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리가 생각나나요?

ㅡ 장소를 잃으면 기억도 사라진다

by 민교


딸을 배웅하러 간 부산역은 붐볐다.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과 부산항에서 오는 사람이 뒤섞인 데다, 새해라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 많았다. 거기다 신난 아이들의 높은 소리는 천장이 들썩했다.


딸을 배웅하고 영도 다리 쪽으로 걸었다.

북항공원은 '이순신대첩 공원'으로 거듭날 예정이라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설계가 잘못되었는지 덧대기 공사로 자재를 실은 車들이 생생 달렸다. 남편과 걷는 길은 간선도로에서 몇 발짝 들어왔을 뿐인데, 걷는 사람이 없었다. 평소에도 한적한 길이지만, 일요일이라 더 조용했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바람도 잔잔서 봄날이라고 해도 좋을 날이었다. 느린 걸음이 닿은 곳은 수미르공원다. 부산항만공사에서 부산 앞바다를 보여주던 새누리호는 2020년 3월에 코로나로 운항이 멈추었고, 주변은 보도블록만 잔뜩 깔렸다. 삭막함은 이런 걸 말하지만, 이순신대첩공원이 다

완성되면 그때는 조화로울까. 범선도, 크루즈선도 마냥 진을 치고 있는 듯한데, 강태공들 은빛 바다에서 세월을 낚는 중이다.




지역 신문에 2025년에 부산을 방문한 사람이 300만을 넘었다는 기사가 났다. 유튜브로 전해진 기사는 부산항 이용자가 너무 많아서 불편하다고 했다. 부산은 겨울이 타지방보다 따뜻하고 바다, 강, 산, 도심지 등 볼 곳은 많지만, 관광객을 위한 도시는 아니다. 그렇게 많은 자원이 자원인 줄도 모르고 어쩌다 관광도시가 되었다. 2024년에 알고리즘을 타고 온 캐나다의 유튜브는 '부산'을 환상적인 도시로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다 가본 곳이지만, 내가 외국인이라도 정말 와 보고 싶은 곳이었다.


영도의 흰여울마을은 중학교 때 같은 반 아이가 살던 동네라 한 번 갔었다. 스물셋에 만난 친구의 집은 흰여울 마을 중간에 있었다. 窓을 닫고도 귀에 스며드는 파도 소리와 짭짜름한 소금기를 머금은 공기는, 그 친구가 찍는 사진이 달랐다.

툭툭 내뱉는 말이 詩였고 음악이었던 친구는, 오래전에 미국 메릴랜드로 이민을 갔다. 늘 만나던 미화당 백화점 앞에서 만나야 하는 데, 그 길이, 그 다방이 없어졌다.


경치 좋은 곳의 집은 주인보다 주인의 가까운 사람이 더 좋다는 말이 있듯이, 부산 사람은

늘 보는 바다, 강, 산은 무덤덤하다. 몇 년 전이다. 기장 일광의 한적한 곳을 친구와 갔었는데, 그곳의 주민이 그랬다.

"여 뭐가 좋다고 와요. 시내가 더 좋지."

경치보다 교통이 편리한 게 좋다는 말이었다.


부산 사람은 소리만 컸지, 실속은 못 챙기는 바보 들이다.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던 일상의 거리가 낯설다. 남편은 삼시 세 끼를 다 먹어야 하는 사람인데, 아점을 먹고 부산역으로 가서 배가 고팠다. 자갈치 시장에서 선지국밥을 먹고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올 계산이었는데, 자갈치시장 난전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남포동 롯데리아 앞에서 길을 건너 비프광장에 들어섰는데, 거대한 인파였다. 대영극장 앞을 지나고 씨앗 호떡을 지나 충무동으로 갈까 했지만 역부족이다. 세명약국옆 골목으로 겨우 들어섰는 데, 맥이 탁 풀린다. 앞도 뒤도 안 보고 요리조리 빠져나와서 국제시장 2공구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보수동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아는 길이 낫다고 매일이다시피 걷는 그 길, 보수동 책방골목에 오자 모처럼 책을 사러 왔는지 책방 골목도 滿員이다.


몇 시간을 물 한모금 안 마시고 집에 왔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노래를 흥얼거리며 라면을 끓였다.


외로울 때면 생각하세요.

아름다운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잊을 수 없는 옛날을 찾아

렇게 불빛속을 헤맨답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몰래 발길이 멈추는 것은

지울 수가 없었던 우리들의 모습을

가슴에 남겨둔 까닭이겠죠.~~~"


가수 장은아가 부른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의

노랫말이다. 많이 불렀던 노래가 추억의 이름으로

다가온다.


그 골목, 그 담장의 기억은 또렷한 데, 미국으로 시집간 친구는 그 칠월 다방을 찾을 수 있을까?



시간을 잘 맞추어 길을 나서야 한다. 민들의 시간이 있고, 여행객의 시간이 있다. 여름 바다를

외지인들에게 비워주듯이 '추억의 거리'도 내어주어야 한다. 그들도 좋은 추억을 새기도록.





※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의 노랫말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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