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말고기와 사장 아저씨

by 김미현


“보소. 말고기 먹어 봤나?”


우리가 제주도에 몇 번 같이 갔지만서도 흑돼지랑 왕갈치 먹느라고 말고기는 못 먹어봤는데.


세상에.

내가 출세를 한 건지 말고기를 다 먹어봤네.

그것도 룩셈부르크 가서.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오는구만.


K 가 그러는데

거기가 말고기가 유명하대여.

나는 몰랐지.

그 나라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가보지도 않고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노래를 불렀더니만.


역시 세상은 말이라.

말에는 힘이 있는 기라.


내가 거기 딱 가는 날이 오잖애.

신기하기도 하지.


근데 보소.

그 말고기 식당은 글쎄.

저녁 여섯 시 반에나 문을 연대여.

배짱 장사를 하는 건지 뭔지 몰라도.


K가 그러대.

인터넷 평점이 4.7이라고.

테이블이 꽉꽉 찬대.


어데서 다들 그래 찾아오는지 원.

하기사 나도 가는데 남 들인들 못 오겠나.


어둑어둑해지고, 여섯 시 이십 분쯤에 가게 앞에 주차를 딱 했거덩.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그 집 사장이랑 눈이 딱 마주친 기라.

으메. 민망해 가지고.

후다닥 몸을 틀어서 왼쪽 골목으로 쑤욱 들어갔는데. 볼 것도 없는 거라.


어슬렁거리다 마침 시간이 됐길래 식당 안으로 들어갔제.


들어가 보니.

거 뭐랄까, 아주 토속적 이대.

왜 그런데 있잖아.

7080 커피숍 같은데.

고동색 나무 인테리어에 빛바랜 그림들 막 걸려 있고, 맥락 없는 인형들 여기저기 놓여 있고.

콩메주 같은 거 매달아 놓고 말리면 딱 좋겠던데.

대충 어떤지 느낌 오제?


그날, 우리가 첫 개시 손님이었거든.


나는 말고기 라길래

솔직히 철판 위에 지글지글 구워 먹는 불고기 같은…

뭐 그런 건 줄 알았거덩? 근데 아니대.

이야. 무려 스테이크인 거라.

내 깜짝 놀랐잖아.


K가 그라더라.

소고기 스테이크랑 맛이 좀 비슷하면서

미묘하게 다를 거라고.

내가 또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라면 일가견이 있제.

미디엄으로 딱 시킸다 아이가.


애피타이저가 먼저 딱 와. 먹어.

그라면 바로 그날의 주인공.

스테이크가 오는 거지.


직원이랑 사장이 2인 1조라.

직원이 고기 들고 앞장서고, 사장은 20센티 양수 스탠 냄비를 딱 들었어.

보통은 보소도 알다시피 소스를 부어서 손님한테 갖다 주잖아.


이 집은 냄비째 들고 온다이.

스테이크가 두 개잖아? 그라믄 냄비도 두 개다이.

사장 아저씨가 바로 앞에서 소스를 촤르륵 부어 주더라니까.

“본 아뻬띠뜨.” 맛있게 먹으래여.


스테이크 잘라서 한 입 딱 넣잖아?

낯선 육향이 확 퍼지는데,

소랑은 다르데이.

뭐라 해야 되노…

초원을 막 달리는 맛이라 해야 하나?

씹으면 미세하게 당근 맛도 좀 나는 것 같고 말이라.


근데 내가 보소한테 진짜 해주고 싶은 얘기는

말고기가 아니라 그 주인장 얘기라.


그 사람은 말이라. 폴로셔츠에 면바지를 입었걸랑.

프랑스랑 아랍 쪽 혼혈처럼 보였는데

눈은 꼭 레옹을 닮았더라.

영화 ‘레옹’ 알제?

머리는 반이 없어. 날라갔어.


그리고 셔츠 단추.

다른덴 다 괜찮은데 유독 배만 꽉 찡겨서 꼭 터질 거 같더라고.


그래도 보소.

그 사장 아저씨 지나갈 때마다 좋은 풀향기가 솨악 나더라.

음식 향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향수도 신경 써서 뿌리는 아저씨라.


근데 내가 설마 그 아저씨 외모 운운하자고 보소를 붙잡고 이래 말하겠나?

다른 이유가 있지.


K말대로 우리 주변 테이블이 꽉 찼거든. 사람들도 우리처럼 말고기 스테이크를 시키대.

종업원이 또 똑같이 스테이크를 들고 와.

그럼 어김없이 주인장이 스탠 냄비 또 들고 와.

그런데 말이라.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거라. 뭐지? 했어. 내 귀에만 들리대?


누구겠노?


그렇지. 바로 그 사장 아저씬 기라.


“휘이~ 휘이~ 휘이~~”

처음엔 당연히 우연인가 했지.


근데 아니었어.

내가 본 테이블이 일곱 개였는데 한 번도 그 아저씨는 그 휘파람을 놓치지 않았데이.

냄비 들고 오기만 하면 어김없이 부는 거라. 입을 동그랗게 내밀고.


그걸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가 있지?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거라.

K도 내가 말하니까 그제야 알더라.

그 뒤로 우린 뭐…….

그 사장 아저씨 휘파람 또 부나, 안 부나에만 꽂혔다 아이가.


세상에 그리 재밌는 저녁 식사 자리가 또 있을까 싶더라니까.


보소도 꼭 같이 봐야 되는데……

혼자만 먼저 말고기 먹고 와서 미안하데이.

다음에 여기 오면 우리 꼭 같이 가자.


근데 말이라.

그 아저씨는 왜 꼭 그때만 휘파람을 불까?


#말고기 #룩셈부르크 #스테이크

이랴 이랴. 이 집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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