전자는 으뜸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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