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초대장
27화 문어 오리 공작의 초대장
준이는 ‘모여라 동물의 숲’을 한다.
나는 이 게임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걸 왜 하지?’ 했다.
그냥 섬에서 꽃 심고 나무 흔들고 벌에 쏘이면 울고 주민들하고 대화하는 게 전부 아닌가.
그런데 준이는 마치 진짜 마을 이장이 된 듯 심각하게 집을 짓고 물고기를 잡고 빚을 갚는다.
“오늘은 바닷가에 조개 캐러 가야 해!”라며 바쁜 척 뛰어다니는 걸 보면 나는 잠시 내가 현실을 살고 있는 건지 게임 속에 사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어제는 아주 큰 사건이 있었다.
준이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달려와 “엄마! 나 티켓 네 장 생겼어!”라고 했다.
나는 잠깐 뮤지컬 티켓이나 놀이공원 티켓 같은 걸 생각했지만 역시나 동물의 숲 이야기였다.
“이 중에 세 장은 초대장으로 썼어!”라고 말 하며 기세등등했다.
“누굴 초대했는데?”
“응… 내일 보면 알지!”
준이는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초대장을 보냈으니 내일 누군가 올 거라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아, 얘 정말 내일 친구가 오는 줄 아는 거구나.’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는 물었다.
“오늘 친구 왔어?”
준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닌텐도 스위치를 켜더니 화면을 뚫어져라 보며 대답했다.
“음… 아직 오는 중이래. 문어, 오리, 공작 같은 놈이.”
나는 순간 빵 터졌다.
문어, 오리, 공작이라니.
그런데 준이는 진지했다.
화면을 바라보는 표정은 무슨 대단한 사건을 기다리는 과학자 같았다.
“아직 안 왔어. 조금만 기다리면 올 거야.”
점심을 먹을 때도 숙제를 할 때도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준이는 계속 말했다.
“아직 안 왔어. 근데 곧 올 거야.”
그리고 드디어 오후가 되었을 때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안 와.”
그 표정은 진짜 친구와 약속을 했는데 펑크 난 아이의 표정이었다.
내가 “게임 친구는 그냥 가끔 오는 거야. 네가 부른다고 꼭 오는 게 아니야.”라고 달래주었지만 준이는 시무룩했다.
“나는 진짜 친구 오는 줄 알았어.
오면 같이 공원 산책하고 낚시하고 하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가슴이 찌르르했다.
‘공원 산책’이라니.
요즘 아이들은 친구가 오면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본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들은 친구랑 낚시를 하고 산책을 하고 싶어 했다.
현실에서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겠지.
나는 그날 저녁 준이를 데리고 진짜 공원으로 나갔다.
내가 “우리 진짜로 물고기 잡는 척해볼까?”우리는 여기저기 풀숲을 뛰어다녔다.
그날의 낚시는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준이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말했다.
“엄마, 오늘 재밌었어. 다음엔 진짜 친구 데리고 같이 가고 싶어.”
그 말을 들으니 나는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아이의 세계는 이렇게 현실과 게임 상상과 바람이 뒤섞여 있다.
그 세계에서 친구란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문어든 오리든 공작이든 초대장을 받으면 달려와 같이 놀아주는 존재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준이가 초대장을 보낸 건 사실 게임 속 친구가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랑 놀아줘. 같이 공원 가자. 같이 낚시하자.’ 그런 마음이 초대장처럼 내게 날아온 것이다.
나는 오늘 다시 준이에게 말했다.
“준아, 내일도 초대장 보내줘. 이번엔 엄마한테.”
준이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근데 엄마, 꼭 와야 돼!”
나는 대답했다.
“응, 나는 꼭 갈 거야. 문어도 오리도 공작도 아닌 진짜 엄마가 갈 거야.”
그리고 그날 밤 준이는 또 평소보다 30분 더 일찍 잠들었다.
이번에는 ‘진짜 친구’가 내일 올 거라는 확신에 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