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6
어린 왕자의 <먼나라 이웃나라>가 크게 성공한 작품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판매 부수나 인세와 같은 속물적인 수치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 대한 여러 재미있는 그림이나 짧은 영상들이 유행하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먼나라 이웃나라>에 나타난 오류들이 꽤나 심하게 비판받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에서 길들인 여우에게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했듯이,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서 무언가 특별한 가치를 느꼈기에 그토록 관심을 가졌던 것이리라.
물론 어른들은 그 만화책이 몇 부나 팔렸는지, 인세로 얼마나 받았는지, 무슨 상을 받았는지에 더 큰 관심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치로 정확히 나타낼 수는 없어도 마음 깊이 와 닿는 어떤 특별한 끌림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 왕자가 장미의 가치를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별로 인기가 없거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작품의 오류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다. 요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악성 댓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고. 사랑과 증오는 원래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린 왕자의 작품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그만큼의 비판은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역사에 흥미를 느낀 아이들이 훗날 사학과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았고, 어린 왕자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3대에 걸쳐 읽고 있다는 가족도 있었다. 처음 <먼나라 이웃나라>가 나왔을 때 학생이었던 할머니가 읽은 것을 그의 딸이 읽었고, 다시 그 딸의 딸인 손녀가 함께 읽고 있다고 했다. 어린 왕자가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슬프기도 했지만, 3대에 걸쳐 읽히는 만화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일생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만화를 그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3대에 걸친 인생에까지 영향을 주는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유달리 어린 왕자의 만화에 대한 오류를 찾아내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컸다는 반증일 테니.
그리고 어린 왕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까지도 피드백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개정판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오류에 대해서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책이 그저 그런 수준의 완성도나 대중성을 갖지 못한, 쉽게 타버리는 불쏘시개와 같은 존재였다면, 애초에 이렇게 긴 항목을 할애하여 비판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친구 어린 왕자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때로는 야속하게 느껴져, 어린 왕자를 대신하여 내가 이 장을 빌려 조심스럽게 항변해 보고자 한다.
우선 영국 편 백년전쟁에서 영국이 프랑스를 상대로 초반 승기를 잡은 이유로 석궁의 사용이라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영국은 장궁을 사용하여 석궁을 주로 사용하는 프랑스군을 제압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무기에 대한 잘못된 언급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지적했지만, 솔직히 이 책을 읽었던 나조차 영국이 사용한 무기의 정확한 명칭에 대해서는 사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무기의 혁신을 통해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사실만은 깊이 각인되었다. 어린 왕자가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도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어린 왕자가 중세 시대 무기의 전문가는 아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그가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혁신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는 점일 것이다.
프랑스 편에서는 나폴레옹의 키가 155cm라고 나오는데, 실제로는 168cm였다는 오류 역시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그저 ‘아, 나폴레옹의 키가 작은 편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뿐, 나폴레옹의 정확한 키가 몇 센티미터였는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 왕자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영웅의 인간적인 면모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친구 어린 왕자를 향한 비판의 말씀들은 대개 이러한 식이었다. 때로는 너무나 세밀한 부분에 집중하여, 정작 어린 왕자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더 큰 그림을 놓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나는 어린 왕자가 독일 유학 시절, 자신의 초기 작품들이 일본 만화를 모방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했다는 점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어린 왕자가 살던 별에서는 거의 모든 만화가들이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았고, 그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고, 과감하게 당시의 작품들을 모두 폐기했다. 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들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유럽도, 미국도, 일본도 모두 그러한 모방의 시기를 거쳤다. 나는 그것을 굳이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 또한 어린 왕자가 살던 별 사람들의 삶의 한 단면이었을 테니. 나는 어린 왕자가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절대로 자신의 과거 만화를 다시 꺼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용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사랑의 학교>만을 다시 출간한 것을 보며, 언젠가 그의 유쾌한 상상력이 빛났던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어린 왕자가 가장 억울해하는 것은 아마도 그가 젊은 시절 진보적인 사회주의자였다가, 지금은 보수적인 꼰대가 되어 편향된 지식을 가르친다는 비난일 것이다. 마치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을 떠나 여러 별들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듯이, 그의 생각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해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부분에 있어 어린 왕자를 40년 동안 지켜봐 온 내가 판단하기에, 그는 낡은 보수적인 꼰대도 아니고, 열정적인 진보 사회주의자도 아니다. 굳이 이데올로기라는, 어쩌면 이제는 조금은 낡은 구분을 사용하자면 그는 자유주의자, 리버럴리스트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그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어린 왕자가 처음 유학을 떠났던 그 시절, 그의 별은 아직 가난했고, 평범한 사람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유럽에서 직접 목격한 사회 보장 제도는 어린 왕자의 눈에 그의 별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여겨졌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 또한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그의 별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사회 복지와 민주주의 또한 유럽 못지않은 수준의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그의 눈에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이제 강한 국제 경쟁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쇠퇴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무한한 자유로운 경쟁은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지만, 그렇다고 자유로운 경쟁 자체를 막아버린다면 성장은 멈추게 된다. 어린 왕자는 굳건한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유연하게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오직 한 가지 사고방식에만 갇혀 변화할 줄 모른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이 아직도 다양성이 부족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왼쪽이 아니면 무조건 오른쪽이고, 세상의 모든 색깔이 마치 흑과 백, 오직 두 가지 색깔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프랑스 파리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팔각형의 넓은 대로가 펼쳐진다. 길은 다양하게 뻗어 있고, 가다가 다시 합쳐지기도 하고, 여러 갈래로 나뉘기도 하며,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너무나 획일적인 하나의 길로만 다닌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재미없을까.
어린 왕자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그의 별이, 마치 정의가 패배한 나라처럼 폄훼되는 것을 참기 어려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왕자가 그의 별의 현실에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려는 정치적인 의도라기보다는, 넓은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그의 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고자 하는 의미로 ‘중앙일보’에 <세계사 산책>이라는 만화를 연재하고 책으로 발간했다고 한다. 어린 왕자는 좌파와 우파, 그 모든 이들이 결국 그의 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무튼 나의 친구 어린 왕자는 낡은 사고방식에 갇혀 있지 않고 늘 깨어있는 사람이기에 나는 그가 좋다. 그러기에 이미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어린 왕자가 살고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맹목적인 노예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다룰 줄 알아, 궁극적으로 인간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덩샤오핑이 말했던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모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마치 어린 왕자가 말했던 것처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라는 말처럼, 그의 깊은 속마음 어딘가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는 여정과 같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