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계에 지친 나를 위한 자기 회복

상처를 지나 나를 지키게 된 이야기

by 슈니움



어린 시절의 나는 꽤나 이타적인 아이였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게 기뻤고

내가 한 발 물러서서 누군가가 편안해지는 걸 보면 뿌듯했다.

그런 성향 덕분에 좋은 관계들도 많았고

나를 따뜻하게 기억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 성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

이타심이 언제나 좋은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남을 배려하다 보면 정작 나는 그 관계 속에서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했다.

내 마음이 다치고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감정은 상처가 되었고 신뢰는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순간이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사람을 대할 때 경계심이 생기고

자연스레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고 있음을 느꼈던 건.

그 변화는 사회생활을 하며 더욱 확고해졌다.

직장 안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표정과 말은 달라도 속은 알 수 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개인주의'라는 삶의 태도를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시간들 속에서 만들어진 선택적 개인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따뜻한 교감을 좋아하고 진심이 통하는 관계는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다만 이건 '누구든지'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눈 사람

내가 '내 사람'이라 여기는 이들에게는 나는 깊이 있고 이타적인 사람이 된다.

가족, 친구, 그리고 진심이 느껴지는 관계에선

나는 애쓰고 공감하고 나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준다.

때로는 상대보다 더 많이 신경을 쓰고

그들의 감정까지 내가 떠안고 있는 경우도 있다.


과거의 나는 '누구든지' 에게 마음을 나누었지만

내가 많은 마음을 준 만큼 실망도 깊었고

배신이나 무관심이 돌아왔을 땐 상처는 상상 이상으로 크게 남았다.

그런 경험이 반복된 결과

나는 점점 에너지를 분배할 대상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경계'라는 것이 내게 필요하다는 걸 체감하게 되었고

나는 내 사람에겐 깊이 있게 / 그 외의 사람에겐 경계라는

'선택적 개인주의'라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관계에는 진심을 다하되

그 외의 관계에서는 내 감정과 에너지를 쉽게 소모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건 차가운 결정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진짜 관계에 더 오래 머무르기 위한 나만의 따뜻한 결정이다.


이전의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관계에서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때로는 나를 무시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관계도 애써 이해하려 했다.

참고, 맞추고, 감정을 눌러가며 나보다 관계를 먼저 생각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의 내면은 점점 희미해져 갔고

언제부턴가 나는

'이 관계 안에서 나는 누구지?'라는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는 안다.

내가 무너지면 누구도 온전히 품을 수 없다는 것을.

나를 지키지 않고 유지된 관계는

언젠가 나를 더 깊이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선택적 개인주의자'로 살아간다.

타인의 기대보다 내 감정을 먼저 살피고 관계의 수보다 관계의 진정성을 선택한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다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사람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진실한 사람이고 싶다.

그게 내가 나를 지키고 내 사람을 진짜로 사랑하는 방식이다.


나는 선택적 개인주의자다.

불편함 대신 편안함을.

피로한 관계 대신 진짜 마음을 선택한다.

누군가에겐 그게 다소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그것은 나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존중이며

누군가를 오래도록 따뜻하게 사랑하기 위한 시작점이다.

혹시 당신도 나처럼

관계 속에서 자꾸만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면 한 번쯤 이렇게 말해보길 바란다.


나는 나를 위해

선택적 개인주의자로 살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