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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는 은하수가 은실로 자수를 놓은 듯 반짝이며 흘러가고 있었고 영롱한 달빛은 잔잔한 호수 위에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새들도 풀벌레도 모두 잠든 고요한 호수는 물 위에 비친 둥근달 만이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려오더니 통나무배 한 척이 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어여쁜 소녀가 타고 있었는데 이름은 황아이고 신농국의 공주이다. 그녀는 선궁에 거쳐하며 밤에는 베를 짜고 낮에는 뗏목을 타고 놀았다고 한다.
평소와 다르게 황아는 밤하늘 은하수의 황홀함에 이끌려 야심한 밤에 배를 타고 호수에 나오게 되었다. 호수는 큰 바다로 연결되었는데 황아는 은하수를 따라가다 어느 바닷가의 커다란 뽕나무 아래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용모가 뛰어난 신동을 만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노래를 부르며 즐거움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잊었다. 신동은 자신을 백제의 아들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 후에 황아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소호이다. 소호는 훗날 주선 씨 또는 금천 씨라 불리게 된다. 주선은 숙신의 다른 이름이다. 직신 또는 주신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배달국의 동쪽에 있는 제후국이다. 원래 활과 화살을 잘 다루던 부족인데, 수암지방의 옥돌을 바닷길로 운반하면서 청양땅으로 이동하였다.
백은 박 또는 밝과 같은 말인데 백제는 동쪽 땅을 다스리는 왕이라서 주선국의 임금을 지칭하는 것이다. 소호는 배달국 동쪽에 위치한 숙신국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았고 서쪽에 자리 잡은 신농국과는 모계로 혈연이 연결되어 백제와 염제 공동 후손으로서 양대가문의 정통성을 모두 이어받게 되었다.
소호의 어린 시절 이름은 지인데 지의 의미에는 꼭대기 나뭇가지라는 뜻도 있다. 지는 어려서부터 높은 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즐겨하였는데 새처럼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내려오지 않고 잠도 자며 놀았다. 많은 새들이 지의 둥지 주변에 모여들어서 지의 어깨와 머리 위에서 떠나지 않고 같이 놀았다. 새들은 먼 나라 이곳저곳의 소식을 지에게 전해주는 듯이 노래했고 지는 새들의 지저귐을 알아듣는 것처럼 화답하고 이루 만져 주었다. 지는 마치 새들의 어머니 같았고 새 왕국의 임금 같이 보였다.
소호는 왕위에 오른 후에 검은 까마귀인 현조를 숭배 대상으로 삼았는데 까마귀는 숙신족 사람들이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영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신시로 이주하기 이전부터 숭배해 온 성스러운 대상이었다.
한편 소호는 즉위할 때 봉황이 날아 들어와서 크게 기뻐하였으며 그 후로부터 봉황을 신성하게 여기고 국조로 받들었다. 이로 인해 소호를 봉조 씨라 부르기도 한다. 소호국은 20여 개의 크고 작은 부족국가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새 이름으로 불렸다. 봉조 씨, 현조 씨, 백조씨, 청조 씨, 단조씨 등등이 있었는데 봉조 씨의 지위가 가장 높았고 중심이었다.
소호는 태호 복희의 법도와 규범을 그대로 이어받았는데 관직명은 마가, 우가, 구가와 같은 오가의 이름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새 이름인 응(매), 취(수리) 등으로 불렀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복희 씨의 후손으로 대대로 이어 소호국에 살게 되었는데 법도가 어긋나지 않아서 생활에 불편함이 전혀 없었고, 관리들은 생업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문물을 전파하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게 하였다. 이렇게 태호의 뒤를 이어 국가를 잘 다스렸다 하여 백성들은 소호라 칭송하며 존경하고 따랐다.
소호는 금의 기운을 갖추고 금의 덕성으로 세상을 다스렸다 하여 금천 씨라 불렸다. 소호는 천손의 후예답게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정성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천제를 지낼 때 제천금인상을 만들어 모시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 제천금인은 청동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인데. 금인은 불의 힘을 가진 태양신의 자손이나 후예를 상징하는 것이다.
금인의 크기는 사람의 키보다 훨씬 컸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남아있지는 않고 소호의 아들 요수가 서쪽으로 진출할 때 가져갔다고 한다. 훗날 요수의 후손들이 세운 유목민의 나라 선우국에서 제천행사를 벌일 때마다 제천금인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 경배하였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소호국에게 신농국은 입술과 같은 존재이다. 순망치한이라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신농국이 무너지면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있는 소호국도 위태로워질 수 있고 안정적인 생활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제일 큰 문제는 옥돌과 옥기의 공급이었다. 수암의 옥돌은 소호에서 가공되어 신농국으로 들어가는데 이 공급선이 끊기게 된다면 소호국 사람들의 경제에 큰 타격이 올 수밖에 없었다. 옥기는 고가이고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물품이었다. 또한 옥기와 더불어 곡물이나 직물 등이 이동할 수 있어서 옥기의 유통망은 소호국에게 핏줄과 같은 것이었다.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소금 생산이었다. 신농국의 남쪽에는 소금호수가 있는데 이곳에서 나오는 소금은 질이 좋고 깨끗해서 신농국은 물론 소호국에서도 널리 애용되고 있었다. 신농국이 소금생산의 통제권을 빼앗기게 된다면 소호국에도 소금 공급이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소금은 건강한 식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소금 확보에 대한 경각심과 경계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현재의 상황은 예견된 미래를 보여주고 있었다. 소금호수는 이방인들에게 점령되어 통제권을 상실하였고 신농국을 거쳐 서방으로 통하는 모든 교역로도 이방인들이 차지하게 되어 옥기를 비롯한 생활필수품의 이동이 중단되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삶의 터전을 잃은 신농국의 유민들이 철새처럼 고향을 찾아 소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쟁은 나라의 중요한 문제이다. 존립과 패망의 갈림길이니 신중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의 분노와 복수심으로 백성들을 사지로 내몰아서는 안되고 철저히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판단하여야 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병법이지만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철저히 상대를 분석하고 비교하여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마냥 한가로움을 즐기는 소호이지만 지금의 현실은 용감무쌍하게 일어나서 물리쳐야 할 다급한 상황이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찾는 일은 한가한 탁상공론일 뿐이고 속전속결만이 해답이었다. 이제 소호에게 필요한 무기는 임전무퇴의 정신과 백전백승의 전략이었다.
