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괘와 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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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헌수



무극은 텅 빈 상태를 말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 또는 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지극히 공허한 경지를 일컫는다. 태극은 무극에 모든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씨알하나가 나타난 형국인데 새롭게 생겨났다기보다는 그 작용을 깨닫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씨알은 만물의 근원 중의 근원이고 생성과 소멸의 비밀과 기운을 담고 있는 핵심이다. 그러나 뜻과 의지만 있을 뿐 현상적으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은 담담한 상태이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무극과 다를 바 없다.


태극에서 양과음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하늘과 땅이고 이어서 소양과 소음이 생겨나는 데 이것은 해와 달이다. 음과 양은 서로 마주치고 섞이면서 증폭과 수축을 끊임없이 이어가는데 대표적인 현상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며 밤과 낮이다.

태양, 태음, 소양, 소음 네 가지 형상은 제각각 음양으로 다시 분리되는데 이렇게 분화된 여덟 가지가 팔괘이다. 기본 사괘에 추가된 새로운 사괘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변화와 지상에 펼쳐진 형상의 성격을 설명해주고 있다.

세상 만물이 소생, 번성, 쇠퇴, 소멸의 주기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는 해와 달의 운행에서 제일 큰 힘을 받으며 그다음으로는 대지의 본성과 비, 바람 등 하늘의 작용에서 영향을 받는다.


복희는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연의 법칙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여덟까지 요소와 요건을 찾아내 음과 양으로 각각의 성격을 규정하였다. 그리고 각자의 성질에 맞게 여덟 방향으로 배치하고 음은 음끼리 결합하고 양은 양끼리 상호작용하며 음과 양의 무리는 서로 맞물리면서 돌고 도는 모습을 그려냈는데 이것이 복희 팔괘이다.

복희 팔괘의 위대함은 글씨가 자리잡지 못했던 시절에 그림으로 그리기도 어려운 사물의 모양을 음과 양의 막대기로 표현하였고, 더 나아가 사물의 품성까지 나타나게 했다는 점이다. 복희팔괘는 훗날 문자가 탄생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복희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창안하여 주민들의 삶에 도움을 주었는데 간단한 기호를 막대에 표시하여 약속을 정하는 법과 남녀가 만나서 결합하는 혼인법을 제정하여 한 쌍의 부부가 변함없이 살게 하였다.

거미줄 모양을 본떠서 어망을 만들어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었고 새 그물로 새를 잡는 법도 알려주었다. 소와 양 돼지 등을 키우는 목축 방법과 이들을 제물로 바쳐서 조상님과 하늘에 제사 지내는 법도를 알려주었다.

복희의 하늘을 꿰뚫는 지혜와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덕성은 사방천지로 소문이 나서 주변으로 몰려와 같이 살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복희는 하수 남쪽의 비옥한 땅에 넓게 터전을 마련하고 사람들을 모여 살게 하였다. 사람들은 이 땅을 진의 땅 또는 진국이라 불렀고 복희를 하늘처럼 받들고 어버이처럼 믿고 따르면서 서로 다투지 않고 협동하는 도덕과 양심이 살아 있고 예의와 범절이 확고한 군자들이 모여사는 사회를 만들었다. 이곳이야 말로 환인천제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철학인 재세이화 홍익인간의 이념이 바르게 실현된 이상적인 사회였다.

이때는 배달국 제5대 태우의 천왕님이 재위하던 시기인데 천왕님은 복희의 애민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태호라는 시호를 내리시고 거북 등에 하도를 새겨 하사하시어 팔괘와 짝을 이루게 하셨다.

하도는 음과 양의 열 가지 수를 바둑돌처럼 흑과 백으로 동서남북과 중앙에 배치하여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떻게 상호화합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도표이다. 양의 기운은 백점의 배치처럼 안으로 휘감아 들어가고 음의 기운은 흑점을 따라 밖으로 돌아 나오는 형상을 좌표에 점을 찍어 무극에서 태극이 탄생하는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었다.

하수에 살던 청룡이 천마가 되어 승천할 때 천마의 등에 반점의 형태로 하도가 새겨져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하도의 신비함을 돋보이게 하려고 지어낸 것으로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하도는 우연히 얻어진 신의 선물 같은 것이 아니라 아주 높은 정신세계를 통해서 얻어진 진리를 천재적인 표현 방법으로 풀어낸 인류문명 고유의 뛰어난 창조물이다. 신비함을 돋보이게 하려고 인간의 눈부신 업적이 가려진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도는 뒤이어 고안된 낙서와 더불어 우주변화의 원리를 수학의 수리로 풀어낸 양대 기둥인데 이들의 기록과 자료가 보관된 장소를 도서관이라 부르고 있다.


복희의 성씨는 풍씨인데, 약 150년간 재위하면서 진국을 다스렸다. 여와의 사이에서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름은 청간, 주간, 백목, 흑간이다. 사형제는 동서남북 사방 각지로 퍼져 나가서 풍씨 자손을 퍼뜨리고 복희 문화를 널리 전파하였다. 청구국의 영역은 크게 확대되었고 복희는 문명의 시조로 추앙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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