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비엔나커피가 있는

ㅡ 그 길에는 이야기가 있다

by 민교


딸이 해가 바뀌었다고 서울로 놀러 오라고 했다. 춥다고 한껏 껴입고 갔는데,

그걸 또 '할매'라고 흉을 보다니.

나도 딸처럼 젊은 시절엔 한겨울에 내복 없이

잘 돌아다녔다.

그래봐야 부산 날씨라고 놀리겠지만,

자신이 사는 환경이 절대적이다.

조금 춥긴 했지만, 잘 놀다 왔다.



1) 금기숙 특별전에서


서울 공예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금기숙 기증 특별전>은 25.12. 23 ~

26. 3. 22까지 이어지는 전시이다.

금기숙 작가는 패션의 영역을

조형예술로 확장시킨 작가로,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때 선수단 피켓 요원들이 입었던 옷을 만든 작가이다. 한국패션산업의 지평을 넓혔다는 評처럼

전시된 작품은 환상적이었다.

전시장 곳곳에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 글귀는

'옷의 움직임으로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다.'는 메시지가 있다.

전시가 시작되는 3층의 백매 드레스는 위엄이었고,

파란 드레스는 빨대를 잘라서 만들었다.

소재의 다양성이라니.

철사, 빨대, 즈, 스팽글에 폐자재까지 다양하다. 스와브스키로 만든 예쁜 색동저고리는

아이들의 눈을 커다랗게 했고,

전시된 옷들은 모델이 누구였는지 초극세 몸매다. 화려하고 환상적인 데다,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집념과 정성에 감탄, 감동, 감사를

느낀 귀중한 시간이었다.



2) 재동 순두부집은


공예박물관 근처의 순두부집은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순두부찌개와 초당순두부는 정성이 깃든 점심이었다.

밥도 밥이지만, 손님을 성심으로 대하는 사장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울을 걸었다.




3) 눈에 익은 거리에서


공간화랑도 지나고, 부산 대연동 유엔공원 입구의 터널과 비슷한 율곡 터널도 지났다.

터널을 나오자 동네 분위기가 다르다.

딸은 와본 곳이라고 앞장서는데,

혜화역 4번 출구가 보인다.

어, 길 저편의 아르테 극장 앞 도로는

몇 번 갔던 곳이네.

맞아, 10여 년 전에 올케 언니가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었다.

올케 언니는 주사를 맞고 자는 동안

동네를 돌아보라고 했었지. 비가 오는 창밖으로 보이던 기와지붕이 편안했었고,

길을 따라 걸으니, 성균관 대학이 있었다.

다음날은 아르테 극장 앞을 걷다가 함석헌의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하는 碑도 봤다.

그 입원으로 오빠네는 아내와 엄마를 보내야 했다. 년 뒤, 경기도에 사는 언니를 만나 이화마을에 갔다 오다가, 마임도 버스킹도 봤던 그 길이었다.

학림다방은 유명세로 이름은 알았었다.

그때는 생각도 못했는데, 올케 언니가 가고

10여 년이 지나서 딸과 왔다.

딸은 대학로와 학림다방을 서울에 살면서 알게 되었다면서, 내가 아는 걸 신기해한다.

이곳은 오래된 다방으로 서울 문화유산이라는 명성에 맞게 대기줄이 길었.

두 팀이 나간 후 다방에 입성하고도,

한참을 대기공간에서 기다렸다.

벽에 걸린 액자는 20년 전의 사진인데,

다방은 70년 전에 門을 열었다고 하니,

딸의 눈이 반짝한다.

LP판에다, 커피잔 받침이며, 오래된 것들이 다방의 역사를 말해준다. 괜히 문화유산이겠는가.

손때 묻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서 유산이 되는 거지.

비엔나커피와 오래된 탁자와 그에 맞는

창문을 보니,

가수 백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의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라는 가사가 생각났다.

도라지 위스키 대신 비엔나커피와

치즈케이크를 먹으면서, 모녀는 추억을 만들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라,

비엔나커피는 더 달달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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