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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 이야기

26화 빵빵 외치자

by 작가

26화 빵빵 외치자

유괴예방교육 영상을 보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이참에 준이에게 확실히 가르쳐야지.’
요즘 뉴스만 켜면 이상한 사건사고가 많다.

아이가 혼자 다니는 시간이 많아지니 엄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유투브에 팔로우미(유괴예방교육)라는 영상이 보여 보여주기로 했다.
영상이 시작됐다.

어린아이가 혼자 핸드폰을 보며 걷는다.

그런데 어느새 길이 산길로 바뀌고, 갑자기 배터리가 꺼진다.
'오... 무섭다.'
준이와 나는 동시에 속으로 긴장했다.

화면 속 아이가 당황해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낯선 청년이 나타났다.
머리칼은 헝클어지고 낫을 들고 있고 옷은 흙투성이.
어눌한 말투로 "여기... 위험해... 같이 가자"라고 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이거 100% 유괴범이다. 얘야 뛰어!’
속으로 외쳤다.

영상 속 아이는 교육받은 대로 외친다.
"싫어요! 안돼요!"
그리고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킨다.

청년은 더 다급하다.
"해 지면... 이상한 사람 와... 끌고 가..."
오히려 더 무서운 말을 한다.


아이는 무서워 꼼짝도 안 한다.
마치 “교육 받았거든요? 나는 움직이지 않아!” 하는 표정이다.

시간이 흐른다.
해는 점점 기울고 숲속은 어두워진다.
나까지 숨이 막혔다.
‘아... 빨리 누가 와야 하는데!’

드디어 할머니가 나타난다.
뒤이어 봉고차 한 대가 들어온다.
할머니는 청년에게 "아이고 고마워요, 이 아이 봐주셔서" 하며 음료수를 건넨다.
그리고 영상은 끝.




준이와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이게 뭐지?
나도 모르게 소파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영상을 다시 곱씹었다.
'낫 들고 나타난 청년이 착한 사람이었다고?
우리가 그렇게 경계했던 그 청년이 오히려 아이를 지켜주려 한 거라고?'

갑자기 온몸에 당황이 몰려왔다.
그 어눌한 청년의 말투 순수한 눈빛이 우리 준이를 꼭 닮아서 마음이 더 불편했다.
‘만약 진짜 준이가 저 청년이었다면... 세상은 여태 오해해 왔던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준아, 만약 유괴범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해?"

준이는 기다렸다는 듯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빵! 빵!" 하고 외쳤다.
입으로.

아주 크게.
나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아니... 진짜 총이 아니잖아. 그냥 도망가야지."
"근데 이러면 아빠는 쓰러지던데?."
"아빠니까 장난쳐주는거지 ... ‘살려주세요!’ 하고 소리 질러야지."
"그럼 빵!빵! 크게 외칠게."

준이는 한 손으로 총 모양을 다른 손으로 권총 재장전을 하듯 허공에서 "챡" 하더니 다시 "빵!빵!"
웃겨 죽는 줄 알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무리 교육 영상을 보여주고 ‘이럴 때 이렇게 해야 해’ 열 번 말해도 준이 머릿속에서는 결국 “빵빵 외치기”가 최고의 대책이 된 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건 중요한 자기 방어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낯선 어른을 따라가는 것보단 "빵빵!" 소리를 내며 버티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준이에게 ‘도망가는 법’과 ‘크게 소리치는 법’을 함께 가르치기로.
그날 우리는 거실에서 작은 훈련을 했다.

"준아, 엄마가 유괴범 할게. 너는 빵빵 외쳐!"
"좋아!"

나는 일부러 무서운 목소리로 "얘야, 같이 가자~" 하며 손을 뻗었다.
준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빵!빵!" 외치며 뒤로 물러섰다.

"좋았어! 근데 더 크게!"
"빵!빵!!!"
아파트 복도까지 울렸다.

웃음이 터졌지만 마음 한구석은 든든했다.
이 작은 훈련이 준이에게는 자신감을 심어줄 테니까.

유괴예방교육은 결국
"세상에는 무서운 사람도, 착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네가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져야 한다"
이걸 알려주는 거다.

그리고 빵빵 외치며 세상을 향해 당당히 서 있는 준이 모습이 왜 이렇게 사랑스럽고 든든한지.

나는 오늘도 속으로 외친다.
‘그래, 준아. 말로 안 통하면 크게 외쳐라. 세상이 다 들을 만큼 빵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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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