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서로 돕고 삽시다_
한 푼 줍쇼가 아니다. 예산줍쇼. 가정이든 공공기관이든 돈이 있어야 돌아가게 마련. 하반기도 후반으로 가고 있는 요즘. 전국 모든 공공기관들은 여러 가지로 바쁘다. 상반기에 이리저리 미뤄뒀던 일들도 추진해야 하고, 축제니 행사니 모든 눈에 보이는 대시민 서비스는 성수기를 맞이한다. 상반기 벌여둔 일도 마무리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반갑지 않은 두 녀석이 제대로 시즌에 돌입하는 시기. 바로 사무 감사와 예산편성이다. 담당자들은 누구보다 바쁘다. 이리저리 요구 자료를 알리고, 못 미더워 독촉하고, 보내온 자료들을 살펴 이상한 것을 걸러내고, 그 사이사이 팀장님 부서장님께 보고한다. 이리저리 확인 전화를 돌리다 보면 어느새 저녁 6시가 넘어있다. 원래 해야 할 일은 파일 하나 펴보지 못한 채 멍하니 창 밖을 본다.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계절. 우울감이 다가오는 시간. 스산… 하다.
개인적으로 세계 경제 흐름과 나라 살림에 대해서는 논할 수 없지만 공공기관의 한 해 살림살이 스케줄만은 알고 있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매우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는데 상반기는 지난해 쓴 것을 결산하느라 정신없고 하반기는 다음 해 예산편성으로 씨름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실무자 입장이 아닌 다른 입장들도 다각도로 작용(반작용도 있다) 함으로 절차와 순서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세세하게 따라야 한다. 거의 치러내는 기분으로. 거칠게 말해 예산은 받는 것이요, 재정은 쓰는 것인데 당연히 예산은 받기 힘들고 재정, 즉 공공 자금은 쓰기 힘들다. 내 돈이라면, 내 집안의 돈이라면, 엄마에게 조르고, 할머니 찬스 쓰고, 상대의 기분이 내키거나 알코올이라도 들어간다면 적당히 흘러나올 수 있는 것이다.(각자 집안을 떠올려보면 더한 경우도 많지 않던가.) 피 같은 혈세니 하는 케케묵은 표현을 꺼내들 필요도 없이, 지금의 시스템과 체계만으로도 공공자금은 그저 생기지 않으며 펑펑 쓰일 수도 없다. 학창 시절 교과 과정을 통해 배웠듯 예산이란 정부와 의회의 팽팽한 긴장 관계 속에서 거의 생성되듯 만들어지고 어렵사리 확정된다. 집행부는 예산안을 (반드시) 때맞춰 의회에 제출해야 하고 각 상임위와 예결위를 제대로 거쳐야 최종 승인, 편성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반기 특히 연말에 정점에 이르는 그 과정은 해마다 만만치가 않다. 11월 말, 상임위가 열리는 날이면 늦은 시간까지 '정회' 두 글자가 뜬 까만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언제 담당 사업이 호출될지 몰라 대기하기 일쑤고, 때로는 무한 대기 상태에서 막차 시간을 걱정하기도 한다. 집행부 입장이야 (이미) 의원실에 사업 설명드리고, 그 사이 실제 필요한 절차(각종 평가나, 심의 등)를 거치고 깨알 같은 요구 자료들을 모두 제출하느라 기진맥진해 있지만 의회 쪽은 반대다.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거의 유일무이한 시즌인 만큼 실력을 과시할 기회이니 이리저리 우려와 지적을 한다. 그리고 채워진 의석수만큼 그 우려와 지적이 이뤄지려면 연장되고 또 연장될 수밖에 없다. 대개는 추운 날이었고 피부가 건조한 만큼 마음속도 타들어 갔던 기억.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지는 것은 종사자로 맷집이 쌓여가는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도 매해 편성 과정이 조금씩은 소프트 해진다는 것이다. 코로나 기간을 겪으며 장시간 대면 회의나 집단 근무가 불가능해 과정 자체를 간소화시켰던 경험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예산편성의 기본적 얼개는 집행부와 의회의 관계지만 보다 실질적인 것은 내부에 있다. 언제나 적은 내부에 있다고 했던가. 관련 조직에 한 번도 근무해 보지 못한 탓에 함부로 논할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작은 것이라도) 권력을 갖게 되면 사람 마음은 바뀌는 것인지 예산과는 참…. 사업부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다. 의회에 예산을 제출해 주는 곳이 예산담당 조직인만큼 우선 예산 담당 부서에서 인정해 줘야 제출이고 뭐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집행부에서 내지 않는 예산안을 어떻게 의회가 알고 승인해 주겠는가?(쪽지예산 빼고)
예산과에서는 사실상 7~8월부터 예산안 자료를 모으고 다른 부서들은 당연히 각자 여름휴가를 기술적으로 비켜가며 그 자료들을 다 제출한다.(그래야만 한다.) 그리고 아침저녁 가을이 왔나 싶은 이즈음부터 제대로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는데 핵심은 깎아내기다. 이러저러해서 이 사업은 과다편성요구이며 우리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없다는 내용의 조정안을 만들고 각 조직들에 통보한다. 그러니 사실상 우리의 설득은 예산과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금액이나 사업성격에 따라서는 부서장이 예산과 에 각별히 사정하기도 하고 최고 수장의 공약사업, 정책 드라이브 사업 등의 이유로 꽤 쉽게 편성되거나, 편성당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느 부서도 받지 않을 골치 아픈 사업이나 업무 소관이 명확하지 않은 사업의 경우, 서로 받지 않으려 옥신각신하다 부서장의 역량에 따라 돌연 편성 당해버리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물론 그 사업은 해당 연도에 상당히 힘든 사업일 것이 예상된다. 여하튼 이 모든 과정은 예산과를 중심으로 바쁘고 촘촘하게 돌아간다. 예산안 검토 과정을 겪는 동안 예산과 내선 번호나 의원실 내선번호가 보이면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지만 그래봐야 주거나 안 주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 허망해지기도 한다. 조직 안팎으로 지칠 때면 내가 쓸 내 돈도 아니건만 이렇게까지 해서 편성받아야 하나 싶기도 했다. 과거 어느 팀장님 말씀처럼 안 주면 일 안 하면 되는 거고, 반만 주면 느긋하게 천천히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이면 추경으로 주게 마련이다. 다만 그런 상황들 또한 녹록지 않을 뿐.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기관들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각 파트별 살림살이와 활동자금을 챙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느 조직이나 실제 돈을 벌어오는 사업부서들이 있고 또 돈이 허투루 새지 않고 추진 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 감독하는 부서가 따로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전자 밖에는 경험해 본 바가 없지만 각자 자신의 입장이 만만치 않다며, 나름의 애로사항을 토로할 것은 분명하다. 관리부서들은 직접 알지 못하는 갖가지 사업들의 씀씀이를 파고들어 이해해야 하는 고충을 토로할 것이다. 반대로 사업부서는 일선에 나가 직접 부딪히는 민원부터 사업 기획, 실행까지 필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의 긴장과 수고로움을 호소한다. 개인적으로야 후자의 고통과 괴로움, 막막함 밖에는 모르지만 조직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분명 둘 다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아침, 저녁 공기에 흠칫 놀라며 속 한 구석이 가슬가슬해지는 요즘 슬슬 달력의 남은 장수를 세어보고 일정들도 떠올린다. 남아 있는 두 번의 의회가 무사히 지나가길. 너무 늦게 끝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도 수고하고 있을 전국 수많은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 건투를 빈다.(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