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을 지나 호흡을 건너, 바람 앞에 선 하루
길리 섬 — 대조 속에서 드러나는 정적
롬복 북서쪽 방살 항구에서 배를 타고 20여 분, 바다가 열어준 길 끝에 길리 섬이 나타났다. 푸켓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찾은 섬이었기에, 나는 이곳에서 바람과 파도의 잔잔한 합주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배가 항구에 닿자마자, 그 상상은 곧 무너졌다.
항구는 이미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커다란 배낭을 멘 이들이 부두를 메우고, 삼륜 수레에 짐을 실은 사람들이 길을 가로막았다. 말이 끄는 작은 마차가 연이어 들어왔고, 그 옆으로 자전거가 비집고 지나갔다. 자동차는 없었지만, 말발굽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 자전거 벨 소리가 한데 뒤섞이며 도로는 끊임없이 요동쳤다. 나는 그 소란스러운 풍경 속에서 한동안 길을 잃은 사람처럼 멈춰 섰다. 기대했던 ‘고요한 섬’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리조트에 들어서자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항구의 분주함은 곧 멀어지고, 파도 소리와 바람만 귀에 남았다. 길은 점점 잠잠해졌고, 발자국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야자수 그늘 아래 알록달록한 빈백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나는 그중 하나에 몸을 기댔다. 낮 동안의 햇살은 모래 위에서 은빛으로 반짝였고, 빈백에 앉아 있으니 파도 소리가 등을 받쳐 주었다. 수영장은 텅 비어 있었고, 그 정적 속에서 파도 소리가 자연스레 공간을 채웠다. 같은 섬 안인데도, 항구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나는 빈백에 파묻혀 한참 동안 파도를 바라보았다. 철썩, 철썩 변함없는 박자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눈을 감으면 바람이 피부를 스쳤고, 야자수 잎이 부딪히는 작은 소리가 파도의 합창에 은근히 섞여 들어왔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이 섬의 진짜 사치였다.
밤이 되자 길리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리조트 쪽은 파도 소리만 남아 고요했지만, 항구 근처 해변에서는 환한 불빛과 음악이 울려 퍼졌다. 매일 밤 빠지지 않고 열리는 파티였다. 여행자들은 해변에 모여 술잔을 부딪히며 춤을 추었고, 그들의 웃음과 음악은 바다 위로 번져 나갔다. 같은 섬 안인데도, 한쪽은 소란으로 들썩이고 다른 한쪽은 잠잠히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멀리서 그 소리를 들으며 파도에 더 귀를 기울였다. 내 여행은 화려한 파티보다는 바람과 파도의 박자를 선택하는 쪽에 가까웠다. 별빛 아래 앉아 있으면,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조차 바다의 배경음처럼 희미해졌다.
며칠 뒤, 돌아오는 배를 타기 전 다시 항구에 섰다.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고, 마차와 자전거가 좁은 길을 가득 메웠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혼란스럽기만 했던 그 풍경이, 이번에는 이상하게 반가웠다. 소란이 있기에 고요가 더 깊게 느껴지고, 복잡함이 있기에 파도의 단출한 박자가 더 도드라졌다. 길리 섬은 내게 ‘대조 속에서 드러나는 고요’를 보여주었다.
낭구 섬 — 바닷속의 고요, 몸으로 기억되는 체험
길리를 떠나 배는 더 낮은 파도를 가르며 낭구 섬으로 향했다. 선체가 물결을 타고 오르내릴 때마다 소금기 묻은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얕은 모래밭에 닿자 장비가 건네졌다. 마스크 끈을 조이고 스노클을 무니, 짧은 플라스틱 소리가 났다. 핀을 신자 발목이 물의 무게를 기억하는 듯 잠깐 휘청였다. 가이드는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말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물에 몸을 맡기는 순간, 세상의 볼륨이 낮아졌다. 소리라 할 만한 건 내 호흡뿐. 들숨은 길게 울리고, 날숨은 기포가 되어 관자놀이를 스치며 터졌다. 처음엔 그 울림이 낯설었지만, 몇 분 지나자 그 호흡이 오히려 기준이 되었다. 내가 다루는 건 풍경이 아니라 호흡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수면 아래에는 정직한 질서가 있었다. 산호는 제자리에서 묵묵했고, 작은 물고기들은 무리 지어 방향을 틀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웠으나, 닿지 않기로 했다. 이곳은 떠오르는 기포처럼 가볍게 스쳐 지나가기로.
