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백, 우사, 운사

1-03

by 임헌수



환인님과 작별하고 천제궁을 나선 환웅님은 환인님의 당부에 따라 풍백, 우사, 운사를 만나서 이주계획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하사 받은 천부인은 가슴에 깊숙이 품고 청동거울은 목에 걸고 청동방울은 허리춤에 차고 청동검은 긴 자루에 꽂아 손에 든 환웅님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제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환웅님은 먼저 우사를 만나 보기로 했다. 우사는 백성들이 많이 살고 있는 물가에 거처하고 있었고 예전에 여러 번 환웅님을 도와서 물막이 작업을 함께 했던 경험이 있어서 서로 잘 아는 사이이다. 그는 주로 목책을 치고 흙과 돌을 이용하여 토성을 쌓아 물을 관리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는데 아무도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물의 흐름을 잘 살펴서 흐를 물은 흐르게 하고 멈출 물은 막아서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게 했다. 산의 언덕과 자연 구릉에 기대고 땅의 높고 낮음을 이용하여 뚝을 쌓고 물을 가두어 가뭄에도 물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우사의 물관리 사업은 오랜 기간 동안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큰 비에도 거뜬했고 크고 작은 홍수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고했다.

우사는 환웅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깊게 허리 숙여 예를 표한 후 집안으로 모셔 들어와 마주 앉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사의 방은 여러 가지 씨앗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식물의 뿌리와 열매가 이 그릇 저 그릇에 가득 담겨 있었다.

자나 깨나 백성들을 위하여 새로운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우사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우사는 특별히 콩 재배에 관심이 많았는데, 야생콩 씨앗들을 여러 해 동안 실험 재배를 거쳐서 거친 지형과 가뭄에도 잘 자라는 서너 가지 품종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우사의 인간됨과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마음을 잘 알고 있는 환웅님은 이번 계획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우사라는 확신을 갖고 같이 동행하자고 간곡하게 부탁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환웅님은 환인님을 알현한 이야기와 북쪽바다 너머에 유리한 땅이 있다는 정보와 이 땅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소상하게 설명하셨다.

우사는 남은 사람들의 지금과 다름없는 안정된 앞날을 걱정했고 떠나는 사람들의 험난한 여정과 고된 정착생활에 대한 우려도 예견했다. 아울러 두 집단이 형과 아우처럼 서로 협력하고 도우면서 공동번영을 이룩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환웅님은 우사의 자비로운 마음씨에 감동하시고 칭송의 말씀을 하셨고 우사는 환웅님의 용감한 결단에 존경심을 표현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흔들리지 말고 힘을 합쳐서 헤쳐나가자는 결의를 다지며 눈물을 흘렸다.

풍백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바람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고 있는데 마침 높새바람이 부는 봄철에 머무는 거처를 우사가 알고 있다 하여 두 사람이 같이 방문해 보기로 했다. 우사는 풍백과 형제처럼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었는데, 요즈음 만나 본 지도 오래되고 안부도 궁금해서 환웅님을 모시고 함께 길을 떠나기로 하였고 환웅님도 믿음직한 조력자와 길동무하는 것이 든든하고 안심이 되셨다.

풍백이 사는 곳은 사통팔달 막힘이 없는 바람 부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입구에는 여러 개의 높은 솟대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언덕 위에는 다섯 가지 색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언덕 위에는 돌로 쌓은 제단이 있는데 기도를 드리거나 치성을 올린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밤에 풍백이 머무는 토굴을 다녀온 우사도 잠자고 나간 자취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마 봄철에 머무는 거처에서 아직 이곳으로 옮겨오지 않은 것 같았다.

풍백은 바람이 불어오는 원점으로 옮겨 다니며 바람의 세기와 방향, 날짜와 기간 등을 관찰하고 실생활에 미치는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연구하여 왔는데 겨울철에는 된바람이 부는 북쪽에서 살았고 봄철에는 하늬바람이 불어오는 서쪽에서 지냈으며 여름에는 마파람이 올라오는 남쪽지방으로 내려갔고 가을에는 샛바람이 들어오는 동쪽으로 옮겨와 살았다.

풍백은 옮겨 다니는 장소마다 주변의 돌을 모아서 제단을 쌓았는데. 아랫단은 둥글게 윗단은 네모나게 하거나 바깥은 원형으로 안쪽은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둥근 모양은 하늘을 뜻하고 네모난 것은 땅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하늘은 시작을 알 수 없고 끝도 어딘지 모른다. 또한 본성은 원만하고 부족함이 없어서 원형의 이념과 일맥상통한다. 땅을 네모로 형상화하는 이유는 경계가 분명하고 동서남북 방위가 확실하다는 점에서다. 또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정직함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질서를 어기지 않는 반듯함은 사각형의 모습이 분명하다.

환웅님이 제단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있을 때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고 언덕 건너 저편에 흰 옷을 입은 사람이 홀연히 나타났다. 바람에 실려 오는 듯이 사뿐사뿐 언덕을 넘어 눈 깜빡할 사이에 환웅님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풍백은 환웅님을 알아보고 깊이 허리를 숙여 알현한 다음 우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우사가 나서서 풍백을 찾아오게 된 경위를 자세히 알려주었고 이어서 환웅님께서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치밀한 준비과정과 실수 없는 실행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막중한 임무를 풍백이 맡아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셨다. 풍백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겠다는 각오를 엄숙하게 밝혀 환웅님의 청탁에 화답하였다.

낯선 땅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이 지극히 험난한 과정임을 잘 알고 있는 풍백은 풍요로운 나라에서 어려움 없이 살아온 순한 백성들이 넘어야 할 고통과 역경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시련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늘과 사람을 연결하는 풍백의 역할은 더욱 냉정하고 엄격해야 되는데 앞으로 다가올 현실 앞에 잠시 목이 메었다.

풍백은 오랫동안 제단을 만들고 정성을 들여오면서 하늘의 이치와 섭리를 이해하고 땅의 질서를 파악하여 그 큰 뜻을 사람들에게 설교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이 욕심내지 않고 서로 믿고 의지하는 자비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풍백은 사람이 꾸미는 일을 하늘에 고하고 판단을 구하여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해주었다. 설령 이를 수 없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하늘을 원망하거나 거역하지 않고 사람이 할 도리를 다 해야 하며 하늘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인도하였다.

풍백은 사람이 하는 일은 길흉이 상반되지만 하늘의 뜻에 따르면 실패를 막을 수 있다며 앞마당에 마련된 제단에 치성을 올리자고 제안하였다. 환웅은 기쁜 마음으로 승낙하셨고 우사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며 적극 찬성하면서 당장 내일이라도 제를 올리자고 서둘렀다. 풍백은 웃으면서 가급적 빠른 날짜로 길일을 잡아보자며 운사에게 택일을 부탁해 보겠다고 하였다.

운사를 만나야 하는 환웅님은 몸소 나서서 운사를 찾아가겠다고 하셨지만 풍백과 우사의 만류로 인편을 보내 운사를 이곳으로 불러오기로 결정하였다. 소식을 전해 들은 운사는 서둘러 밤길을 달려와서 환웅님께 엎드려 절하였다.

풍백은 운사를 급하게 부른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였고 운사는 마침 내일이 하늘로 통하는 모든 문이 열리는 길일이라고 천거하였다. 풍백은 두 집사를 불러 좌우 집사를 맡게 하였고 만반의 준비를 부탁했다. 환웅님께는 초헌관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였고 운사와 우사는 각각 아헌관과 종헌관을, 자신은 고천사 낭송을 맡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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