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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Apr 07. 2024

넘어진 아이 옆을 지나치기

꽃 구경 시즌. 어제 오후 양재천엔 화사한 얼굴을 한 사람들로 붐볐다.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한 아이가 우리 가족 쪽으로 맹렬히 킥보드를 몰고 오다가 별안간 중심을 잃으며 얼굴부터 고꾸라졌다.


옆에 있던 아내는 반사적으로 아이 쪽으로 달려나갔다. 난 그런 아내의 반응 속도에 놀라면서도, 넘어져 울고 있는 아이 보다는 아내가 더 걱정이 되었다. 아이 보호자가 오해를 하기라도 한다면 골치 아플 것이었다.


아내는 아이를 일으켜 상처 부위를 살폈고, 나는 어딘가 있을 아이 보호자부터 찾았다. 그 보호자가 부디 사고 장면을 정확히 목격했기를 바라며. 저 멀리 한 아주머니가 부리나케 달려오셨다. 그런데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아이를 걱정하는 눈빛 반, 우리를 의심하는 눈빛 반이었다. 왜 그렇게 빨리 달려나갔어! 넘어진 아이를 다그치며 킥보드를 챙겨 아이를 홱 데리고 가는데, 우리에게 사고 경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말 바람처럼 사라졌다.


우는 아이를 일으켜 준 아내의 따뜻한 마음에 새삼 감동하면서도 아이가 크게 다친 것도 아닌 것 같으니 그대로 두고 지나가는 편이 여러모로 낫겠다고 생각한 나 자신의 매정함에 사뭇 놀랐다.


오해를 받으면 풀면 되는 것이고, 목격자가 필요하면 주변에 도움을 구하면 되었을 일인데, 토요일 오후 평온한 시간을 방해 받지 않고 싶다는 생각으로 넘어져 우는 아이를 그냥 지나쳐가겠다는 생각을 했다니.


그러나 다시 같은 상황이 되어도 아이의 몸에 손을 대어 직접 일으키는 건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발짝 정도 떨어져서 아이 보호자를 부르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직도 난 그 정도 거리감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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