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있는 쉴 곳

by JW

처음으로 독립해 집을 나간 후, 아버지는 내 방 침대에 한참을 누워 계셨다고 한다.

어머니도 괜히 내 방에 들러, 내 체취가 남았을까 이불 냄새를 맡아보시곤 했단다.


삼 남매가 모두 독립하고 부모님 두 분만 남은 집에서 그렇게 자식들을 하나둘, 본인들만의 방식으로 떠나보내셨다.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자녀들이 모두 독립해 집을 떠나는 시기에 부모가 느끼는 상실감과 슬픔을 말한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도 그러한 시기를 겪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 후 집에 갈 때마다 언제부턴가 하나둘씩 늘어나는 식물을 보며, '언제부터 부모님이 식물을 이렇게 좋아하셨지?'하고 의아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식물도 키워내셨을 거라는 것을.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으셔서 식물을 키우셨을까.


하지만 우리는 안다.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 영원히 거할 어딘가로 가시기 전까지 우리는 여전히 부모님이 필요한 존재라는 걸.

다 큰 듯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부모님이 필요한 자식이라는 걸.


본가에 3일만 있어 봐도 알 수 있다.

그곳에 있는 순간만큼은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을.

밥을 챙겨 먹을 필요도, 집안인을 할 필요도, 과일을 깎을 일도 없다.

심지어 드라마를 보기 위해 리모컨을 손에 쥐는 일조차 부모님이 먼저 나서서 해주신다.


나는 드라마에 몰입해 있지만, 부모님은 옆에서 조용히 나를 살피신다.

내게 필요한 것 없는지,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드라마가 아니라, 내 모습을 보고 계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과일 한 조각이 내 입에 들어와 있다.


그 모든 것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부모 자식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가에 가면 내가 뭔가를 하려고 나서도, 꼭 하지 말라고 말리신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짐을 본가에 내려놓고 쉬게 된다.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쉴 곳이 필요할 때, 나는 부모님을 찾는다.

물론 친구들에게 고민 상담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때도 있지만,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눈치 보지 않고 전부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부모님뿐이다.


연인과 헤어져 울고 싶을 때도, 부모님 앞에서는 펑펑 울 수 있다.

어느새 코끝이 빨개지며 나와 함께 마음으로 울어주시는 부모님을 보면, 내 마음에 있는 무거운 감정은 부모님과 나눠 반이 되고, 내 모든 짐이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함께 짊어주신다는 걸 느낀다.


이렇듯, 독립을 했다고 해서 자식이 부모님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더욱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본가에 간다.

그곳에서 혼자일 땐 경험할 수 없는 사랑을 채우고, 회복하고,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지금 삶이 너무 힘들고, 몸과 마음이 고달픈 사람들에게, 혹은 자신에겐 완전한 부모님이 아닌, 완전한 아버지, 완전한 어머니, 완전한 누군가가 있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권해보고 싶다.


지금이, 본가에서 사랑을 채우고 올 때인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모님은 혹은 그 누군가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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