가끔은 스노클을 문 채 수면을 따라 천천히 흘렀다. 팔과 다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피곤이 아니라 보류 멈춤에 가까운 움직임. 그러다 한 번, 호흡기를 빼고 숨을 잠시 삼켰다. 핀 끝을 모래에 대고 몸을 한 뼘 더 눌렀다. 귀가 ‘톡’ 하고 막히는 느낌이 오고, 가슴이 금세 신호를 보냈다. 바로 그때가 좋았다. 위에서 내려오는 빛이 손등을 스치며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순간. 곧장 수면을 향해 몸을 밀어 올렸고, 공기가 폐로 들어오자 가슴이 시원하게 열렸다. 짧은 긴장과 해방이 겹치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이후로 바다는 다르게 들렸다. 나는 물속 풍경보다 호흡에 귀를 기울였다. 물고기 무리가 시야를 가로질러도 내 귀에는 들숨과 날숨이 먼저 도착했다. 길리에서의 고요가 바람과 파도 사이의 간격이라면, 낭구의 평온은 내 호흡과 심장 사이의 간격이었다.
섬으로 돌아와 핀을 벗자 발목에 남은 물의 무게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몸은 가벼워졌고 마음은 또렷해졌다. 물속에서 올려다본 하늘의 색이 아직 눈 안쪽에 남아 있었고, 그 색을 떠올릴 때마다 복잡하던 생각들이 간단해졌다. 낭구의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체험이었다. 보기보다 느끼는 편이 훨씬 오래 남는, 그런 하루였다.
부킷 메레세 — 바람의 방향으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풍경은 비워졌다. 길가의 가게는 드문드문해졌고, 나무 그늘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코코넛을 파는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염소 서너 마리가 도랑 옆 풀을 뜯고, 먼지 섞인 바람이 차창으로 스며들었다. 지도에서 보던 커브를 하나둘 지나자 길이 끝나는 지점에 완만한 언덕이 나타났다. 바람을 보러 오르는 곳, 부킷 메레세(Bukit Merese).
발바닥엔 마른 흙의 바삭거림이 전해졌다. 바람은 등 뒤와 옆, 때로는 정면에서 번갈아 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등을 미는 듯했다. 몇 걸음마다 뒤를 돌아봤다. 해안선은 곡선을 그리며 멀리 미끄러지고, 바위섬들은 점처럼 바다에 박혀 있었다. 파도는 멀리서 흰 선이 되어 엷게 겹쳐졌다. 가까이선 듣지 못하던 소리가 바람에 실려 언덕을 타고 올라와 귓바퀴에 닿았다. 그 순간, 시간 감각이 잠시 멈췄다.
정상에 닿자 바다가 겹으로 열렸다. 짙은 남색, 중간의 청록, 가장자리의 옅은 비취. 색과 색 사이에는 얇고 긴 흰 선들이 수평으로 포개져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밑줄처럼. 나는 그 밑줄을 따라 눈을 움직였고, 눈동자가 가는 곳마다 바람이 먼저 지나갔다. 어디에 앉아도 풍경은 정확했다. 가방을 베개처럼 받치고 눕자 하늘의 파란 면이 더 커졌다. 손등에 묻은 모래의 거친 감촉이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여기서는 고급스러운 것은 하나도 필요 없었다. 바람과 시야, 그것이면 충분했다.
바다는 서서히 빛을 바꾸었다. 청록 사이에 따뜻한 회색이 스며들고, 수평선의 선명함이 부드러워졌다. 누군가는 삼각대를 세우고, 누군가는 연인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 사람들 사이로 작은 정적이 흘렀다. 말수는 줄고, 시선은 멀어졌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안만큼은 모두가 잠시 같은 마음이 된 듯했다.
낭구에서는 호흡을 듣는 법을 배웠고, 여기서는 바람을 믿는 법을 배웠다. 물속의 고요가 안쪽으로 모인다면, 언덕의 고요는 바깥으로 넓어졌다. 내 안의 박동을 세던 손이 어느새 수평선의 길이를 재고 있었다. 더 멀리, 더 크게, 더 느리게.
해가 산등성이를 넘기 전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바람의 무게, 모래의 온도, 멀리서 올라오는 파도의 템포. 눈을 감고 깊게 한 번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풍경이 조금 더 내 것이 되었다.
언덕을 내려올 때 그림자는 길어졌고, 흙길의 색도 한 톤 어두워졌다. 차문이 닫히는 소리 뒤로 바람이 한 번 차 안을 스치고 조용히 빠져나갔다. 그제야 알았다.
오늘의 장면은 파도도 해안선도 아닌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 쪽으로 기울어 서 있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