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기업에서 사람과 조직이 함께 성장하는 길을 도모하고 있는 조직개발자입니다.
사람은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존재이고, 더불어 그런 사람들이 꾸려가는 조직 역시 진화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일에 임합니다.
믿음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소위 ‘멋진 인본주의자’로 살고 싶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하루 중 얼마 간은 이 휴머니즘이 저에게 무거운 양심적 족쇄가 됩니다.
뾰족하고 미성숙한 바늘 행동들로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조직 분위기와 문화까지 좀먹고, 시너지 대신 ‘미저리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들.
가끔은 빌런들로 가득 찬 볼풀장에 빠져 이족 보행도 버거운 기분이 듭니다.
한 번은 국내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조직문화 구루와 저의 고민을 나누며 이런 조언을 들었습니다.
빌런이라 불리는 그 사람이, 다른 환경에서도 여전히 빌런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들에게도 인본주의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예, 맞는 말씀이지요. 그렇고 말고요.
그런데 문제는, 이 교과서적 신념이 하루 하루의 고통을 줄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옆자리에 앉아 있는 그 분은 여전히 ‘별로’니까요.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저 역시 보통의 방식으로 진상들을 버텨냅니다.
뒷담화로 못난 마음을 배설하거나, 옆 동료도 '그/그녀'로 인해 같은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며 '나만 힘든 건 아니군' 유치한 자기 위안을 스스로에게 건네기도 합니다.
정상인들 간의 연대가 형성된 듯 하여 순간은 시원하지만, 끝내 공허함과 찝찌르함이 더 크게 자리 잡습니다.
그/그녀의 행동은 여전히 쉽사리 제어되지 않고, 조직도 여전히 병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는 직업적 가치관과 직장인 인격이 매일 충돌하는 딜레마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은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정작 사람 때문에 지치고 환멸과 자책 속에 빠지곤 합니다.
휴머니즘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람을 원망하고 있는 제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재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시작하려 합니다.
제 곁에, 그리고 여러분 곁에 언제나 실존하는 빌런들을 최선을 다해 다정하게 관찰해보는 일. 그들의 두터운 개인사나 성장의 유래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더라도, 짧은 심리학 지식으로 행동의 퍼즐을 맞춰보고, 인본주의적 연민으로 조직 안에서 그들을 어떻게 품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노오력를 해보려 합니다.
그들의 뾰족한 말과 미성숙한 행동 뒤에는 어쩌면 커다랗고 나약한 불안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빌런’이라는 이름 아래에 치열하고 고독한 인간적인 욕구가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직개발 관점에서 보면, 그런 방어적 행동은 결국 개인의 생존 전략이자 조직문화가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조직이 빌런을 키우는 토양을 바꾸지 않는 한, 그 ‘별로인 사람’은 어디에서든 다시 나타납니다.
이 연재는 '빌런현상'을 마주하는 성찰기입니다.
사람이 별로라서가 아니라, 별로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탐색하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과 조직이 함께 달라질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