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느끼는 진한 꽃향기.
아이가 꽃을 꺾어왔다.
작은 손에 꼭 쥐어진 꽃 한 송이가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놓였을 뿐인데,
그 짧은 순간에 마음 한 모퉁이가 먼저 조금 흔들렸다.
바람에도 쉽게 흔들릴 것 같은 어린 손길에서
낯선 다정함이 불쑥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에구, 꽃이 아플 것 같은데..
다음에는 꺾지 말고 눈으로만 보는 건 어떨까?”
말을 전하면서도,
아이의 마음이 어떤 방향에서 나를 향했는지
이미 반쯤 알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더 부드러워졌다.
아이는 잠시 고민하듯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꽃이 너무 이뻐서요. 엄마한테 선물하고 싶어서요.”
망설임도 없이 건네는 그 말이
오히려 나를 더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쁜 꽃을 보고 나를 떠올린 아이의 마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렸던 맑은 마음 한 조각이
고스란히 내 품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고사리손으로 건네는 작은 꽃 한 송이에
아이가 담아온 마음이
따뜻한 온기로 번져오는 것 같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가을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찬 바람이 쌩 하고 불어서
케케묵은 겨울옷들을 잔뜩 꺼내고는
“더 추워지기 전에 정리해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었던 참이었다.
가을을 보낼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겨울맞이에 나서버린 나는
마음부터 꼭꼭 얼어붙어 있었다.
유독 안 좋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
‘또 내게 불행만이 닥치는구나’
하고 괜히 낙담하고 있던 며칠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모르게 깊숙이 움츠러든 마음에
따뜻한 한 줄기 바람조차 닿지 않는 듯한 그런 날들.
아무리 해도 온도가 오르지 않는 방 안처럼
내 마음도 계속 낮은 온도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런 내게 꽃이라니.
정말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온 작은 온기였다.
완연한 가을을 느끼지도 못한 채
꽁꽁 얼어붙어가던 내게 건넨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정말로 나를 녹이고 있었다.
아이가 건넨 건 꽃이 아니라
그동안 내 안에서 굳어 있던 시간을
조금씩 풀어주는 따뜻함에 가까웠다.
말을 하지 않아도, 향기가 없어도
작고 여린 꽃 한송이가 굳어 있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놓았다.
향기도 없는 이 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잊지 못할
진한 향기를 남겼다.
거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하루의 한 장면에서
이렇게 오래 머무는 향기가 채워질 줄은
정말 몰랐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아이가 건네준
따뜻한 마음 하나가
이토록 오래도록 배어드는 향기라니.
그 향기 덕분에 나는 비로소
놓치고 있던 가을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잠시,
내 마음속 겨울도 뒤로 살짝 밀려나는 듯했다.
가을이 저물어가는 오늘,
아이가 건넨 꽃 향기에
오늘도 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