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6급일기 08화

#탈장일기

by 장판

길지 않은 공공기관 종사 경력이라 그런가, 이제껏 내가 경험해 본 사건사고들은, 달리 말해 등 뒤로 싸한 느낌이 훑고 가며,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일 분 일 초가 나를 조여 오는 기분은 보통 어떤 ‘소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 통의 전화라던가, 부서장이 찾으신다거나. 조간신문 기사라던가. 그런데 그 일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현장사고. 외부에선 전해온 소식이라는 ‘무형의 것’이 아닌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는 하나의 광경. 전조는 있었더랬다. 주말 당직 근무라 출근을 해보니 누군가 천정 환기구에 한 두 방울 물이 맺혀 있던 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알려 주었다. 내려가 가보니 정말이었고 어느새 한 군데는 두 군데가 되어 있었다. 누수였다. 사실 이전부터 폭우가 있을 때면 지하층 천정 일부가 새곤 했었는데 듣기로는 과거 한 차례 보수 공사를 했으나 말끔히 해결되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러니 폭우가 내릴 때면 여기저기 양동이를 받쳐두고 약간씩 떨어지는 물줄기가 어서 빨리 지나가길 기다렸다. 조금은 그 공사 덕인지 한 동안 그 이상으로 누수가 번지지는 않아 폭우 때만 신경이 쓰이는 정도였다. 거기까지는 나를 포함해 근무자 전원이 공유, 소통하고 있었으니 일상 대응이 되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번 누수는 전혀 다른 장소, 다른 공간에서 시작됐다는 것이었다. 하필 연휴.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윗선에 보고 후, 움직여야 하는 관공서 특성상 담당자에게는 직접 결정권이 없다. 즉, 사소한 것이라도 기본적으로 ‘결제’는 ‘결재’ 후에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어지는 휴일동안 의뢰할 전문 업체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누수라니 분명 나쁜 사인이었다. 휴일에는 당직자 한 명씩만 나와 근무하는 체계라 서로 노심초사 폭탄 돌리듯 천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신규(?) 누수 상황을 관찰, 단체방에 현황을 공유했는데 시설 전반 담당자인 나로서는 연휴 내내 반쯤은 출근해 있는 기분이었다. 거의 실시간 현황 정보를 모니터링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다 내 당직근무 24시간쯤 후, 휴대폰 알림이 바빴다. ‘어떻게 해요 이거 난리 났어요.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어요. 대피하라는데 관리 업체 연락해서 어떻게 좀 해주세요…’. 요란하게 귓전을 때렸다는 소리는 화재 발생 대피 방송이었다. 누수가 점점 심해져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는 바람에 소방 비상벨이 울린 탓이었다. 일반 이용자들에게는 방송 착오라 정정 안내했다지만 한동안 자지러지게 울려댄 소방대피 비상벨로 근무자 포함 모두들 혼이 빠져버렸다. 아, 차라리 내 당직 날 울릴 것이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지러지던 비상벨은 몇 분후 간신히 멈췄고 그렇게 하루 남은 휴일도 끝나 있었다.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미리 알아본 누수업체에 서둘러 호출, 점검 의뢰했다. 이미 상급자 구두 보고를 마쳤고 호출대응 전문인지 나온 이들은 바로 현장 확인, 출처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주신 결론은 배관 이탈. 또 한 번 뒤통수가 띵해지는 순간이었다. 지난번 폭우로 천정 일부에 쌓였을 빗물 정도가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웬걸. 배애과아안?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천정을 뜯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뜯는 것이지, 그야말로 대형망치 같은 것으로 석고보드 천정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한 번 한 번, 망치질을 할 때마다 여기저기 무슨 화산이나 온천처럼 시꺼먼 물줄기들이 뿜어져 나왔고 그 틈으로 얼핏 보이는 배관들이 수술한 환자의 내장 기관처럼 드러나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 심난한 광경, 공사라고 해본 것은 내 집안 주방 리모델링이 전부건만. 막막한 기분이 전신을 스쳐갔다. 그리고 30분가량 후, 누수업체 기사의 얘기를 들어보니 해야 할 공정은 천정 전체를 다 뜯고 배관을 조정, 재연결, 보수하고 부서진 천정을 다시 마감 공사한 뒤 페인트칠을 하는 것이었다. 작든 크든 공사는 공사였고 상식선에서도 당연한 진단 같았다. 다만 좀 막막할 뿐이었다.


