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속물일까

일타강사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는 주인공 핍이 런던에서 신사로 생활하면서, 부족한 생활을 여유 있는 생활로 바꾸기 위해서 빚을 지기 시작한다. 그리곤 바로 후회한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돈을 썼다. 그리고 지불한 그 돈의 대가로,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고자 마음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밖에 얻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핍의 속물근성을 읽을 수 있다.

핍은 런던에서 다른 신사들의 생활방식을 부러워했고, 그 부러움은 곧 모방으로 이어졌다. 그는 원래 시골 대장장이의 도제로, 신사의 삶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런던에 와서 부유하고 세련된 신사들의 여가 생활을 접하자, 그것이 곧 성공과 가치의 표본처럼 보인다.

핍은 단순히 신사들을 부러워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들의 겉모습을 재현함으로써, 자신도 그 대열에 속한다고 믿는 속물적 심리 구조에 갇혀 있다. 따라서 진짜 교양이나 내면적 품위보다 외적 형식을 먼저 확보하려고 한다.

이러한 속물근성과 맥락이 닿는 고사성어가 있다. 바로 ‘동시효빈’이다. 서시는 월나라의 절세미인으로, 심장병을 앓고 있어, 가끔 가슴을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린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동시는 서시가 인기 있는 비결이 ‘가슴을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라 여긴다. 동시는 밤낮없이 얼굴 찡그리는 것을 연습한다. 과연 동시는 인기를 얻었을까?

나도 이러한 모방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98년 7월에 변리사 시험공부를 시작하면서, 온갖 고시 수기를 읽기 시작한다. 내 눈길을 끈 것은 고시 3관왕 수기였다.

그는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하고,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한다. 다음 해 2월에 1차를 합격하고, 3학년 3월에 2차를 합격한다. 발동이 걸린 그는 그해 9월에 행정고시 1차를 합격한다. 4학년이 돼서는 외무고시 1차 및 2차를 연이어 차석으로 합격한다. 그리고 그해 11월에는 행정고시 2차를 수석으로 합격한다.

고시 3관왕은 꼼꼼하게 합격 수기를 썼다. 나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에 주목한다. 그는 식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고시 공부하는 내내 비빔밥만 먹었다고 자랑한다. 나도 평소 비빔밥을 좋아했다. 바로 이것을 따라 한다.

첫째 날 3끼를 다 비빔밥으로 먹는다. 이틀째 아침, 비빔밥을 시켰는데, 후라이 반숙이 살짝 비릿하다. 일단 입속에 쑤셔 넣는다. 점심 저녁도 다 비빔밥이다. 셋째 날 아침 비빔밥의 후라이 반숙은 전날보다 더 비리다. 빨리 시험을 붙을 욕망으로 참는다. 9끼 연속으로 비빔밥을 먹는다.

넷째 날 아침에도 10끼 연속으로 비빔밥을 주문한다. 후라이 반숙 노른자의 비릿함이 코를 찌른다. 구역질이 나온다. 토하기 일보 직전이다. 나는 오천 원 지폐 한 장을 물컵 아래 넣고는 허겁지겁 식당을 나온다. 절로 탄성이 터진다. “고시 3관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나도 핍처럼, 실력이나 내실은 갖추지 못한 채, 겉모습만 흉내 내다 가랑이만 찢어진다. 본질을 모른 채 형식만 따라 했지만, 그나마 짧은 시간 내에 실패한 것에 위안을 얻는다.

한국 사회는 타인과 비교를 일상화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고려 건국 이후 대규모 내전은 거의 없었다. 이런 역사적 안정성이 가치관의 동일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우리 사회의 가치는 오랜 세월 하나의 강물처럼 흘렀다. 굽이와 물결은 있었지만, 강줄기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강을 벗어나려는 이는 언제나 물살을 거슬러야 했다.

지금 우리는 평범한 것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평범함은 단순히 소박하고 무난한 상태가 아니라, 그 속에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로망을 담고 있다. 즉, 평범함은 로망의 종합 패키지인 것이다.

이 평범함에서 벗어나야지만 속물근성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평범함은 외부 기준으로 설계된 삶의 청사진이다. 달성 여부를 사회적 평균 시선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아무리 성취해도 마음속에는 더 채워야 한다는 결핍감이 남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일단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던, “작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 소확행”을 생각한다.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소확행은 마치 큰 강에서 물 한 모금 떠 마시는 일이다. 강의 폭과 깊이를 재거나, 남이 얼마나 마셨는지를 묻지 않고, 그저 한 모금의 시원함을 음미한다. 그렇게 한 모금씩 마시다 보면, 언젠가는 강의 흐름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내 입술에 닿은 물맛

강은 하릴없이

성공을 향해 흘러간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모두가 강을 건널 때

나는 물가에 앉아 손을 담근다

내 입술에 닿는 한 모금이

목구멍을 지나

폐부로 내려간다

건너지 않아도 좋다

한 모금의 물맛을 아는 동안

나는 강에 휩쓸리지 않는다



위대한 유산:찰스 디킨스 지음/이인규 옮김/민음사/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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