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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땅 북쪽 언덕에는 거대한 뽕나무인 웅상이라는 나무가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무려 일만 장이나 되었는데 꽃과 가지는 무성했고 그 잎은 붉은색을 띠었으며 열매는 자주 빛을 품고 있었다. 웅상에서 열리는 열매는 천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이걸 먹으면 장수했다고 한다. 또한 성제가 나타날 때가 되면 이 나무에 껍질이 생겨나는데 이 껍질로 만백성이 옷을 해 입을 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신비의 뽕나무가 있던 언덕을 궁상이라 하는데 지금은 소호의 땅이지만 훗날 이 부근 넓은 지역을 모두 통틀어 청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천왕님께서는 풍백과 우사를 거느리고 궁상땅으로 내려오셨다. 소호는 구망을 데리고 국경 끝까지 나아가 모든 예를 다해 정중하게 맞이하였다.
천왕님 일행이 안개 낀 새벽 언덕을 넘어오는 모습은 마치 천군이 하늘에서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듯이 장엄하였다. 두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마차 위에는 천왕님께서 금빛 황포를 입으시고, 금관을 머리에 쓰시고 앉아 계셨고 하늘색 도포를 입은 풍백과 우사는 백마를 타고 천왕님을 좌우에서 보좌하였다.
마가를 비롯한 오가들은 붉은색 말을 타고 각자를 상징하는 청색, 백색, 적색, 황색, 흑색의 깃발을 휘날리며 뒤따르고 있었고 뇌공, 고시, 팽우, 신지 등등의 현자들도 우람한 체구의 누런 황소가 끄는 크고 둥근 자주색 일산으로 치장한 수레를 타고 천천히 행렬을 따라서 앞으로 나갔다. 갑옷과 투구를 쓴 호위무사들은 창과 방패로 무장하고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서 행렬을 호위하고 있었다.
신비한 궁상나무 언덕 아래에 본진을 설치한 천왕님께서는 구망을 운사로 임명하고 우군을 맡아 후방지원을 담당하게 하시었고, 한류를 불러 치우의 역할을 맡기고 좌군을 이끌고 전투의 선봉에 서게 하였다.
치우는 원래 신지나 고시와 같은 관직 이름이다. 치우다, 해치우다, 물리치다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외부의 침입에 맞서서 싸워 물리치는 역할을 수행하는 직책이었다. 배달국 초기에는 치우라는 직책도 없었고 치안유지 정도의 무력만 있으면 충분하였기에 그 역할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외부와의 다툼이 빈번히 일어나서 치우라는 관직을 제도화하게 되었으나 한 동안 주목할 만한 큰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치우라는 이름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라가 위태로운 중대한 시국에 치우의 중차대한 소임을 맡게 된 한류의 경우는 예전과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우선 배달국의 모든 나라가 가진 역량을 총결집하여 싸우는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치우는 천왕님 다음 가는 위상이었고 게다가 한류 개인의 능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람됨이나 풍모가 특출하였기 때문이었다.
천왕님으로부터 장군깃발과 대장수인을 하사 받으러 나와서 넙죽 절하는 한류의 모습은 무시무시했다. 양쪽 이마는 툭 불거져 나와 마치 뿔이 달린 듯이 보였고 눈은 휘둥그레 왕방울 만했으며 입술사이로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 보였다. 키는 구척장신인데 어깨는 사자처럼 강건했고, 허리는 곰처럼 든든했다. 마치 거대한 두꺼비 한 마리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어서 근엄한 천왕님도 다소 놀란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였다.
이때부터 치우의 형상은 도깨비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한류라는 이름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뒤로 숨어버리고 치우가 본명처럼 사용되었다.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는 치우는 백전백승의 전사로서 후배 장수들에게 전쟁의 신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나라의 큰 전쟁이 있을 때마다 치우의 둑기를 걸어놓고 둑제를 지내며 승리를 기원하는 전통이 이어져 내려왔다. 또한 치우는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 속에서 때로는 무섭지만 익살스럽고 사람들에게 복을 베풀어 주는 도깨비로 등장하며 일반인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치우의 본거지는 대황의 모퉁이에 있는 흉려토구라고 전해오는데, 토구는 산을 뜻하고 흉은 그저 거칠다는 표현이라서 커다란 벌판에 서있는 여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치우를 여산씨 또는 여씨라고 부르고 이 일대에 흩어져 살던 치우의 부족들을 여족 또는 구려족이라 부르게 되었다. 구려족들은 소호국에서 부족들을 새 이름으로 호칭하는 관습에 따라 현조 씨라 불리었는데 이에 따라 치우는 현조 씨 또는 현도 씨라고도 불리었다.
치우는 자오지 천왕님의 하명하심에 따라서 집을 짓고 성벽을 쌓고 진지를 구축하였다. 갈로산의 쇳물을 가져다가 과, 모, 극, 추모, 이모 등의 다섯 가지 병장기를 만들었고 청동으로 된 투구와 방패를 제작하여 장수들을 빈틈없이 무장하게 하였다.
치우에게는 81명의 형제와 72명의 부하가 있었는데 각자 나름대로의 괴력을 지닌 천하장사들이었고 또한 모두 불을 잘 다루는 대장장이들이었기 때문에 각자의 힘과 기량에 알맞은 무기와 투구를 제작하여 무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