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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프로 불평러와 공존하는 방법

by 조직실험실

K는 작은 눈을 가졌다.

늘 약간 턱을 들고 걷는데, 자연스레 고개가 위로 들리며 작은 눈은 더 작아진다. 얇고 가늘게 퍼지는 K의 눈빛에는 세상을 조금 내리 깔아보는 듯한 우월함과 냉소가 깃들어 있다.

K는 말이 거대하게 많다. 업무 얘기, 가족 얘기, 일상 얘기까지. 그의 주변에 있으면 BGM은 빈틈없이 늘 가득찬다. 그런데 그의 모든 말은 소음에 가깝다. K가 관찰하고 겪은 모든 것은 불만이고 별로고 불쾌하다. 하고 있는 업무도 불만, 팀도 불만, 동료도 불만, 배우자도 불만. 작은 눈과 입에 네거티브 패치가 장착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보통의 사람은 말이 너무 많거나, 아니면 너무 시니컬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한다.

그런데 K는 둘 다 한다. 심지어 쏟아내는 속도도 마하급이다.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해도 너무 많이 한다. 그것도 엄청 빨리. 조광일처럼.


회사에서 K와 알고 지낸지는 꽤 오래다. 적지 않은 시간만큼이나 K의 팀장도 그 사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K는 그를 스쳐 지나간 팀장을 단 한 명도 헐뜯지 않은 적이 없다. K 특유의 '터는 능력' 덕분에 문제 있는 팀장 교체에 큰 공을 세운 적도 있었다. 내가 봤을 때 투뿔 한우급은 아니지만 호주산 청정우급의 리더십이 아닐까 싶은 팀장도 K의 입을 거치면 어김없이 부패 직전의 잡내 가득한 다짐육으로 갈갈이 된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K의 팀장은 절대 되지 말아야겠다 수 차례 다짐했다.


K와의 대화는 한 시간을 채 넘기지 못한다. K가 퍼뜨리는 검은 기운은 그 위력이 아즈카반 디멘터 같아서 귀는 헐어버리고, 정서는 불만과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기 쉽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K의 유려한 불평에 감염되어 생기를 잃는다. 밥풀떼기한테도 싫다 싫다 속삭이면 삽시간에 곰팡이가 퍼지는데, 대체로 잘 살고 싶은 인간인 나도 본능적으로 숙주가 되고 싶지 않아 자연스럽게 K와의 대화를 피하게 되었다.


회사에는 비밀이 없다. K의 팀장도 앞에서든 뒤에서든 K가 풍기는 구릿한 불평을 흘려 듣게 마련이다. K가 헐뜯는 사람들이 어디 팀장 하나 뿐이겠는가. 시간이 지날 수록 K와 척을 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K가 욕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K를 욕한다. K를 뒤에서 욕한다고 K는 또 욕을 한다.


그렇게 K는 모두가 아는 악명 높은 불평러가 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K는 일을 참 잘한다.

말이 빠른 사람은 두뇌 회전도 빠른 법이다. K의 손을 거친 업무는 대체로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다. K가 작성하는 보고서는 날카롭고 정갈하다. 배우고 싶은 점이다. 그래서 K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그런데 그 놈의 독침같은 '말투' 때문에 K는 능력만큼 인정을 받지 못한다. K의 위로 들린 고개가 가을 벼처럼 숙여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안타까웠다.


MBTI에서 N을 인간화 해본다면 K의 모습과 닮아있을 것 같다. 맥락을 읽고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18개월된 딸 아이의 단순 배고픈 팔짓에도 자녀의 숭고한 친화력과 본인 DNA와 긴밀한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K의 상상을 들으며 감탄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K의 엄청난 직관력은 종종 과잉 해석으로 번졌다. 작은 신호를 확대해서 보고, 그 안에서 위협이나 불공정을 감지한다. 예민한 안테나는 종종 필요 이상으로 잡음을 수집했다.


K의 예민함에도 역사는 있었다.

몇 년 전, K가 역량이 부족한 선배와 함께 일하다가 불공정한 평가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 때 K가 받은 상처는 단단히 응어리져 남았다. K는 그 뒤로 더 사람을, 특히 평가자를 쉽게 믿지 않는다. 끊임없이 의심하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불평을 주변에 흩뿌린다. K에게 불평이란 결국 “나는 또 다치고 싶지 않다”는 말의 또 다른 번역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무실은 비교적 물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조금 못났어도, 성과가 나지 않았어도 호되게 힐난하거나 질책하지 않는다. 반대로 특출난 인재가 있더라도 하이라이트 조명을 세게 켜주지 않는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조직의 선택이다. 회사의 이런 분위기는 K를 더욱 빠르게 흑화시켰다. 에너지, 열정, 역량 어느 하나 빠지지 않던 그였지만, 아무리 일을 빛내도 그에 상응하는 인정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K는 본인의 우월을 스스로 지키고 증명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더 밑으로 깔아내리는 방식을 택했다. 불평은 그 전략의 일환이 되었고, 동시에 자신이 잃어버린 ‘인정’을 되찾기 위한 왜곡된 무기가 되었다.


프로 불평러를 만났을 때 가장 중요한 건

감정적으로 휘말리지 않는 것이다. 불평은 전염성이 강하다. 부정적인 정보는 훨씬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Negativity Bias). 동조하기 시작하면 감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한때 K의 화법에 심취해 있던 시기가 있었다. K의 팀장은 왜 다 그 모양 그 꼴인지 함께 뜯어주며 K를 동정했다.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출근 정서만 피폐해질 뿐이었다. 지나가는 남의 팀장 발걸음만 들려도 죄책감에 움찔했다.

차갑게 선을 그어도 봤다. 귀가 짓물러 지친 어느 날 "제발 헐뜯지 좀 말래?" 라고 쏘아 붙여 K를 뒷걸음질치게 했다. K의 또 다른 적이 하나 더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이런 저런 시행착오 끝에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의 노하우를 얻었다. 중립적 반응으로 흐름을 끊는 것이 프로 불평러와 적절히 지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끼리 끼리는 과학이다."의 마법에 걸려들기 않기 위해. 동시에 모든 불평이 소음만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했다. 과장된 신호이긴 하지만 그 안에는 조직이 병들어가는 징조도 숨어 있었다. 사적인 친분과 동조 감정은 철저히 차단하고, 메시지만 건져내는 태도가 필요했다. 결국 불평러와의 거리는 적절한 차단과 선별적 수용, 이 두 가지 균형에서 나온다는 것을 K와의 관계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K의 불평은 단순한 성격 문제만은 아니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이를 ‘조직 시니시즘(Organizational Cynicism: 조직 냉소주의)’이라 부른다. 공정하지 못한 경험은 개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결국 조직과 리더에 대한 불신과 냉소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부정적 태도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방어적 전략이다.

만약 K 옆에 능력도 탁월하면서, K보다 화력이 더 센 진정한 투뿔 한우급 리더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K의 화는 내면의 연약한 '불안'에서 기인한 화라서 진정한 강자 앞에서는 치와와가 될 수 밖에 없는 화다. 이를 알고 K가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안다면 제일 좋겠다만 그렇다면 어디 그게 진정한 빌런이겠는가.


조직 차원에서 불공정 평가가 소중한 인재를 프로 불평러로 흑화시켰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해본다. 조직이 바뀌지 않는 한, 혹은 조직과 개인의 가치 코드가 어긋나는 한, K와 같은 프로 불평러는 앞으로도 계속 재생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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