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가짜이민)
“엄마, 나는 한국 교육에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독일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
그 말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내 두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독일에 가서 학교 다녀도 돼?”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열두 살. 아직은 어린 나이, 그러나 이미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말할 줄 아는 나이.
나는 아이가 그저 일시적인 감정으로 던진 말일 거라 애써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날의 눈빛은 달랐다.
흔들림이 없었고, 단단했다.
아이는 늘 자기 선택을 존중받으며 자라왔다.
나는 억지로 학원을 끊어주거나, 성적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유학”이라는 단어는, 우리 같은 평범한 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솔직히, 나는 유학을 ‘강남 부자들이 아이를 조기 유학 보내는 일’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 거실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며칠 뒤 아이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자료들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독일 교육제, 입학 시기, 공립학교와 국제학교의 차이, 학비 문제까지.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국제학교는 등록금이 너무 비싸. 나는 그냥 독일 애들처럼 독일 학교 다니고 싶어.”
독일어는 한마디도 못하면서도.
나는 그날 이후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쏟아졌다.
‘비자는? 집은? 학교는? 돈은?
그리고… 나도 독일어 하나도 못하는데?!’
마흔 중반, 겨우 삶의 자리를 조금은 잡았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런데 아들의 한마디는, 예상 못했던 한낮의 소나기를 만난 것처럼 당혹스럽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래. 지금까지 사교육 없이 키웠잖아. 학원비 한 푼 안 들였으니 퉁친다고 생각하자. 애가 저리 말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이 아이 마음도 달라질지 몰라.’
결국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그럼, 가보자. 딱 10일만. 관광 말고, 진짜처럼. 장도 보고, 길도 걷고, 학교도 직접 가보자.”
아들의 눈이 반짝였다.
며칠 뒤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는 말을 전해주자, 거실에서 빙글빙글 돌며 소리 없이 웃던 모습.
“엄마, 내 꿈이 이루어졌어.”
그 밤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리는 그렇게 열흘간의 ‘가짜 이민’을 떠났다.
처음엔 단순히 아이의 환상을 깨주기 위한 시험 같았다.
하지만 그 짧은 열흘이 우리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으리라는 건,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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