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편의점 시스템: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

by Yong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0일 오후 04_14_45.png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주하는 피로감은 단순히 육체적인 노동에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사소하지만 끈질긴 실랑이 속에서 감정이 소모될 때, 나는 이 일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대부분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손님들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0일 오후 04_30_15.png

TOP 커피처럼 종류가 다양한 상품을 결제한 뒤, "아, 저걸로 바꿀게요"라고 말하는 손님이 있다. 나는 "재고가 맞지 않아 환불 후 재결제하셔야 한다"고 설명하지만, 그들은 "같은 가격인데 왜 안 되냐"며 불만을 표한다. 남편이 "그냥 가자"고 말려도, 아내분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2+1 행사를 1+1으로 착각하고 따지듯 묻는 젊은 커플도 있다. 물론 요즘 상품들은 워낙 복잡해서 헷갈리는 것이 당연하다. 나 역시 처음에는 수많은 제로콜라의 종류를 구분하기 힘들었으니까. 그들처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물건을 바꿔오는 경우는 오히려 고맙다.


진짜 피로를 유발하는 것은 시스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요구만을 관철하려는 이들이다. 5개 묶음 할인 상품을 3개만 사면서 "나머지 2개는 다음에 살 테니 할인해달라"고 하거나, T멤버십 할인을 받은 뒤에 CU 앱 할인이 왜 안되냐고 따지는 경우가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0일 오후 10_36_24.png

나는 그럴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죄송하지만, 시스템상 불가능합니다." 편의점의 진짜 주인은 사장도, 아르바이트생도 아니다. 가격, 행사, 할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본사의 중앙 서버와 연결된 'POS 시스템'이다. 나는 그저 바코드를 찍고, 화면에 뜨는 안내를 전달하는 전달자일 뿐이다. 임의로 교환하거나, 없는 할인을 만들어낼 권한이 나에게는 없다.


물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꺼이 해준다. 택배를 부치러 온 손님의 박스 테이프가 모자라면 매장용품을 빌려드리고, 음료를 쏟은 손님이 당황하면 "제가 치우겠다"며 안심시킨다. 험악한 그림이 그려진 담뱃갑 대신 다른 그림의 담배를 골라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대부분 나의 재량이 아니라, 시스템의 규칙이다.


말이 아닌 눈으로 통하는 순간, 담배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0일 오후 10_43_53.png

가장 복잡한 소통은 담배를 팔 때 일어난다. 수백 가지가 넘는 담배들 앞에서 손님들은 종종 불완전한 정보를 던진다. "체인지 주세요"라고만 말하거나, "저기 파란 거요"라고 손짓한다. 본인에게는 매일 피우는 당연한 그것이겠지만, 나에게는 수많은 '체인지'와 수십 개의 '파란 담배' 중 하나를 찾아야 하는 퀴즈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단골손님이라면 얼굴만 봐도 피우는 담배를 알지만, 처음 보는 손님에게는 어쩔 수 없이 "이거 맞으세요?"라며 물건을 들어 보여줘야 한다. 전화 통화를 하며 웅얼거리는 손님 앞에서는 그 과정이 더욱 고역이 된다. 하지만 "에쎄 체인지 1mg 주세요"처럼 브랜드와 끝 이름만이라도 정확히 말해주면, 나는 훨씬 빠르게 그들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다.


이처럼 편의점 카운터는 논리와 비논리, 합리와 억지, 친절과 무례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작은 사회다. 나는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그것이 이 피로한 공간에서 나 자신을 지키며 버텨내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층간소음,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