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를 쓰면서

ㅡ 새 루틴이 생기다

by 민교

독서노트를 쓴 지 20일이 지났다.


어떤 행동이 습관이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21일이라고 한다. 독서노트를 쓴 지 21일이 지났 으니, 독서가 루틴이 될 만하다.


지속될지, 어떨지 모르지만, 매일 책을 읽기는 오랜만이다. 한때는 많은 책을 읽었었다. 하루에 2권도 읽고, 벽돌책도 거뜬했는데, 언젠가부터 책안 읽을 핑계를 찾았다. 먼저 눈이 많이 나빠졌고,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 무게도 만만찮다. 거기다 책을 안 읽게 되는 가장 나쁜 요인은 쉽게 집어드는 아이패드다. 아이패드가 무슨 만화경도 아니고 온갖 게 들어있는 아이패드에 마음을 빼앗겨서 한 시간, 두 시간이 허망하게 지나갔다. 처음 아이패드를 갖게 된 건, 아들이 새 아이패드를 사서 쓰던 아이패드를 나에게 준 것이다.

"엄마 심심한 데, 이거 가지고 노세요."

하며 아이패드를 주면서 '놀이'로 입문시킨 아이패드로의 입성시기는 절묘했다. 마침 코로나 시기라 바깥출입도 뜸했고, Happy color라는 앱이 나를 끌어당겼다. 그림이 그려진 바탕 쓰인 번호를 찾아 체크하면 칼라 그림이 완성되는 것으로 매일 15개씩 새로운 것이 나왔다.

15개의 그림에 색을 칠하고, 그중에 하나를 그리면 반나절이 지나가는데, 언제 책을 읽냐 말이다.

그러다 그 그림도 절기가 있고, 패턴이 있어 비슷한 그림이 연속되어 나의 마음대로 그림을 그렸지만,

한 번 손이 간 아이패드는 쉽게 손에서 놓질 못한다. 매일 쏟아지는 유튜브로 이사를 해서다. 유튜브라는 괴물은 다양한 알고리즘으로 세상사를 알려주는데, 그런 나를 보면서 가끔은 '내가 왜 이러지?' 하며 한심해한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후루룩 읽는 한심함에 혀를 차다가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독서노트'를 쓰게 되었다. 간간이 글은 썼지만, 체계적인 독서 기록은 하지 않던 내가 독서노트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 것은 예전의 나의 모습이다. 무엇이든 시작은 잘 안 하지만, 시작을 하면 꼭 끝맺음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독서노트'를 쓰면서 고맙고 반가운 것은 예전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면서 책을 읽었던 지난날의 나를 만난 것이다.

호기심이 많았고, 세상사에 관심이 많았다. 나서서 무언가를 하진 않았지만, 나아감과 물러설 때는 알았다. 올곧게 사는 것과 욕심을 내지 않아도 나에게 올 것은 온다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를 믿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독서노트 쓰기'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다시 冊이라는 물성을 느끼게 되었고, 정리하다가 멈춘 책장에서 보물을 찾아서다.

좋은 책, 도움이 된 책, 미련한 나를 일깨워준 책,

미문에 몇 번이나 탄성을 질렀던 책들이 소파에 앉아 아이패드만 만지작거리던 나에게 말을 걸어준 게 얼마나 다행한 것인지.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외출을 자제하라는 안내문자에도 바람을 맞으며 도서관으로 가는 즐거움이 있다. 보통은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읽으려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간다.

그 책을 찾다가 손가락이 안 들어갈 만큼 빽빽한 서가에서 압사 직전의 책을 구출하는 마음으로 꺼낸 다른 책이, 읽고 싶은 책일 때는 눈이 크게 떠지는 반가움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나의 책장에 있던 오래된 책이 주는 감동이라니. 내 손때가 묻은 이전의 감정과 그때의 상황이 적힌 글을 읽으면, 서른의 나, 마흔의 나, 쉰의 나를 찾는 여행도 즐겁다.


내 책장에 있던 [생각의 탄생]은 이런 깨달음을

준다.


"누구나 생각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똑같이 잘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 요리의 대가에 견줄 수 있는 사고의 달인이 있다. 그는 여러 가지 정신적 재료들을 가지고 맛을 내고 섞고 조합하는 것에 도통한 사람이다. 우리가 어떤 知的 만찬을 준비한다면 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생각의 부엌에서' 그가 하는 일과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르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더 잘한다는 뜻이다. 대가가 되려면 아주 재능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오랫동안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 역시 대가가 되고자 한다면 필요한 도구의 용법을 익히고, 정신적 요리법을 배우며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우리에게 '정신적 요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다시 생각하기'를 통해 정신적 요리법은 '무엇을 생각(요리)하는가'에서 어떻게 생각(요리) 하는가'로 초점이 옮겨진다."

[생각의 탄생] p20에서

책의 본문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다른 책과 달리 시작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으라고 한다.

늘 하는 대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입안에서 굴려보고, 던져보고, 나의 일이 아닌 듯

떨어져서 바라보고, 접어놨다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생각의 탄생 ]의 내용이다.


생각이 '무엇에서' '어떻게'로 변형되는 과정은

13가지의 생각도구를 거친다.

1) 관찰 ㅡ 수동적인 보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관찰

2) 형상화 ㅡ 내면의 감각을 일깨우는 다양한

방법들

3) 추상화 ㅡ 피카소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 것을 그렸다

4) 패턴인식 ㅡ 아르침볼도의 정물화를 거꾸로

보면 무엇이 보일까

5) 패턴형성 ㅡ 패턴은 답이 여러 게임을 보여준다

6) 유추 ㅡ 유추 없이는 창조할 수 없다

7) 몸으로 생각하기 ㅡ 몸은 답을 알고 있다

8) 감정이입 ㅡ 가장 완벽한 이해는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 될 때

9) 차원적 사고 ㅡ 공간을 입체적으로 생각하라

10) 모형 만들기 ㅡ 세계를 이해하려면 모형을

만들어라

11) 놀이 ㅡ 창조적 통찰은 놀이에서 나온다

12) 변형 ㅡ 생각의 변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

13) 통합 ㅡ 모든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은 이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대한 참고문헌과 찾아보기는,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셀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한 권의 책을 위해 애쓴 보고서이다. 는 이 책을

닷새 동안 꼭꼭 씹어 읽었지만,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활자만 읽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생각의 탄생]을 다시 읽으며, 풀리지 않은 어떤 문제를 '무엇으로 에서 어떻게'로 변형시킬지를 생각한 계기였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책을 잘 읽을 수 있게 만든 독서노트 쓰기를 잘 시작했다고, 정말 오랜만에 나를 칭찬한다. 고맙다. 독서노트.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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