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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의 가을단풍은 유난히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기암괴석들은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새색시처럼 아리따운 자태로 아침햇살을 맞이하고 새빨간 단풍은 이산 저산을 불태우고 옅은 안개와 운무가 열기를 달래주듯이 소리없이 부드럽게 피어오른다.
빨강, 노랑, 주황색의 단풍잎은 깊고 울창한 계곡을 가득 채우고 그 빛이 내려앉은 계곡들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알록달록하게 일렁이며 매끈한 바위들을 옆에 끼고 노래하며 흐른다.
한줄기 폭포수는 파란 하늘과 흰구름을 가득 담아서 울긋불긋한 단풍산 사이를 흰빛으로 가르며 비단천을 떨구어 놓은 듯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린다. 맑은 호수에 비친 건너편 단풍산는 자줏빛으로 물속에 빠져있고 수면에 투영되는 아기단풍의 진홍색 물그림자는 실제보다 더욱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발귀리는 풍산의 아름다운 단풍색에 취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뇌택에 다다르게 되었다. 뇌택은 아무도 가본 적이 없다는 전설 속의 연못인데 말하자면 이상향 같은 곳이다. 항상 안개에 덮여 있어서 크기를 알 수 없고 물이 너무 맑아서 깊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고 물 위에서 노니는 새들은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물가에 핀 꽃들은 영원히 시들지 아니하고 은은한 꽃 향기는 천일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나무 가지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달콤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데 절대로 떨어지거나 썩지 않는다. 호숫가 호젓한 숲 속에는 천년동안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는데 그 물맛은 감로수이지만 많이 마시면 깊은 잠에 빠지게 되어 깨어나지 못하는 독성이 있었다.
발귀리는 갈증을 참지 못하고 우물물을 마시게 되었고 물의 독성에 취해서 숲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깊은 수면에 빠져들게 되었다. 다음날 화서의 젊은 처자가 호숫가를 산책하다 우물가에 널려있는 어지러운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따라가 보았다. 짐작한 대로 흰옷과 흰 망건을 쓴 키가 훤칠한 도인 풍모의 사람이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여인은 혼수상태인 사람을 황급히 화서족들이 모여사는 마을로 데리고 가서 해독제를 처방하여 치료받을 수 있게 하였다.
화서족은 환국땅에서 배달국으로 이주해 온 약초마을 사람들의 후예인데 초기에 이들은 약초를 수집하여 병을 치료하는 활인구제 사업을 주로 하였으나, 훗날 그들 중 일부가 고향땅에 있던 삼신산과 토양과 지형이 유사한 풍산으로 옮겨와 정착하여 살게 되었고 이들을 화서족이라 일컫게 되었다.
겨울 내내 극진한 치료를 받은 발귀리는 건강을 회복하고 따뜻한 봄이 찾아오자 풍산을 떠나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그 사건이 있은 후 화서의 딸은 임신을 하였고 사내아이를 출산하였는데 그 아이의 이름은 복희이다. 복희는 밝히, 밝이, 밝해 등으로 불리었는데 이는 밝음과 해를 의미하는 말이고 발귀리는 밝은이, 밝히리, 밝음 등의 뜻이 있는데, 두 사람의 이름은 밝음이라는 명제로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름의 비슷한 점 때문에 두 사람은 같은 인물이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전해 내려온 것뿐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시대적인 차이를 고려해 볼 때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되고, 복희가 발귀리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정설이고 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복희는 명유선사의 태극과 천지인 사상을 깨쳐 익히고 발귀리 선인의 음양오행 법칙을 뼛속 깊이 이해하여 우주창조와 운행의 원리인 태극팔괘를 고안하였다. 괘는 양효와 음효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는데 양효는 온전한 막대모양으로 표시하고 음효는 중간이 끊어진 막대모양으로 표현하였다.
팔괘는 일건천, 이태택, 삼리화, 사진뇌,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의 여덟 가지로 이루어졌다. 건(☰)과 곤(☷)은 하늘과 땅을 뜻하는데 상하로 배치하고, 이(☲)와 감(☵)은 해와 달 또는 불과 물을 뜻하는데 좌우에 배치하였다. 태(☱)와 진(☳)은 연못과 벼락을 뜻하는데 좌측에 상하로 각각 배열하였다. 손(☴)과 간(☶)은 바람과 산을 표현하는데 우측 상하 방향에 배치하였다.
건곤 이감은 우주사괘라고 분류하는데 각괘가 뜻하고 있는 사물의 본성에 맞추어 남북동서 사방으로 벌려 놓았다. 그리고 지리사괘인 태진손간은 물체의 현상과 형태가 지니고 있는 음양의 구성에 따라 우주사괘의 사이사이에 대각선 모양을 이루게 그려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