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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지옥에 빠진 사무실 빌런

by 조직실험실

Y의 행동과 말은 언제나 조금 느렸다.
만약 그녀가 연주자라면, 음정을 살짝씩 밀어내는 기교를 부리는 듯한 리듬일 것이다. 발걸음도 느리고, 대화도 느리다. 모두가 빠르게 움직이는 사무실 속에서 Y는 홀로 다른 박자에 머문다.

그래서였을까. Y는 ‘지각 대장’으로 통했다. 누구나 부지런히 출근해 자리를 지키고 있을 시간, 그녀는 여유롭게 문을 열고 들어와 당당하게 자리에 앉곤 했다. 가장 늦게 등장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 그녀의 하루는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인사팀과 리더들에게 Y는 오래된 골칫거리였다. 근태 말썽의 대명사였던 Y 가 속한 팀은 늘 인사의 압박을 받았다. 온갖 리더들이 수도 없이 피드백과 교정을 요청했지만, Y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협업에서 드러나는 Y의 파괴력은 실로 어마했다.

Y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최소 손절 아니면 탈진이었다. 어떤 이는 심한 공황으로 휴직을 선택해야 했다. 납기는 지켜진 바가 없었고, Y의 손을 거쳐간 모든 일들은 더 실타래처럼 꼬여있기 일쑤였다. Y에게 회사 업무는 그저 대학 시절 팀플처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에 가까웠다. 학점도 C를 받으면 그만이었고, 고과도 저성과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어느 날, 팀 전체가 달려야 하는 핵심 프로젝트의 중간 리뷰 미팅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모두가 산출물을 올려놓고 치열하게 조율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회의를 앞두고 사무실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는데, 정작 Y는 출근하지 않았다. 대신, 갑자기 연차를 내고 결근을 선언했다. 팀 전체의 긴장이 무너지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동료들에게 넘어갔다.

나태지옥에 빠진 Y는 동료들을 함께 지옥에 빠뜨리고 있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녀는 자타공인 ‘빌런’이 되었고, 폭탄 돌리기 하듯 여러 팀을 전전하다 결국 조직에서 고립된 존재로 남았다.


Y는 좋은 엄마이자 아내였고, 딸이었다.
결혼과 출산을 겪고, 불행히도 가까운 가족의 투병과 죽음을 차례로 맞이했다. 삶의 무게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그녀에게 회사는 점점 ‘삶의 중심’이 아니라 ‘떠밀려 다니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업무에 몰입하지 못하는 Y의 태도는 삶과 일의 균형을 감당하지 못한 몸부림일 수 있었다.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더라도 이미 자기 효능감은 바닥났고, ‘애써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학습된 무력감이 자리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반복되는 지각과 결근은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온전히 있을 수 없다”는 무언의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Y는 스스로 퇴사를 선택했다.

다시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였다. 그리고 조직은 Y의 선택을 내심 반겨하는 눈치였다. 아쉬운 기색 하나 없이 Y의 퇴사 절차는 일사천리로 처리되었고, Y의 이름은 영원히 회사에서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Y는 단순히 ‘나태한 직원’, ‘빌런’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Y의 나태는 삶의 무게와 조직 적응 실패가 오랫동안 교차한 결과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조직은 왜 Y가 스스로 떠날 때까지 한참동안 견뎌야 했을까

Y는 운이 좋게도 몇 년간 최저성과 평가를 면할 수 있었다. 이유야 다양했겠지만, 조직은 매번 극소수의 연차 높은 직원들에게만 최저등급을 주었고, 그 과정에서 Y는 늘 아슬아슬하게 한 발 비껴나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조금 나태해도 중간은 간다’는 신호를 Y는 빠르게 학습했고, 그녀는 책임의 자리를 비워둔 채 무기력의 공간에 안주했다. 겉으로는 가족을 돌보는 시간에 몰두했지만, 사실상 조직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나태함의 대가를 회피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본 동료들의 정서였다. 같은 무게의 성과 압박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Y의 모습은 불공정과 허탈감을 남겼다. 결국 조직의 신뢰와 정서적 에너지가 손상된 것이다.


조직이 모든 개인사의 어려움을 책임질 수 없지만, 최소한 성과와 책임의 균형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그래야 나태함이 면죄부로 작동하지 않고, 성실함이 보상받는 문화를 지켜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조직 차원에서 몰입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다. 그래야 나태지옥에 빠진 또 다른 빌런이 몇 년간 조직의 몰입을 갉아먹게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왜 별로일까.
이 질문은 끝내, 조직은 어떻게 하면 사람을 별로가 되지 않게 지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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