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두 세력이 치열하게 맞붙은 전쟁이 막을 내리고 전쟁의 영웅들이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 후 100여 년 동안 세상은 조용하고 평화로웠지만 후예들이 등장하여 분주하게 새로운 세계와 질서를 만들어 나갔다.
건황은 치우의 맏아들인데 헌원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건황은 국경에 머물면서 외적들의 침입을 경계하라는 소임을 맡게 되었고 소호는 그에게 제후의 지위를 부여하고 고양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고양은 탁록천 하류 부근에 펼쳐있는 요충지로 지난 전쟁 때 헌원의 군사들이 주둔하면서 싸울 힘을 비축하여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던 곳이다.
건황은 든든한 무력을 바탕으로 국경을 열고 교역로를 다시 개통하였다. 교역활동은 전쟁 이전 보다 더 안정되고 활발해져서 주민들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다.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랐으며 심지어 동물들도 그를 만나면 꼬리를 살살 흔들고 나무도 가지를 설레며 반겨주었다는 과장된 이야기까지 전해온다.
건황은 백성들의 신망과 사랑 덕분에 소호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았는데 그가 바로 전욱고양이다. 전욱은 어린 시절 소호가 동해바다 바깥에 새들의 왕국을 세울 무렵에 그곳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소호를 도와 국정을 돌봤다고 한다. 이때 전욱의 나이는 10살쯤이었다고 하는데, 그의 고결한 인품은 이 즈음 형성되었고, 고요하고 그윽하며 항상 심모를 갖추고 있었다고 평가되었다.
전욱은 물질적 생활을 안정되게 한 것뿐 아니라 높은 정신세계 구축에 크게 이바지했다. 남과 여를 구분하고 혼인제도를 확립하여 아름답고 선량한 풍습을 이어 나갈 수 있게 하였고, 신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를 명확하게 하여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늘을 숭배하는 마음을 잃지 않게 하였다. 전욱은 앞선 성왕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천하를 잘 다스려서 명군으로 이름을 높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예와 맥은 치우의 아들들인데 탁록전투에 아버지를 보호하는 호위무사로 참전하였다. 부전자전이라는 말 그대로 용맹한 두 아들은 헌신적으로 아버지를 보호하고 힘써 싸워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전쟁이 끝난 후 예와 맥은 아버지와 함께 고향 땅 여산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전쟁에서 기른 힘을 바탕으로 주변의 아홉 나라를 통일하여 구려국을 건설하였다. 구려국은 처음에는 치우의 81명 형제들이 다스리던 나라의 연합체였으나 예와 맥이 대를 이으면서 동서남북으로 크게 확장하여 북쪽의 유릉과 대황 그리고 서쪽의 유사지방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예와 맥의 후손들은 예족, 맥족 또는 예맥족이라 불렸는데, 맥족은 주로 구려국의 중심부에 거주하였고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배달국의 환족과 협력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 예족은 맥족과 함께 움직였으나 일부는 북쪽 초원지대로 들어가서 초원의 길을 따라 서쪽 먼 땅까지 이동하였고 또 다른 부류는 북동쪽으로 흐르는 검은 강을 따라 동쪽 넓은 들판까지 진출하였다.
묘와 담은 치우의 딸들이다. 이매, 망량 등 요괴의 모습으로 헌원의 군사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든 장본인 들인데 도주하는 헌원을 뒤쫓아 남쪽 국경까지 내려왔다. 치우 비의 죽음으로 더 이상의 추격을 멈추고 소금성으로 들어가 머물게 되었다. 이들은 소금성과 소금호수 부근에 터를 잡고 정착하였는데 담은 소호의 후손들과 함께 담국을 건국하였고, 묘는 맑은 물을 건너 더 남쪽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은 묘의 후손들을 묘족이라고 불렸다.
헌원은 현호를 낳고 현호는 교극을 낳고 교극은 고신을 낳았다. 현호와 교극은 제위에 오르지 못하고 고신에 이르러 제위에 올랐다. 고신땅에서 성장하였고 이름은 준이고 호가 곡이라서 제곡고신이라 불리었다. 어려서부터 지혜롭고 총명하였고 성장해서는 고결하고 위엄이 있었다. 제위에 오른 뒤에는 자비와 신의로 세상을 잘 다스렸다.
할아버지 헌원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도교사상을 발전시켜 백성들을 교화하였고, 해와 달의 운행에 따른 역법을 만들어서 생활과 문화의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였다. 씨족마다 특이한 신들을 모시고 있었으나 헌원을 정점으로 하는 조상신들을 공경하고 제사 지내게 함으로써 백성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 주었다. 이때부터 화화족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되었고 배달족과는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사뭇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구망은 소호의 맏아들인데 운사의 소임을 맡아 자오지 천왕을 보좌하며 탁록전쟁에 참여했다. 천문을 읽고 날씨를 예측하여 치우의 군사들이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었다. 운무를 일으켜 치우의 도술로 보이게 한 것도 구망의 작품이었다.
구망은 복희의 팔괘원리와 음양이치를 이해하고 파악했으며 꾸준한 선도수련을 통하여 천지인의 법도를 깨달은 현자였다. 전임 자오지 천왕의 후대가 없자 소호의 아들이자 운사였던 구망이 제위를 이어받았는데, 이 분이 치액특 천왕님이시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놓쳐버린 질서를 다잡아주고 백성들이 평화롭게 일상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모든 제후국들을 통치하였다
전쟁무기 대신 농기구를 제작하게 하여 농작물 생산이 크게 늘어나게 하였고 지역 간 교류를 원활하게 하여 물자가 풍부해지게 했다. 나라 안팎으로 아무런 걱정이 없는 말 그대로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제후국들은 넘치는 국력을 바탕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가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고 소국들을 건국하여 청구국의 영역이 크게 확장되었고 후손들도 점점 번성하여 청구국은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