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
궁지에 몰린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드는 집은 마당이 없다. 지붕이 낮다.
집주인은 마당을 포기하고 그곳에 담벼락을 세우고 또 세우고 값싼 지붕을 씌운다. 월세를 받기 위해 방을 하나라도 더 늘리고 만드는데 더 이상 벽을 세울 수 없는 공간까지도 또 나누고 또 나누어 어떻게라도 방 한 칸을 기적처럼 만들어낸다. 돈이 드는 기술자는 절대로 고용하지 않는다.
집주인이 혼자서 콘크리트를 치고 어디 공사판에서 주어온 벽돌로 벽을 세운다.
그러니 수도시설도 없다. 부엌이라고 할 만한 장소도 없다. 방만 하나 딸랑 있는 곳에서 다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몸만 겨우 눕히는 가난한 세입자는 난방시설도 없는 곳에서 전기세를 아껴가며 그 시린 겨울을 버텨내야 한다. 겨우 남아 있는 마당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수도꼭지로부터 모든 식수와 생활에 필요한 물을 제공받는다.
돼지 촌이다. 그 지붕은 텐트처럼 낮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큰 착각 속에 빠져 산다. 과거에 그들이 소위 말하는 얼마나 잘 나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얼마나 멋졌고, 또 어떤 위대한 일을 하느라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지배하는 사고방식은 딱 하나다.
난 이런 곳에서 살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물론 내 인생에 뭔가가 잘못되어 지금 당장은 이러고 있지만, 난 언제고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 더 넓고 좋은 곳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어 나간다. 이것이 이들의 삶이다.
내 아버지는 탄광노조를 이끈 노조위원장이었다. 탄광폐쇄가 결정되고 국가보조금을 가로채려는 회사와 자본가들을 상대로 길고도 길었던 싸움 끝에 끝내 패배했다. 공권력과 함께 용역깡패가 밀고 들어와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아버지를 살아 있는 시체로 만들었다. 불법파업으로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소송에 휘말렸고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채무를 떠안았다. 그 빚은 연좌되어 빚은 빚을 낳고 빚은 빚을 늘려 이제는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다. 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붕이 낮은 집 하늘 위로는 비행기가 낮게 날고 마당 수도꼭지 한 편에는 주인집 강아지 한 마리가 산다. 비행기를 올려다보면 강아지의 배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강아지는 가끔 내 앞에서 항복이라도 하는 것처럼 배를 다 보여주며 발라당 드러눕는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옆방에 사는데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지, 내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가끔 방언을 뛰어넘는 기도소리가 새어 나온다. 정상적인 소리가 아니다. 환한 정오에도 등불을 들고 먹이를 찾아 나서는 인간을 닮은 괴물처럼, 어쩌면 저 미치고도 미친 대낮의 광기 가득한 소리가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이곳까지 인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곧 이곳을 떠날 사람처럼 서로의 사연에 대해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녀와 나는 우리 앞에서 항복한 강아지의 배를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럴 때면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하지만 이곳은 이런 사소한 행복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빚쟁이들이 찾아와 아버지를 때린다. 더 이상 가져갈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행패만 부리다가 나까지 발로 걷어찬다.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여기에 물고기라도 한 마리 살았으면 좋겠어.”
코피를 닦는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놓는 빨간 고무대야 옆에 작은 어항이 있어 물고기라도 한 마리가 살면 강아지도 심심하지 않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그리 척박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혼자 중얼거려 보았다. 이런 일은 나에게만 발생하지 않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발생한다. 그녀도 예외 없다. 방언이 폭발하는 날도 있고,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고통스러운 소리가 새어 나와 그녀를 울게 만든다. 그래도 그녀와 나는 나름 우리들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그림을 엄청 잘 그린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눈이 내리면 우리는 서로를 위해 선물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녀가 나를 그려주겠다고 했다.
“단! 눈이 올 때만이야.”
난 그래서 강아지도 안고 같이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눈만 오면 기분이 좋아져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난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난 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면서 참 좋은 여자아이를 만나서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손을 겨우 들어, 숨기고 숨겨둔 오래된 손목시계를 가리키셨다. 엄마가 결혼식 때 해준 시계란다.
이거 팔아도 되냐고 묻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비싸지도 않은 시계라 금은방에서 쳐주는 가격으로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사서 그녀에게 선물을 해주었다.
성탄절 전야,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린다.
기분이 좋아진 그녀가 수도꼭지 옆에서 달빛과 노란 전구 등 아래 나와 강아지를 모델로 세우고 그림을 그린다.
“가만있어. 움직이면 안 돼.”
얼마나 되었을까? 난 그녀가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 그녀를 보고 또 본다.
눈이 정말 예쁘다.
“야.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데 그렇게 싱글벙글이야? 좀 가만히 있어. 표정이 자꾸 바뀌니까 얼굴 그리기가 어렵잖아.”
“어 미안. 네 눈에 물고기가 사는 것 같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물고기?”
“응. 네 눈 속의 물고기가 여기 말고 넓은 바다로 나아가서 살았으면 좋겠어. 넌 여기서 도망치고 싶지 않아? 우리 같이 도망칠까?”
“왜? 내가 왜 도망쳐?”
그녀가 대답대신 묻더니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녀가 다시 그림을 그려나간다.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는데 곧 그림이 완성되었다.
“자, 됐어. 완성.”
“와!”
잔뜩 기대한 채로 그림을 받아 든 나는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돼지촌 밖의 사람들은 내가 왜 우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그림이라기 보다는 한장의 사진과 가깝다.
그녀가 나를 위해 그려준 그림은 크레파스로 그렸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장의 사진처럼 선명했는데, 나와 강아지가 아니라 물고기 한 마리였다.
청어야.
청어?
응. 그냥 깨끗한 물고기.
그녀의 말대로 맑은 물속에 등이 파란 청어는 물 색깔과 똑같아 보여 어떻게 보면 물이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청어가 맞았다.
그녀가 나를 위해 그려준 그림 속의 물은 너무나도 깨끗했고 청어는 그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