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5
덕성여대 디자인학부 교수인 어린 왕자는 재미있고 재치 있는 언변과 뛰어난 그림 솜씨, 그리고 무엇보다도 젊은 감각으로 그의 강의는 아주 인기가 있었다.
어린 왕자는 소위 말하는 꼰대가 아닌 젊은 학생들과 감각적으로 소통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했으며 그들과 함께했기에 인기가 있었다.
어린 왕자는 여자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니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다고 했다. 늘 젊은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특히 여대는 휴학하는 경우도 없어서 24살이면 다 졸업하고 졸업 후 찾아오는 제자들도 별로 없기 때문에 제자들의 나이 듦을 못 느끼니 자신의 나이 드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았다.
어린 왕자는 덕성여대 시각디자인학과 제자들과 함께 <미국을 알면 영어가 보인다>와 <나란나란 세계사 도란도란 한국사>라는 만화책을 제작하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제자들이 어린 왕자의 책임 제작 하에 팀별로 자료를 수집했고 숱한 작품 회의를 거치면서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렸다. 어린 제자들의 발랄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그림이 돋보이는 이 만화책들은 어린 왕자가 얼마나 제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제자들 중 몇몇은 그림떼라는 그룹을 만들어 어린 왕자의 만화에 채색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니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 같았다.
어린 왕자는 정년퇴직 후, 학교 최초의 석좌교수가 되더니 그것도 모자라 이내 곧 대학 총장이 되었다. 나는 사실 놀랐다. 자유로운 영혼인 어린 왕자가 그런 자리를 맡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왕자가 만화 관련 협회 회장을 맡은 적도 있지만 그것은 주로 돌아가면서 맡는 명예직에 가까웠기에 그렇다 쳐도 대학 총장의 자리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이고 그의 자유를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하는 자리이기에 의외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뻐하고 기대는 아주 컸다. 덕성여대가 창학 100년을 완성해 나가는 중요한 시기에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총장이 취임해서 기뻐했고 특히 덕성의 브랜드 가치 극대화에 되고 학문과 연구 모두에서 창조적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왕자는 총장 취임 후 현안에 대한 답변에 거침이 없었다. 그는 덕성여대의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남녀 차별이 없어진 상황에서 네트워크 구축이 어려운 여대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능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휴마트(humanity+smart) 인재’ 양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식과 정보의 원천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바뀐 탓에 누구나 아는 것은 다 알고, 모르는 것은 다 모르는 시대가 됐다”며 “디지털 시대일수록 인간성과 인문학의 회복이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린 왕자는 인문학 강화를 통해 스마트 기기의 해악을 풀어주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린 왕자는 과거에는 넓은 분야를 조금씩 아는 ‘한 일(一)자형 인재’가 대세였는데, 오늘날에는 자기만의 전공이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갖춘 ‘T자형 인재’가 인기가 있다고 했다. 미래 사회는 두 개의 전공에 대해 융합적인 시각을 갖춘 ‘U자형 인재’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린 왕자는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취업·연애를 포기한 ‘삼포 세대’를 넘어 인간관계와 집까지 포기한 ‘오포 세대’로 불리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과거엔 직업다운 직업이 없고 모든 것이 미개척 분야였지만 그 대신 모든 것이 블루오션이어서, 맨주먹 하나로 자수성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많이 달라졌다며, 사자가 먹이를 잡기 위해 작은 토끼에 올인하듯 젊은이도 자신만의 포인트를 잡아 올인하고 무엇보다 글로벌 마인드를 지니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린 왕자는 교수와 총장 시절 독일 뮌스터대학, 프랑스 파리3대학 등과 국제 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등 역시 <먼나라 이웃나라>의 첫 시작이 유럽 편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한참 전성기 시절의 어린 왕자는 세계 여행 프로그램 방송에서 유럽 지역 전문가로 늘 초빙되어 나오기도 했었다.
어린 왕자는 만화가이자, 세상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이어주는 글로벌 통역가였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이자 학교라는 작은 사회를 경영하는 교육 행정가이기도 했다. 그는 늘 맑은 눈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아름답게 잘 해낼 수 있었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오랜 시간 그가 맺어온 수많은 관계들을 되짚어보면, 어린 왕자가 언젠가 했던 쓸쓸한 혼잣말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