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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땡이 러너 Feb 26. 2017

혼자 달릴 때, 넌 무슨 생각을 해?

달리기 찬가 #4.  혼자 달린다는 것

글 쓰는 일을 하지만, 퇴근 후엔 몸 쓰는 일을 즐기는 직장인. 대학생이던 2012년 무렵부터 취미로 러닝을 즐기고 있다. 이런저런 운동에 손을 댔지만, 결국 러닝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뛸 때마다 잡스런 생각을 하다 보니 러닝을 하며 가장 튼튼해진 건 마음. 달리며 얻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공유한다.
달릴 때 무슨 생각 하면서 달려? 재밌어? 난 재미가 없어서 못하겠어


러닝을 취미로 삼았다는 말을 전하면 열에 아홉은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그래, 러닝은 혼자 하는 운동이다. 수천 명이 출발선에 모이는 마라톤 대회에서도 결국 나 혼자 달린다. 근육을 탄탄하게 잡아주는 타이즈,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건조하는 양말도 있지만. 결국은 두 다리로 달리는 것은 내 몫이 된다.


그래서 남들과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짬 내기도 어려운 직장인들이. 그리고 2017년을 버겁게 살아가는 이들이 달리기에 매달리는 이유가 된다. 동호회에 가입해 수십 명이 줄을 맞춰 떼를 지어 달린다 해도 결국 달림은 내 몫이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사실 많은 생각을 한다. 다리 근육에 전해지는 긴장, 떨림을 생각하기도 하고. 앞서가는 러너의 달리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경치를 보고 감탄하기도 한다. 옛 애인을 생각하기도 하고. 노트북에 남겨두고 온 문장을 생각하기도 하고. 연말정산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기 숨소리를 듣는 이들도 있다.


빨라지는 심장 박동 수만큼이나 자잘한 생각들이 잦게, 그리고 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 생각들이 재미있느냐고? 글쎄, 적어도 뛰는 동안에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어렵다. 특히 레이스 중반에는 말이다. '달리기가 재밌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무래도 결승선을 통과한 다음의 일이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재미있을게 뭐가 있는가. 팀원의 패스를 받아 골망을 가르는 짜릿함도, 주먹을 휘둘러 샌드백에 꽂아 넣는 통쾌함도 없다. 50분, 40분? 기록 단축의 묘미?  기록은 달리기가 끝난 뒤의 결과 이상은 아니다.(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달리기는 '좋다'. 그것도 혼자 달리는 것은 더욱 그렇다. 뭐가 좋은지를 어렴풋이 느낄 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접하게 됐다. 제목은 이렇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키는 서브-4 수준의 러너다. 마라톤 풀 코스를 4시간 이내에 완주한다는 의미다. 월평균 300km씩 20년 넘게 달리고 있지만, 한 번도 부상을 입은 적이 없는 재수 없는 캐릭터다. 절반 이상이 자기 자랑으로 쓰인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하루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절묘하다. 적어도 재밌지 않아도, 달리기가 좋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적어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더 정확하게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것.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페이스북의 입력창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트위터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라고 끊임없이 묻는다. 생각 과잉의 시대다. 끊임없이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답하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달리는 시간이 눈물 나게 고맙다. 이렇게 말해주니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특히 하루의 절반 이상을, 누군가의 얘기를 끊임없이 들어야 하는 나 같은 이들에게는 눈물 나게 고마운 시간이다. 그래, 재미는 없다. 그러나, 좋은 것이 꼭 재미있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달리기는 좋다. 혼자 달린다는 것은 더더욱 좋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좋다. 혼자 달리는 순간, 아무도 질문하지 않을 테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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