소호국의 중심세력인 봉조 씨는 주선 씨의 후예들로서 뛰어난 활솜씨를 가지고 있으나 공격부대의 선봉이 되어 적진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해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소호는 다른 부족들의 숨은 전투 역량을 모두 집결하기 위하여 현조 씨, 백조씨, 청조 씨, 단조씨등 여러 부족들의 대표들을 불러 모았다.
까마귀로 상징되는 현조 씨는 불을 잘 다루는 축융족의 후손들이다. 검은 옷을 즐겨 입고 살았으며 화로와 아궁이를 잘 이용하여 높은 열을 발생하게 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구리나 주석 같은 금속을 녹여서 농기구와 생활용품, 장신구들을 만들고 더 나아가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들도 생산하였다.
현조 씨의 수장이름은 한류인데 간류 또는 주류로 불리기도 했다. 그 의미는 활을 잘 쏘는 전사라는 뜻이었다. 한류의 아버지는 창인데 창은 신농의 딸 황아와 백제의 아들 신동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고 첫째는 휴인데 잘 알다시피 휴는 소호의 알려진 이름이다.
백제는 주선국의 임금인데 그의 오래된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제민이 있고 제민은 제홍과 제곡으로 이어지고 그리고 여러 대 후에 백제로 이어진다. 백제는 휴와 창을 손자로 두었는데 휴는 소호가 되었고 창의 아들인 한류는 역사적으로 대단한 역할을 하게 된다.
구망은 소호의 첫째 아들인데 봉조 씨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여 태어난 아들이다. 해가 뜨는 자리와 시기를 관찰하여 씨를 뿌리는 시기와 농작물을 심는 시기를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맡아하였다. 햇볕의 양을 관찰하는 농사법은 태호복희 이래로 발전하여 왔는데, 특히 구망의 법칙이 실용적이어서 배달국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고 이 공로를 높이 평가한 천왕님께서는 운사의 직함을 내려주셨다.
소호는 구망을 천왕님께 보내기로 결정했다. 전쟁을 피할 수 없음을 알리고 도움을 얻기 위해서이다. 신시배달국의 크고 작은 나라들은 천왕님의 신정체제를 정점으로 묶여 있는 정치적 공동체였고 또한 경제적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상호 의존적 협력 관계였다. 어느 한 부분이 무너지면 전체가 연속적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는 비석 쌓기 놀이와 같은 형국이었다.
홍익인간 재세이화는 환웅천왕님의 개천 이래로 신시배달국의 통치이념이었다. 천손사상에 바탕을 두고 선도수행을 방편으로 삼아서 만민을 하늘처럼 섬기는 경천애민의 철학으로 세상이 다스려져왔다. 그러나 이민족들은 근본 없이 거칠고 그들이 모시는 신들의 모습은 기이하고 호전적이어서 배달국의 앞날에 걸림돌이 되고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경계의 대상이었다.
천왕님께서는 구망을 데리고 천제단에 오르셨다. 칼날 같은 흰구름이 높은 하늘을 찌르듯이 날카롭게 줄지어 있었다. 마치 천왕님의 마음가짐과 결심을 보여주는 듯한 차가움이 서려 있었다.
풍백과 우사는 제단을 마련하였는데 제단의 양쪽에는 검은색과 붉은색의 둑기가 서 있었다. 둑기는 천으로 만든 다른 깃발과 달리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 형상이었는데, 높은 솟대 끝 부분에 함지박을 거꾸로 매단 모양새였다. 동물의 긴털이나 굵은 실을 꼬아서 긴 술을 만들어 늘어뜨려 놓았는데, 머리카락을 땋아 놓은 듯이 가지런하고 능수버들 가지처럼 찰랑거렸다.
둑기는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천제단에 만들어 세워놓고 하늘에 제를 올리는 행사를 치를 때 사용되었다. 만들기가 까다롭고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둑기를 마련하여 천제를 올린다는 것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나라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성공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천왕님은 천제단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 숙이며 사람의 절실한 바람이 하늘로 통하기를 기원하였고 무릎 꿇고 술잔을 높이 받쳐 올리며 하늘의 뜻이 사람의 뜻과 서로 상통하여 하나 되기를 염원하였고, 일어나서 크게 세 번 절하며 사람이 지극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되었다.
눈부신 햇살이 천왕님의 동안을 밝게 비추었다. 근엄한 표정 뒤에는 확고한 신념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으며 굳게 다문 입술은 불굴의 의지를 단호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먼 곳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분이 바로 신시배달국을 나와서 청구국을 세우신 자오지 천왕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