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 감사하며 더 행복하기를 바라며
나는 방문을 열면 산이 시야를 가득 메우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새벽이면 산새 소리가 알람처럼 들려왔고, 저녁이면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질 때 붉게 물든 하늘이 집안 가득 번져들었다. 세상 가장 작은 마을에서 가장 큰 풍경을 바라보며 자란 셈이다.
지금은 하루 두 번 읍내로 가는 버스가 다니지만, 어린 시절엔 교통이 불편해 학교에 가려면 비포장길을 한 시간이나 걸어야 했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어 신발이 빠지고, 해가 뜨거우면 먼지가 구름처럼 일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묵묵히 걸었다.
겨울이면 사정은 더 혹독했다.
마을 뒷산을 넘어 학교로 가야 했고,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 위로 숨을 몰아쉬며 걸어야 했다. 뺨은 얼어붙었고, 손은 곱아 펴지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함께여서 견딜 수 있었다. 아직도 그 눈길 위의 하얀 숨결과 발자국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겨울철 주말이면 부모님과 누나들과 함께 산에 땔감을 구하러 갔다.
소나무 마른 잎, 우리는 그것을 ‘갈비’라 불렀다. 이름처럼 갈비뼈처럼 뻣뻣하게 마른 소나무 잎은 가볍지만 화력이 좋아 땔감으로는 제격이었다. 갈고리를 손에 들고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갈비를 긁어모으면 겨울 날씨에도 등 뒤로 땀이 흘러 내렸지만, 누구 하나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았다.
자루에 가득 담은 갈비를 경운기에 실어 집으로 내려오면 어느새 한나절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일은 고됐지만, 정지(부엌의 충청도 사투리) 앞에 수북이 쌓인 갈비를 바라볼 때면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번 주는 따뜻하게 지내겠구나’라는 안도감은 추위를 잊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께서 큰맘 먹고 집을 리모델링하셨다.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나무를 떼던 부엌은 현대식 싱크대를 들였다. 그 덕분에 매 겨울 산에 올라 땔감을 모으던 수고는 그때로 끝이 났다. 비로소 우리 집에도 겨울의 매서움을 조금은 비켜갈 따뜻함이 찾아왔다.
부모님은 농사로 다섯 남매를 키우셨다.
넉넉하지 않은 땅에서 담배와 벼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키워내는 일은 늘 고단하고 버거운 일이었다. 다섯 아이 모두를 대학에 보내기엔 형편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형과 누나들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 사회에 나섰다. 나는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대학에 갈 수 있었고, 그만큼 어려움도 덜했다. 형과 누나들이 흘린 땀방울과 희생이 있었기에 내 삶은 조금 더 넓은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내 옷이나 책가방은 대부분 친형이나 사촌형에게서 물려받았다.
새것은 늘 남의 차지였고, 나는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대구 고모댁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 아직도 또렷하다.
고모께서 시장에서 ‘부르뎅’ 아동복을 사주시며 웃으셨다. 그것이 내 생애 첫 새옷이었다. 바스락거리는 새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작은 옷 한 벌이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부모님은 평생 자식들에게 미안해하셨다.
좋은 옷을 입히지 못한 것, 배불리 먹이지 못한 것, 그리고 자식 모두를 공부시키지 못한 것을 늘 한으로 여기셨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부족함이야말로 우리 가족을 단단하게 만든 힘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불평하지 않았다.
형제들이 그러했기에 나도 당연히 받아들였다. 부족함은 오히려 우리를 단단히 묶어주었다. 함께 힘든 시기를 지나며 우리는 서로의 고생을 알았고,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시절이 있었기에, 우리 형제들은 남들보다 더 깊은 우애를 나눌 수 있었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는 명품 옷을 입지 않아도, 외제차를 몰지 않아도 마음만은 언제나 부자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형제들과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어릴 적부터 부족함 속에서도 감사하는 법을 배운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것을 탐하거나,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욕심이 없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길이 열렸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묵묵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행운과 기회가 따라오기도 했다.
나는 이제 안다.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모든 것을 가졌을 때보다 더 깊고 오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