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여행자가 될 줄 알았는데
<파리, 밤의 여행자들>은 광복동 모퉁이 극장에서 2025년에 마지막으로 본 영화다.
주인공 엘리자베트는 남매를 키우며 일자리를 찾는 싱글맘이다. 한 라디오 방송을 듣다 청취자 참여로 프로그램에 편지를 보낸다. 그 계기로 걸려온 전화를 선별해 프로그램 진행자에게 연결해주는 일을 하다, 나중엔 그 프로그램 진행자가 된다.
세상 어디에서나 일자리 찾기는 어렵고, 머리가 큰
자식들과 갈등을 겪는다. 엘리자베트는 자신이 세상일에 적응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든 포용할 수 있는 다정함이 있다.
그 다정함이 자신도, 자식들도, 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껴안는 최고의 자산이다.
점점 세상살이가 힘이 든다. 그럼에도 반짝이는 트리를 보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에는
그 무엇이든 이루어지길 바라는 자그마한 희망을 품는 시기에 선물 같은 영화였다.
'파리'하면 낮 시간의 파리, 그중에서도 파리 시내 어디서든 우뚝 솟은 에펠탑을 볼 수 있지만, 영화의 주배경은 야경이다. 통창너머로 보이는 파리는 화려하고, 거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만큼 가까이 느껴진다. 파리를 찾은 누구든 화려한 도시의 밤을 맞겠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밤의 층위는 다르다.
도시가 화려할수록 와 닿는 온도는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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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 밤의 여행자>를 꿈꾼 적이 있다.
내가 환갑이었을 때, 딸은 가고 싶은 곳을 물었다.
'파리'라 했더니, 에펠탑 앞에 내가 서 있는 장식을 단 케이크를 사왔다. 딸은 탄자니아에 2년 간
머물 일이 있어 막바지 훈련을 하고 있었다.
1년이 지나면 휴가를 갈 수 있는데, 휴가를 파리 에서 보내자고 한 것이다. 둘 다 한 번도 못 가본 곳이라 모녀는 생각만으로도 들떴었다.
마침 부산 남구청에서 여행 영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여행을 하늘이 돕는다.'고 했지만, 상상도 못했던 코로나의 재앙이 닥칠 줄이야.
딸은 출국을 닷새 앞두고 하늘길이 닫혔고, 구청의 영어 수업뿐 아니라, 전 세계가 통제되었다.
부산은 다른 도시보다 코로나 확진자가 늦게 나왔다. 수업을 듣는 대연1동 주민센터 가까운 병원에 확진자가 이송됐다는 뉴스가 나오자,
같이 수업을 듣던 사람들에게서 불안과 어떤
狂氣가 느껴졌다.
그 누구든 이 재앙을 책임질 희생양을 찾는 듯한.
강사는 어떻게 이 수업을 오게 되었고, 걸어왔는지, 무얼 타고 왔는지를 물었었다. 서구에서 수업을 들으러 갔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코로나에 나도 감염될 수 있지만, 혹 옮긴다는 의심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그날, 강사는 확진자가 입원한 병원 앞이 봉쇄돼서 수업에 오지 못했다. 그 수업은 흐지부지 되었고, 나는 코로나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딸은 한참 힘들어하다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무서웠던 코로나 공포가 쓸려가고 하늘길이 열려 처음 가고자 했던 대륙과 다른 곳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왔다.
그러고도 많은 시간이 흘렀고, 파리는 母女에게 여전히 꿈의 여행지로 남아 있다.
언제 파리의 밤을 걸어볼 지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