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위에 조용히 놓인 잔을 바라보았다.
바닥이 훤히 비칠 만큼 비워져 있는 잔을 보며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텅 빈 잔, 누군가에겐 여유가 있는 잔.
어떤 이는 비어 있는 잔에서 결핍을 느끼고,
또 어떤 이는 그 안의 공간에서 여유를 느낀다.
과연 나는 둘 중 어떤 사람일까.
잔이 얼른 채워지길 바라는 사람일까,
아니면 잔 안의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일까.
빈 잔을 보고 조급한 마음이 들어 채울 때는,
그 잔이 채워지는 순간 잠시 만족하지만,
이내 넘칠까, 쏟아질까 조심스러워지고,
채운 것을 잃을까 아쉬워진다.
그렇게 채워진 잔은 더 이상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반면, 약간 비워진 잔은 여백을 품는다.
새로운 것을 담을 준비가 되어있고,
그 여백은 조용한 조명 아래서 고요히 빛을 담아낸다.
나는 오늘, 이 잔을 보며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가득하지 않아도 충분한 사람.
가득하지 않아서 충분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