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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의 마지막 식사

‘오리탕’ 그 식지 않는 그리움의 맛

by 노래하는쌤

당신은 나를 위해 귀찮을 정도로 정성스러운 음식을 자주 해주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잘 소화시키지 못했기에, 까시 같은 내 몸에 살이 붙으려면 고기를 먹여야 한다며 소고기와 오리고기 요리를 해주었다.


소고기 힘줄은 질기다며 다 떼어내고, 잘게 더 잘게 썰어내 내가 좋아하는 계란과 함께 장조림을 만들어 주었고, 오리는 살코기 부분만 골라 찬물에 손이 시리도록 손질해 오리탕을 끓여주었다.


가을이 끝나갈 때면 겨울 찬바람이 곧 들이닥친다며 “몸을 뎁혀놔야 쓴다.”고 하면서 오리탕을 더 자주 끓였다. 하지만 정작 당신은 육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 오리탕에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당신 마음의 방식으로 건넨 ‘사랑’이었다.


가을이면 당신은 집 앞 텃밭에서 토란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햇빛 아래 길게 펼쳐 말렸다. 내가 옆에서 돕겠다고 토란대를 잡으면 당신은 손사래를 치며 못하게 했다.


“토란물때가 껴블믄 손톱이랑 손꾸락이 몬양 읍어져야.”라고, 나중에 손이 아플 거라고, 한사코 나를 말렸다. 그러면서도 끝내 나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당신은 결국 허락했고, 그 순간부터는 늘 나란히 마당에 쌀포대를 깔고 앉았다.


그 뒤로 20여 년... 가을마다 우리는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서 토란대를 다듬었다. 그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당신은 토란대를 썰고 손을 움직이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토란대를 벗기며 그 모든 말을 가만히 받아 적듯 마음에 담았다. 당신은 내가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여러 번, 마치 처음 듣는 사람에게 말하듯 반복해서 해주었다.


이야기 속 그분은 당신을 참 많이 힘들게 했던 사람, 당신 말대로라면 ‘천하의 몹쓸 사람’이었지만, 그 원망 뒤에 묻혀 있는 슬픔을 나는 어렴풋하게 느끼곤 했다. 혼례를 치르고 자그마치 10년 동안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다고 했다.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씩 이해해 보려던 바로 그해, 할아버지는 열이 펄펄 끓다가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 나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당신의 아들,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가 태어나기 보름 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당신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그리고 얼마나 막막한 세월을 견뎌왔을지 상상해보곤 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오리탕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신은 해마다 할아버지의 제삿날이 되면, 우리가 함께 손질한 토란대를 듬뿍 넣어 정성껏 오리탕을 끓여 상 위에 올렸다. 당신은 먹지 않으면서도 내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리고기를 발라줬다. 그 손길은 마치 당신이 할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어떤 마음까지 함께 건네는 것처럼 보였다.


세월이 흐르고 당신은 점점 기억을 잃어갔다. 당신과 내가 함께했던 모든 계절도 희미한 안개처럼 사라져 갔다. 모든 기억을 잃고 마지막 남은 나마저 기억에서 지워져 갈 무렵, 나는 당신과 마지막 외출을 했다. 그날 당신은 난생처음으로 오리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평생 먹지 않던 음식이었다. 기억 저편 당신을 알고 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멈칫했지만, 곧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그날, 온전히 한 그릇의 오리탕을 비워냈다. 정말 맛있다고, 따뜻하다고, 오랜만에 속이 편하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마음 한쪽이 저릿하게 저려왔다. 당신이 잊어버린 것이 슬펐고, 잊었기에 편안해 보이는 것이 또 슬펐다.


당신이 내 곁을 떠난 후, 한때 나는 당신에게 단 한 번도 오리탕을 끓여주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남겨진 내가 후회하며 살아가길 당신이 원치 않는다는 걸...


나는 후회는 흘려보내고, 나의 글 속에서 당신에게 오리탕을 끓여서 건네주려고 한다. 그곳에서만큼은 당신과 함께 하고 싶었던 기억들을 모두 펼쳐 내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허황된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나에게 글은 모든 것을 이뤄 낼 수 있는 힘이다.


이 가을,

당신의 방식으로 나에게 건넨, 사랑이 가득한 오리탕처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방식으로 당신을 오래도록, 마음껏 그리워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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