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눈여겨보면 새롭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이
"엄마, 그 옷 예쁘네. 그런데 눈에 익은 옷이다."
했다.
"그렇지. 색깔이 예뻐서 목 테두리도 자르고, 팔도,
길이도 잘랐지."
하는데, 남편이 거들었다.
"니 옷만 자른 줄 아나, 내 잠바 소매도 잘라서 짧은
소매는 비 올 때 춥다고, 공원에 갈 때 입는 잠바에 갖다 붙이더라."
했다. 그때 아들은 다 안다는 듯이
"뭐, 엄마 취미 생활 한 거지."
해서, 셋이 웃었다.
나는 버려지는 옷들이나 물건을 내 식으로 만들어
쓰는 걸 즐겨한다.
(친한 언니네에서)
오래전이다. 친한 언니가 집에 갈 때, 들렀다 가라고 했다. 기대 없이 갔는데, 가죽치마를 꺼내왔다.
"아, 이거 예뻐서 샀는데, 받쳐 입을 옷도 그렇고 장롱에 모셔놨던 치마다."
하며 내민 치마는, 양가죽이라 가벼웠다.
그때 어떤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평소엔 20분이면 집으로 올 거리였다.
금요일 저녁의 충무동 로터리는 버스도 쉬어가라고 한다. 그 시간에 종이가방에 든 가죽치마가 궁금해 서 몇 번 꺼내보다가 재단을 했다. 허리선과 뒷지퍼는 그대로 두고, 치맛단은 자르고 뒤집어서 아랫부분을 깁고, 윗부분에 지퍼를 달아야지 하는데, 버스가 움직인다. 버스는 몇 구역을 지나서 나를 내려주었다.
마음이 급했다. 어두운 집을 밝히고 창문을 열고 라디오를 켰다. 금요일 저녁의 음악은 온 집을 굴러다닌다. 끝이 날카로워서 잘 모셔둔 가위로
치맛단을 사정없이 잘랐다. 바늘에 검은 실을 꿰어 아랫부분에 바늘을 꽂았는데, 도무지 바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져서 물도 마시고 짜증도 내봤지만, 요지부동.
가위를 제자리에 갖다 두고도 미련이 남아 바늘을 빙빙 돌려서 꽂아도 턱도 없다. 반짇고리를 챙기다 가 내린 결론은 수선집의 도움이다.
(수선집에서)
"아니 멀쩡하고 좋은 옷을 뭣 땜에 이런데?재봉틀로 박으면 금방이지만, 참 별나다."
그렇게 별나게 가죽치마가 가방이 되었다.
허리 부분에 지퍼도 달고, 빨간색 손잡이는
point. 가벼워서 오래오래 좋은 친구다.
(아꼈지만 과감하게)
예쁘고, 옷감이 좋아서 오래 입었었다. 무릎에 닿는 길이가 부담스러워져 가방으로 만들었다. 가방은 천가방의 무게가 아니다. 크기도 크기지만, 안감도 두껍다. 오래된 파우치가 10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래, 가방에 쏙 들어가는 파우치를 만들자.
고이 모셔둔 가위가 제 실력을 보란 듯 커다란 가방을 싹둑 잘랐다. 綿이라 바늘이 잘 들어간다.
해마다 벡스코에서 열리는 건축박람회장에서 받아온 노란 지퍼는, 엣지가 있네.
(화랑에서)
연말 거리를 구경하다 자주 가는 화랑에 갔다.
어머니가 자주 재봉틀로 무언가를 만들어 주었다는 작가는, 조각천을 얻어다 인형옷을 만들고 놀았다지.
동생의 창작활동을 응원하던 언니가 준 색동천과 궤짝을 표현한 作品은 많은 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불러들였다.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을 작가가 場에 간 할머니를
기다리는 대목에서, 어린 날의 내가 아까시 나무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생각이 나서 굿즈도 샀다.
고양이도 예쁘고, 작가의 심성도 예쁘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였다가, 푸른 하늘을
거침없이 나는 새도 됐다가 ~~~
앞뒤 따지지 않고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물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갖기는 쉽지 않다.
원하지 않은 속도와 공정으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버려질 것들을 되살리는 건, 퇴보일까. 새로운 창작의 길일까?
♤ 2025년의 마지막 토요일입니다.
<거리에서>를 찾아주신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2026년에도 따뜻하고 재밌는 글로
<거리에서>를 이어가겠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멋진 2026년 만들어요.
2025. 12. 27. ㅡ 민교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