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뽕빼기
나이를 먹어갈수록 초저녁에 잠들기 일쑤고 기상시간은 그만큼 앞당겨지고 있다. 요즘은 보통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머리맡에 위치한 피시 전원부터 일단 켜고 보는 것이다. 정신이 들면 담배가 당긴다. 날이 추워져서 밖에 나가는 게 참 귀찮은데 지극정성이다. 눈보라가 치든 폭우가 쏟아지든 그까짓 거 한 대 피우러 꼭 나간다.
소니 헤드셋을 착용하고 최근 작가님들에게 추천받은 곡을 틀고 밖으로 나갈 때면, 이걸 이렇게까지 꼭 피워야 하나 싶은데 담배 맛이 진짜 더럽게 없을 때가 있다.
얼음 세 조각에 빨간 홍주를 살짝 따르면 그 빛이 참 예쁘다. 현관문을 따라 켜지는 등에 요리조리 비춰보면 보석 같아 보인다. 아까워하면서 한 잔 마시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8시까지는 쭉 쓰게 된다. 무릎이 아프니까 작은 책상 밑으로 두 다리를 폈다 접었다, 이 동작을 의식적으로 때론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게 되는데 나름 몰입의 상태이므로 몸 안의 혈액은 물론이요, 몸 안에 있는 당분과 지방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잘 먹는데 왜 살이 안 찌냐고들 하시는데, 살이 안 찌는 이유는 다 있는 것 같다.
혈당도 정상이다. 보통 내 나이 사람들 공복에 혈당체크를 하면 130에서 140은 나온다는데 회사 종합검진 때 깜박하고 아침에 봉지커피 마시고 가서 재도 100을 넘는 일이 없다.
뭐 이런 말하면 그러다 훅 간다고들 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8시가 넘어가면 어느 순간 옆에서 죽은 사람처럼 자고 있는 사람이 기척을 한다. 내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들어온 지도 모르고 분명 담배냄새를 몰고 들어왔을 텐데 그것도 모르고 잘 자던 사람이 음, 하며 기척을 한다. 밥 할 시간이다. 나는 열심히 쓴 글을 저장하고, 엔드라이브에 올리고 그래도 불안해 네이버 메일 나에게로 보낸다.
장르소설은 보통 200화를 기준으로 네이버 시리즈나 카카오페이지와 같은 대형 플랫폼을 통해 연재가 되는데 책으로 따지면 한 권에 300페이지 13만 자이고 총 8권 분량에 해당한다.
그리고 1화는 5천 자 내외다. 이 5천 자 안에 완결성을 가진 이야기를 담기도 하고 다음 화로 넘기기도 하는데 때론 앞으로 치고 나가기가 먹먹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쨌든 엉덩이만 붙이고 있으면 어떻게든 써진다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담당편집자와 매번 부딪치며 기껏 쓴 글을 통째로 날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는데 지금은 이 양반이 나를 포기했는지 아니면 믿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고생해서 쓴 글을 날리는 그런 일은 없다. 쓰면 다 돈이다. 버리는 일도 없다. 그래서 눈만 뜨면 무조건 컴퓨터를 켜고 본다. 그런다고 막 쓰면 안 된다. 부드럽지만 정성스럽게 하루 5천 자를 200화가 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꾸준히 써나가면 된다. 5천 자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3시간에서 5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게 쉬울 때는 엄청 쉬운데, 한 번 어려워지기 시작하면 사람 돌아버린다.
언젠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아빠도 문학작품 쓰면 안 돼? 이런 판타지 말고.
그래서 너도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면 안 되겠니? 했었다.
아들은 약속을 지켰지만 난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요즘 브런치를 통해 나와 결이 다른 작가님들과 교류를 하게 되며 배워나가는 게 참 많다.
어쩌면 지금 이런 일상을 쭉 나열하는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내 글쓰기의 문제가 도대체 뭘까? 이런 고민에서부터 출발해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난 분명 어렸을 때 누나들과 놀며 배 깔고 엎드려 누나들이 읽는 책을 따라 쓰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었는데 왜? 친구 따라 건축을 전공했고 직장은 또 엉뚱하게 반도체 관련업체를 28년이나 다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내 인생의 단추가 잘못 끼워져서 문학을 멀리하게 되었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다가 도저히 이렇게는 못살겠다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트라 우마 때문일까? 뭘 쓰면 난 뭐가 있는 놈, 난 너희들과 달라. 이런 어깨 뽕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다.
브런치 작가님들과 교류하다 보니 뒤늦게 공부를 한다고는 했지만 참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순문학은 잘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에게 깊은 사유와 언어의 실험을 요구할 거라고 본다. 그 깊은 사유는 내가 죽을 때까지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장르문학은 독자와의 호흡과 서사의 힘을 중요시하는데 이게 꼭 다른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순문학과 장르문학이라는 양쪽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다 잡을 수 있을까?
그런 행복한 날이 올까?
그때가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표를 내버릴 건데, 그 기한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금의 나로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혹시 또 아는가? 당장 내일이라도 기적처럼 일어날 수 있는 일일지도.
옆에서 기지개를 쭉 켜면서 우웅, 한다. 밥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