혹시 아실는지. 공공기관 종사자에게도 직렬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 쉽게 말해 나름대로 하는 일에 따라 직종이 구분되어 있다는 의미다. 군대에는 군견을 돌보는 사병부터 오버로크병까지 소수지만 다양한 병무와 사병이 있다고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공공기관 종사자에게도 직렬이 있는 것이다. 90% 정도가 행정직이라 동주민센터 창구에서 뵙는 분들을 포함, 대부분 행정직일 것이라 여겨지지만 전산직, 세무직, 시설직, 연구직, 소방직, 간호직, 복지직 등등 분명 들어보면 아, 할 만한 다른 직렬들이 매우 많다. 아무튼 제대로 된 ‘공사’라는 것을 하려면 시설직 중에서도 건축이나 기계직이 맡아 수행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론은 이론, 현실은 현실. 해당 현장은 누수로 시작, 배관 조정, 재연결이 작업 핵심이다. 보수로도, 수리로도, 개선으로도, 작든 크든 공사로도 볼 수 있는 애매한 규모. 대신 부분적일지언정 그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 있으니. 모르긴 해도 제대로 각 잡고 보자면 배관 도면부터 분석, 진단, 실측, 상당 규모의 예산과 시간을 투입, 연간 공정으로 끌 수도 있을 일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설을 운영해 나가자면 그럴 수는 없는 실정. 당장 건물 전체 화장실을 쓸 수 없다면…. 생각만으로 복잡해진다. 게다가 당시 소속 종사자 중에는 시설직이 없으니 담당자인 내가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바로 전문 업체의 공정이 시작되었다. 남은 소요 기간은 4일. 일주일이채 못 되는 기간이건만 그 사이 또 다른 복병도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내려앉은 배관 속을 보니 녀석은 또 당연하다는 듯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상상하기도 싫은 잔여물들이 잔뜩 고여 막혀 있었는데 일종의 변비 증상. 장청소를 못해 무거워진 대장이 뒤틀리다 못해 끊어진 것쯤이랄까. 아무튼 그에 따른 처방은 고압청소였다. 또다시 새로운 전문 업체를 한 군데를 더 호출. 고압 청소팀과 함께 출동한 가늘고 긴 호수가 달린 기계는 엄청난 소음으로 뭔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드르륵드르륵 쿵쿵 쾅쾅. 해당 층을 포함 좁은 건물 여기저기서 들어보지 못했던 소음이 퍼져갔고 그렇게 한 나절이 또 지나갔다.

하루하루 새로운 기계와 장비, 사람들을 맞이하며 고초를 겪던 지하 천정이 마침내 말끔한 모습으로 변신을 완료하는 날. 조금은 기대감을 갖고 내려가 봤는데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분명 천정은 하얗게 메이크업 한 얼굴이었지만 환기구 구멍들로 몇 가닥씩 전기선이 드러나 보였고 출입문 위 소방비상등 자리도 텅 빈 채 구멍이 드러나 있었다. 그래. 전기…를 연결하려면 전등을 달고 전선을 연결해야지…. 전기 팀에 얼른….


끝인 듯 끝인 듯 이어지는 그 며칠간의 시간이 마침내 모두 지나고 준공 보고서도 마무리되었다. 지출까지 마감. 백 번쯤은 오르내린 것 같은 해당 공간을 또 내려가 괜히 불을 켜 보았다. 환했다. 내가 아닌 천정이 씩 웃는 것 같은 기분. 그때 알았던 것 같다. 그 며칠간의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그간 느껴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는 것. 분명 상당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이되 상급자나 기자의 목소리. 민원인의 같은 말과 반쯤 비어있는 보고서 파일이 압박하는 그런 종류와는 다르다는 것. 아직, 아직 갈 길도, 해봐야 할 일도 많겠구나… 싶은 순간이었다.(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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